다시 피어나는 타이틀리스트 인수 성공의 기억

[일간투데이 장석진 기자] 기업 인수합병(M&A)업계 이목이 집중된 아시아나항공 인수전 막이 올랐다. 최대 관심사는 단연 현대산업개발(이하 현산)과 미래에셋대우가 컨소시엄을 이뤄 참여했다는 점이다. 당초 국내1위 저비용항공사(LCC) 제주항공을 보유한 애경의 참여는 기정사실이었으나 현산-미래에셋 컨소시엄 참여는 뜻밖이라는 반응이 많다. 하지만 M&A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선 전혀 이상하지 않은 그림이라는 해석이다. 아시아나와 미래에셋, 미래에셋과 현대산업개발간 오너들의 연결고리와 각 참여자들의 실리를 따져보면 더욱 그렇다는 분석이다.

4일 M&A업계에 따르면 지난 3일 마감한 아시아나항공 매각 예비입찰에 예상대로 애경이 참여했다. 또 현산-미래에셋 컨소시엄이 막판 참여해 기업집단의 불참으로 흥행 참패가 우려된 매각작업에 다시 불을 당겼다. 다만, 뒤늦게 전격 참여가 이뤄졌는지 세간의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현산과 미래에셋의 관계에 앞서 미래에셋과 금호의 관계를 먼저 살펴야 한다”고 귀띔한다. 호남지역을 대표하는 거의 유일한 대기업집단인 금호 박삼구 전 회장은 광주일고 출신으로 박현주 회장의 고등학교 14년 선배다. 금호의 사세가 기울면서 새롭게 대기업집단 반열에 오른 신흥 금융그룹 미래에셋은 그간 여러모로 금호와 관계를 맺어왔다. 국내 주식형펀드 규모가 절정을 이루던 2009년 당시 미래에셋자산운용은 금호산업의 최대주주였고, 미래에셋은 금호그룹 정상화를 위해 주력 계열사들을 매각할 것을 요구했다.

평소 동향 후배로서 깎듯이 선배를 예우했던 후배의 요청에 박삼구 회장이 당시 서운한 감정을 가졌을 거라는 건 어렵지 않게 예상 가능하다. 2015년 박삼구회장이 금호산업을 7229억원에 되사오기까지 치렀을 금융비용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박현주 회장은 산업계 선배들을 예우는 하되 경영적 판단에 있어서는 냉정함을 잃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호남계 정치인들에게 줄을 서지 않았던 것이 오늘날 회사가 반석에 오른 이유라고 설명하는 이들도 많다.

아시아나항공은 물류의 한 축을 담당하는 기간산업 대표기업으로 갖는 상징성이 크다. 일반 기업들의 매각과는 달리 정부 입장에서도 잡음 없이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단순히 매각가격으로만 결정나지 않고 인수의 명분이 필요하다는 말이 많다. 호남기업 아시아나가 경영난 끝에 타지역 기업으로 넘어가는 것에 대한 지역 정서를 달래기 쉽지 않다. 미래에셋은 오랫동안 금호그룹을 분석해왔고 항공기 산업의 장단점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금융그룹인 미래에셋이 직접 인수하긴 어렵다. 타이틀리스트 인수때 전략적투자자(SI)인 휠라를 내세워 공동 참여로 대박을 냈던 성공사례가 박현주 회장을 다시 움직였을 것은 어렵지 않게 예측된다.

재무적투자자(FI)로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참여하는 미래에셋이 파트너로 점찍은 곳은 HDC현대산업개발이다. 박현주 회장은 주식에 못지않게 부동산에 대한 남다른 안목을 가지고 있다.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서해안 청정지역 개발을 부르짖는 인물이다. 광화문 포시즌 호텔 등 호텔사업을 영위하며, 2세는 부동산 전문가로 성장하고 있다. 이미 그룹내에 부동산분석 전문가집단인 ‘부동산114’를 보유해왔고 이를 시너지가 나는 건설기업‘현산’에 매각했다.

현산 정몽규 회장은 박현주 회장의 고대 경영학과 후배다. 면세점과 호텔사업 등을 가진 현산 입장에서 선배인 박현주 회장의 조언, 즉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항공산업 진출 권유는 그룹의 위상이나 계열사 연관 비즈니스간 효율성 제고라는 측면에서 검토의 이유를 충분케 한다.

금호 입장에서 현산-미래에셋 컨소시엄 참여는 반가운 일이다. 자칫 흥행 실패로 애경쪽에 일방적인 주도권을 쥐어줄 뻔한 것을 현산-미래에셋 컨소시엄이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설사 현산-미래에셋이 최종 낙찰자로 선정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런닝메이트를 해주는 역할로 충분하다. 애경 입장에서도 마냥 나쁜 것은 아니다. 만약 최종 낙찰자가 된다면 현산-미래에셋을 꺾고 인수를 했다는 자부심, 다른 기업집단도 탐내는 좋은 매물을 가져왔다는 명분을 쌓을 수 있게 됐다.

인수합병(M&A)의 핵심은 인수 그 자체가 아니라 합리적인 가격과 기존 체제와의 화학적 결합을 통한 시너지 창출 여부다. 가격이 비싼지 싼지는 매물을 가져가는 자의 판단이다. 다만 에어서울, 에어부산 등 6개 관계사의 통매각 방식인 만큼 2조원에 육박하는 자금을 치르면서까지 인수할 가치가 있는지는 참여자들의 판단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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