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집안에도 종가댁이 있듯이 대한불교 조계종에도 종갓집이 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된 불보사찰(佛寶寺刹) 영축총림 통도사가 바로 종택 격이다. 5대 총림 중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기 때문이다. 통도사는 경상남도 양산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로 신라 시대 선덕여왕 15년인 646년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자장 율사에 의해 창건됐다.

불지종가답게 창건 설화도 깊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묘법연화경’을 설법했다는 인도의 영축산과 비슷한 지세를 갖춘 곳에 자장 율사가 당나라 유학 후 귀국 길에 모셔온 부처님 진신 사리를 봉안하고 절 이름을 통도사(通度寺)라 했다고 한다. 산 모습이 인도 마가다국 왕사성 동쪽 산인 영축산과 통(通)하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신라 시대에 출가자는 계율 근본 도량인 통도사의 금강계단에서 계(戒)를 받아야 정통성이 인정되기 때문이라는 설, 통만법도중생(通萬法度衆生, 모든 진리를 깨달아 중생을 제도한다)이라는 대승불교 이념에서 비롯됐다는 등 다양한 설화가 내려온다.

통도사는 신라시대 계율 근본 도량으로 사찰 중 으뜸이었던 수사찰 역할을 해왔고 조선 초기에는 나라에서 각 사찰을 기도 장소로 지정할 때 수위사찰이었다. 현재는 석가모니 부처님 진신 사리와 금란가사(金欄袈裟, 금실로 수놓은 가사)가 봉안돼 있어 불보사찰의 위엄을 상징하고 있다. 자장 율사가 세운 통도사를 우리나라 최초의 율원으로 평가하고 있다.

통도사의 상징은 대웅전과 금강계단 그리고 구룡지이다. 금강계단은 불보사찰을 상징하고 구룡지에는 통도사 창건 설화가 서려 있다. 대웅전의 경우 정자형 법당 사면에 각각 다른 이름의 편액이 있어 여타 사찰과는 다르다. 동쪽은 대웅전(大雄殿), 서쪽은 대방광전(大方廣殿), 남쪽은 금강계단(金剛戒壇), 북쪽은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대웅전 뒤편에 있는 금강계단에는 석가모니 진신사리가 봉안돼 있다. 2중 사각 기단 위에 종 모양의 부도가 놓인 석조 계단으로 사방에는 불좌상을 비롯한 천인상, 신장상 등 다양한 조각이 새겨져 있다. 통도사의 경우 석가모니의 진신 사리가 봉안된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은 것이 곧 부처님에게 직접 계를 받는 것과 같은 의미가 있으므로 통도사 창건의 근본정신이 금강계단에 있다고 보고 있다.

통도사 대웅전은 법당 내에 불상을 모시는 대신, 진신 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법당 바깥이나 뒤쪽에 사리탑을 봉안하거나, 계단을 설치하는 전형적인 적멸보궁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적멸보궁의 기원은 석가모니가 깨달은 이후 최초의 적멸도량회(寂滅道場會)를 열었던 중인도 마가다국 가야성의 남쪽 보리수 아래 금강좌(金剛座)에서 비롯된 것으로 궁(宮)은 전(殿)이나 각(閣)보다 격이 위다.

화엄경(華嚴經)에 따르면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이 처음 7일 동안 시방세계(十方世界) 불보살들에게 화엄경을 설법하기 위한 해인삼매(海印三昧)의 선정에 들었다 한다. 이때 부처 주위에 많은 보살들이 모여 부처의 덕을 칭송하였고, 부처님의 법신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과 한 몸이 됐다.

따라서 적멸보궁은 본래 언덕 모양의 계단을 쌓고 불사리를 봉안함으로써 부처가 항상 그곳에서 적멸의 법을 법계에 설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곳이다. 진신 사리는 곧 부처와 동일체로 부처님 열반 후 불상이 조성될 때까지 가장 진지하고 경건한 숭배 대상이 됐고 불상이 등장한 이후에도 존엄하게 받들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자장(慈藏) 율사가 643년 당나라에서 유학 후 귀국할 때 가져온 부처님의 사리와 정골(頂骨)을 나누어 봉안한 5대 적멸보궁이 있다. 통도사(通度寺),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태백산 정암사(淨巖寺), 사자산 법흥사(法興寺) 등 5곳이다.

경내 응진전 서쪽의 구룡지(九龍池)는 자장 율사가 구룡소(九龍沼)에 사는 용들을 승천시키고 못을 메워 사찰을 창건하는 과정에서 아홉 마리 용 가운데 통도사의 터 수호를 맹세한 마지막 용의 청을 들어 연못 한 귀퉁이를 메우지 않고 남겨 머물게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곳이 금강계단 옆의 작은 연못인 구룡지이다. 구룡지 한가운데에는 석연화(石蓮花)가 있다.

창건 설화에 따르면 자장 율사가 영축산 호숫가에 절을 창건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곳에 아홉 마리의 용이 살고 있어서 이들 용을 교화하여 여덟 마리는 승천하게 하고 통도사를 수호하겠다는 마지막 용의 청을 받아들여 금강계단 옆에 작은 연못인 구룡지를 남겨 놓았다는 것이다.

통도사 사적기 사리영 이편에는 부처님 진신 사리로 인한 영험한 이적들이 기록되고 있고 지금도 그 이적들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03년 입적한 월하 방장스님 49재 때도 밤중에 훤히 빛이 나는 방광(放光) 현상이 일어 스님과 신도들에게 수행자는 삶과 죽음에도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하는지 증명해 보였다고 한다.

최근에는 성파 방장스님이 지난 20여 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팔만대장경을 기본으로 이를 도자기로 재현시킨 16만 도자기 대장경을 만들어 산내 서운암 장경각에 조성했다고 한다.

팔만대장경을 도자로 가로 52cm·세로 26cm인 경판으로 무려 16만3000장으로 재현시킨 것으로 일명 도자대장경이다. 나무판의 양면에 새긴 팔만대장경과는 달리 도자기는 한 면밖에 쓸 수 없어 그 경판이 두 배가 된 것이다. 도자기를 구울 때 휘어지는 현상 때문에 몇만 장을 버리고 완성하는 데 20년이 걸렸다고 한다. 900도의 불에 초벌구이한 도판에 유약을 발라 다시 1200도의 불에 구워내 길 수십만 번을 거치는데 제작 기간만 꼬박 20여 년이 걸려서 완성한 대작 불사였다고 한다. 그 고단한 과정은 민족평화통일을 염원한 불자들의 정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스님들은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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