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7년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에 미국 달러화를 포함한 외화준비금이 바닥이 나자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 수혈을 요청하면서 국가 부도 사태라는 치욕을 겪은 바 있다.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미국 국채인 소위 티노트(T-NOTE)에 투자하면 수익률이 높다는 외국계 은행들의 권유로 무차별 투자해서 이를 재판매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게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자금을 초단기로 빌리고 재투자는 장기상품으로 했다가 초단기 상품의 만기가 집중되면서 상환해야 할 외화예금이 폭증하는 바람에 한국은행의 곳간까지 털게 한 바로 그 상품이 파생상품이었다.

이후 금융기관들은 2008년 또다시 키코라는 환율을 매개로 한 파생상품을 기업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팔았다. 환율이 일정 구간 내에서 움직일 경우 자동 헤지(반대거래)를 통해 기업들이 수출입으로 인해 발생하는 환차손을 상쇄시키는 그럴듯한 파생금융상품이었다. 하지만 2008년 미국 주택을 매개로 한 주택담보대출을 취급한 초대형 대부업체들의 파산으로 인해 글로벌금융위기가 터지자 환율이 폭등하는 바람에 키코상품도 환율변동 예측 범위를 이탈했다. 기업들이 키코 상품으로 인한 피해로 파산하는 사태까지 발생했지만 지금도 그 책임 소재를 가리느라 소송전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에는 독일 등 주요 선진국 금리를 매개로 한 파생결합 펀드(DLF, Derivatives Linked Fund) 만기가 임박하면서 주요 선진국의 금리가 예측과는 달리 떨어지는 바람에 8000억원 규모의 상품에 문제가 발생했다. 오는 19일부터 만기가 돌아오지만, 금리가 예상치를 벗어나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바람에 투자자들은 수익은 커녕 원금도 까먹을 상황에 직면했다.

DLF는 파생결합증권(DLS, Derivatives Linked Securities)과 연계해 은행에서 펀드 형태로 판매하는 상품으로 주로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에서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사모펀드는 공모 펀드의 상반되는 말로 '공모'가 모든 일반인이 구매할 수 있다면, '사모'는 금융회사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워 팔기 힘든 상품을 특정 투자자에게 판매하는 상품으로 투자금액 단위가 매우 크다. 독일 금리 연계 DLS도 최소 가입 금액이 1억원 이상으로 8224억원이나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

문제는 독일, 영국, 미국의 채권 금리 등을 기초자산으로 한 DLF가 해당 국가들의 장단기 금리 차가 역전되면서 손실이 불가피해 졌다는 점이다. 제2의 키코 사태와 같은 피해가 현실화됐다. 키코상품 투자 피해가 주로 기업이었다면 이번 DLF는 고령 고객을 포함한 일반 투자자가 많다는 점만 다를 뿐 피해양상은 비슷하다.

금융감독원의 지난달 19일 기준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금융사들의 주요 해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S·DLF)의 판매 잔액은 총 8224억 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이 중 대부분이 손실구간에 진입한 상태로, 만기까지 현재 금리 수준이 이어지면 총 손실률이 56.2%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특히 독일 국채 금리에 연동된 DLF는 예상 손실률이 95.1%로 예상됐다. 금감원은 분쟁 조정 절차에 돌입, 심각한 불완전판매가 입증된다면 해당 상품을 판매한 은행과 증권사들에 최대 70%의 배상 책임을 물을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사전 위험 고지를 놓고 금융사와 고객 간에 지루한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공방이 이어질수록 그 피해는 투자자들에게 가중될 수밖에 없다.

특히 DLF펀드에 투자한 90세가 넘는 고객을 포함해 70세 이상의 고객도 다수라는 점에서 상품을 판매한 금융사들의 도덕적 해이는 비난을 넘어 범죄행위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높다.

영국의 글로벌 금융사인 베어링증권은 파생상품에 잘못 투자한 펀드메니저의 오판으로 한 방에 회사가 문을 닫으며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또 지난 2007년 발생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는 미국 주택을 담보로 한 초대형 모기지론 대부업체들의 파산으로 이어지면서 이 대부업체들이 발행한 상품에 투자했던 한국을 포함한 세계 주요국 금융기관들을 금융 쓰나미로 덮쳤다. 이처럼 금융파생상품의 변동성은 예측불허다.

본인들도 예측할 수 없는 상품을 만들어 개인, 특히 70세가 넘는 고령의 투자자들에게 판매한 것은 신뢰와 신용을 목숨처럼 지켜야 할 금융사들이 스스로의 책임을 무너뜨린 꼴이다.

금융당국도 금융사들이 상품을 내놓기 전에 상품의 적절성을 판별하지 못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금융당국은 금융사들의 불건전성을 바로잡으라는 기관이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뒷북 당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덩치만 크고 상품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금융사들의 일탈행위가 이번 사태를 통해 철저히 바로잡아져 반면교사의 교훈으로 이어져야 한다.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