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명의 재산 아직도 1만4천건이나 남아
조달청, 미환수 귀속재산 조사 올해 안 마무리
정무경 청장, "귀속·은닉 재산 끝까지 추적·환수, 일제 흔적 지울 터"

▲ <일본인 명의 귀속재산 국유화 추진현황>(2019.7월 말기준, 단위 : 필지). 자료=조달청

[일간투데이 이욱신 기자] 올해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광복 74주년을 맞이한 매우 뜻 깊은 해다. 또 일제가 근대적 토지소유권 관계를 명확히 한다는 명분으로 1912년 토지조사령을 공포해 우리 땅에 대한 본격적인 침탈을 시작한 지 107주년이 되는 해다.

1910년 9월 국권 강탈 이후 곧바로 조선총독부 내 임시 토지조사국을 설치한 일제는 2년 뒤 토지조사령을 발표하고 식민지 조선의 토지소유권, 토지 가격, 지목, 지형을 체계적으로 조사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일제는 이 사업을 당사자의 신고에 의해 권리관계가 확립되는 '신고주의 방식'으로 운영해 근대적인 법령 체계에 익숙하지 않은 당시 조선 농민들 중 제대로 신고를 하지 못해 피해를 본 사례가 많았다.

조선 후기 실질적으로 민간 소유이지만 과도한 세금부과를 피해 궁방전(宮房田·조선 후기 후비·왕자·공주·옹주 등의 궁방에서 소유하거나 수조권(收租權)을 가진 토지)·역둔전(驛屯田·역과 군대, 관청 등의 재정 확보에 사용된 토지)에 투탁(投託·조선 시대 일반 양민이 자기 토지를 면세자나 국가 기관에 거짓으로 기증하면서 조세를 포탈하는 행위)된 토지나 문중소유지, 미개간지, 간석지, 마을 공동체가 공동으로 이용하는 삼림 등도 '소유자가 불확실하다'는 명목으로 조선 총독부에 많이 강제 수용됐다.

 

<일본인 명의 귀속재산 및 은닉재산 국유화 실적>(2019.7월말 현재). 자료=조달청

일제는 이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농경지 등(대지 포함) 27만2076정보 ▲임야 955만7856정보 ▲기타 국유지 137만7211정보 등 도합 1120만6873정보를 조선총독부의 소유지로 만들었다. 이는 당시 조선 국토 총면적의 50.4%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일제는 종래의 관유지·공유지 뿐만 아니라 한국 농민들의 사유 농지 9만6700정보와 사유 임야 337만5662정보를 무력에 의해 무상으로 약탈해 조선총독부 소유지로 편입시켰다( 신용하, '일본제국주의 옹호론과 그 비판', <한국독립운동사 연구> 제 6집(1992)).

조선 총독부는 이렇게 확보한 토지 중 상당 부분을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비롯한 일본 회사들과 한반도로 이주한 일본인들에게 싼값으로 넘겼다. 그 결과 일제 식민 치하 토지세 납세의무자 중 200정보 이상 소유한 대지주는 1921년 일본인이 169명, 조선인이 66명이었는데 1936년 일본인은 181명으로 증가한 반면 조선인은 49명으로 줄었다. 그런데 5단보 이하를 소유한 빈농층은 1921년 47.38%에서 36년 51.49%로 증가했다(송규진, <통계로 보는 일제강점기 사회경제사>(2018)). 더 곤란한 처지에 있던 농민들은 생계를 찾아서 광산, 부두 등에서 날품을 파는 노동자가 되거나 만주, 일본 등 해외로 떠났다.

일제는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우리나라 토지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한 이후 1920년대 산미증식계획, 1930년대 대륙침략 병참기지화를 위한 공업화, 1940년대 태평양전쟁 수행을 위한 강제 징병·징용 동원 등 이후 전개되는 식민지 지배 정책에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한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아직 산업화가 본격 전개되기 전 유일한 생산수단이었던 농지를 생산주체인 농민이 소유해야 한다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에 따라 이승만 정부는 일제하 사회주의 운동을 했다가 전향한 조봉암을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 임용해 농지개혁을 추진한다.

비록 당시 국내 상당수 토지를 보유하고 있던 대지주들을 정치 기반으로 하고 있는 한국민주당의 협조를 얻기 위해 전체 토지가 아닌 삼림 등을 제외한 농지개혁으로 제한된 수준이었고 농지개혁 10여년 후 재소작지화 현상이 나타나는 등 완벽한 형태는 아니었지만 농지개혁은 일제 식민지와 조선시대로부터 내려 온 봉건적 착취의 유산을 해체하고 1960년대 이후 본격화된 경제개발 도약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과거 일제강점기에 일본 기관, 일본 법인, 일본인이 소유했던 귀속재산을 당시 시가의 1/3~1/4 가격으로 소수의 정권과 유착된 특혜 받은 민간자본에게 불하함으로써 이들이 자본 집중을 통해 재벌로 급성장하면서 한국 경제 도약의 이끄는 한편 오늘날 심각해진 양극화의 씨앗을 뿌리기도 했다.

문제는 해방둥이가 고희(古稀)를 훌쩍 넘는 세월 동안 우리나라에 일본인 명의의 재산이 아직도 1만4000여건이 남아 있을 정도로 우리 역사에 아픈 생채기를 남긴 일제 토지조사 사업의 잔재가 확실히 청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달 6일 조달청 발표에 따르면 현재 남아 있는 일본인 명의 귀속재산은 1만4000여 필지로 추정되며 이중 60%인 77000여 필지에 관한 토지조사가 지난 7월 말 기준으로 완료됐고 나머지도 올해 안으로 조사를 마무리 할 예정이다.

원래 귀속재산은 광복 후 '귀속재산처리법' 등에 따라 당연히 국가에 귀속돼야 했다. 통상 귀속재산 국유화 절차는 ▲조사대상 내역 확보 ▲등기부 및 지적공부 조사 ▲창씨 개명한 한국인 선별 ▲일본인 토지 분배·매입 내역 조사 ▲현장 조사 ▲일본인 재산 중 국유화 대상 선별 ▲국유화 조치의 단계를 거친다.

하지만 그동안 귀속재산 환수 실무를 맡아 진행했던 지방자치단체들이 본업이 아니어서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고 피환수자가 제기한 행정소송 등에 행정력이 낭비되면서 사업이 답보상태에 머물자 국유재산 실태조사에 전문성이 강한 조달청으로 2012년 6월 업무가 이관됐다.

조달청은 이때부터 귀속재산 국유화 작업을 본격화해 지난해 말까지 전체 4만1001건 중 2만7000여건을 조사해 약 3400건을 국가재산으로 되돌려 놓는 성과를 거뒀다. 이는 2.2㎢ 면적으로 여의도의 약 75% 넓이로 토지가액으로는 893억원 규모다.

또 2015년부터는 과거 세 차례에 걸친 '부동산소유권이전등기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악용해 귀속재산을 불법 사유화한 은닉재산 122건(토지가액 10억6000만원)을 소송을 통해 환수했다. 은닉재산은 국유재산이지만 등기부 또는 지적공부에 국가 외의 자의 명의로 등기·등록돼 있어 국가가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재산을 말한다.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1만4000여건의 일본인 명의의 재산이 남아 있는 이유로 조달청은 귀속재산이 갖고 있는 몇 가지 특수성을 꼽는다. 먼저 일제 패망, 미군정, 정부수립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매각 관련 기록관리가 부실했고 정부 수립 얼마 후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많은 증빙자료가 소멸됐다는 점이다.

또 등기, 제적등본, 지적공부 등의 증빙자료의 관할기관이 법원·지방자치단체 등으로 분산돼 있어 효율적인 업무처리에 어려움이 많았고 부동산 처리절차도 복잡해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고 설명한다. 특히 관할기관이 재무부, 국세청, 지방자치단체로 변경되는 과정에서 범 정부 차원에서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최근 일본이 대한(對韓)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우대국) 제외로 우리 경제에 대한 위협을 노골화하면서 사회적으로 일본 귀속재산에 대한 관심이 환기된 만큼 정부는 귀속재산 환수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인 과제로 인식하고 총력환수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이에 조달청은 법원·지방자치단체 등 관련 기관이 참여하는 '귀속재산환수 관계기관협의체'를 구성해 실태조사를 조속히 마무리하는 등 귀속재산의 국유화에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우선 아직도 일본인 명의로 남아 있는 귀속재산 1만4000여건에 대한 실태조사를 올해 안에 마무리할 예정이다. 가용인력을 총동원해 통상 5년이 소요되는 작업을 올해 안에 마무리짓는다는 계획이다. 실태조사에 필요한 등기, 제적등본, 지적공부 등의 증빙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법원과 지자체 등 유관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조체계도 구축할 방침이다.

또 법을 악용해 귀속재산을 사취한 은닉재산은 끝까지 추적해 바로잡는다는 입장이다. 일본인 명의 귀속재산을 국유화하는 과정에서 일부 개인이 광복 후 특별법 등을 악용, 부당하게 사유화한 것으로 의심되는 은닉재산 205건에 대해서는 철저한 자료조사와 소송을 통해 반드시 환수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행정적인 개선도 진행할 예정이다. 정상적으로 정부가 매각한 한국인 소유의 일본인 명의 재산은 명의를 변경하도록 유도해 실소유주 관계를 명확히 할 계획이다. 건물의 실체가 없지만 소유자가 조선총독부 또는 일본인 명의로 남아 있는 사례는 관할 지자체가 '부존재확인' 등을 거쳐 직권으로 말소하도록 함으로써 지적 공부상 일제 잔재 청산에 힘쓴다는 것이다.

정무경 조달청장은 "일본인의 귀속 및 은닉재산 국유화는 올해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의 역사적 상징성과 함께 광복 74주년을 맞아 일제잔재 청산과 역사바로세우기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도 귀속재산 조사를 연내 마무리 하고 은닉재산을 끝까지 찾아 국유화해 일제흔적 지우기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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