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표(眞表) 율사 스님은 열두 살 때 고향 인근인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로 출가했다. 진표 율사는 출가 전 어려서부터 활쏘기를 좋아했고, 활 솜씨도 뛰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늘 활을 들고 산과 들을 누비며 사냥을 하는 것이 소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봄날 사냥하러 가던 진표가 논둑에 앉아 쉬다가 개구리를 잡고 사냥 후에 가져가고자 버들가지에 꿰어 물에 담가둔 채 산으로 올라갔다. 사냥한 뒤 개구리는 까맣게 잊어버린 채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이듬해 봄 예전처럼 사냥하러 가던 진표는 논두렁에서 구슬프게 우는 개구리 소리를 듣게 됐고, 문득 지난해의 일이 떠올라 본인이 잡았던 개구리를 꿰어놓은 곳을 가보니 개구리들이 버들가지에 꿰인 채 울고 있었다. 진표는 "내가 어찌 해가 넘어가도록 개구리에게 이런 고통을 받게 했단 말인가?"라는 탄식 끝에 깨달음을 얻어 금산사로 출가했다고 한다.

금산사는 진표 스님이 출가 후 17년간을 몸을 돌보지 않는 망신참회(亡身懺悔) 고행을 통해 마침내 미륵보살과 지장보살로부터 간자와 계본을 직접 받아 금산사로 다시 돌아와 중창 불사를 발원하고, 미륵과 지장보살 도량으로 천년 불사의 불을 지핀 곳이다. 이때가 신라 경덕왕 21년인 762년부터 혜공왕 2년인 766년에 이르는 기간이었다.

그 금산사는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모악15길 1(금산리 39번지)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이다. 모악산(母岳山) 금산사는 신라 말과 고려 초 사이 5교(敎) 9산(山) 가운데 진표 스님이 중창하여 법상종의 근본 도량으로 삼은 백제 사찰이다. 금산사는 강원도 고성군의 금강산 미륵봉에 있었던 발연사(鉢淵寺), 속리산 법주사(法住寺)와 함께 한국의 3대 미륵성지로 인식된다. 또한, 속리산 법주사, 대구 팔공산 동화사(桐華寺)와 함께 3대 법상종(法相宗) 사찰이었다고 한다.

금산사의 창건 및 중창과 관련한 금산사 사적기 등에 따르면 599년 백제 법왕의 자복 사찰로 창건되었다가, 762년 진표율사에 의한 4년여의 중창으로 사찰다운 모습을 갖추게 됐다. 또 금산사가 미륵신앙의 성지로 자리매김한 것은 진표율사 때부터이다.

통상 신라 말 고려 초에 형성된 불교 종파는 교종 종파인 5교(敎)와 선종(禪宗)의 구산문을 의미하는데 5(敎)는 열반종(涅槃宗), 계율종(戒律宗), 법성종(法性宗), 화엄종(華嚴宗), 법상종(法相宗)이었다. 열반종은 무열왕 때 보덕스님이 경봉사, 계율종은 선덕여왕 때 자장 스님이 통도사, 법성종은 문무왕 때 원효 스님이 분황사, 화엄종은 문무왕 때 의상 스님이 부석사, 법상종은 경덕왕 때 진표 스님이 금산사를 근본 도량으로 하여 송풍을 세웠다.

이처럼 금산사는 3대 미륵성지 가운데 하나이면서 법상종 신앙을 동시에 간직하고 있다. 금산사의 창건 시기와 창건주가 분명하지 않지만, 진표 율사가 762년 신라 경덕왕 21년부터 766년인 혜공왕 2년 사이에 미륵장육상을 봉안하는 등 중창하면서 미륵 도량 겸 대사찰로 거듭났고, 고려 시대에 미륵불이 주불인 법상종의 근본 도량이었고 한다.

금산사의 가람배치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대적광전, 미륵전, 방등계단, 적멸보궁 등이다. 특히 미륵 삼존상을 봉안한 3층의 미륵전과 방등계단은 미륵신앙과 관련돼 있다. 미륵전은 미륵불이 불국토인 용화세계에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상징화한 법당이다. 금산사 미륵전은 3층 전각인데 1층은 대자보전(大慈寶殿), 2층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 미륵전(彌勒殿) 편액이 각각 걸려있다. 이는 미륵불이 하생해 3번 설법하여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 하생 신앙의 상징으로 보고 있다. 남쪽 벽면에는 진표 율사가 망신참회 기도 끝에 미륵과 지장보살에게 계를 받는 모습이 벽화로 조성돼 있다. 특히 미륵전의 불단 아래 청동 대좌를 쓰다듬으면서 소원을 빌면 한 가지는 이뤄진다고 하여 많은 불자가 찾는다고 한다.

여기서 미륵신앙은 석가모니 부처님 열반 후 56억7000만년 후에 미륵 부처님이 지상에 내려와 중생을 구제한다는 내용으로 미륵 상생 신앙, 미륵 하생 신앙으로 구분된다. 56억7000만년은 말이 그렇지 우리가 배운 지식으로는 가늠하기 어렵지만, 불가에서는 수행을 통해 누구라도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다. 바로 우리 의식에 존재하는 알음을 뛰어넘는 유식이다. 5식인 안의비설신과 6식인 묘관찰지, 7식인 평등성지를 파타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게 바로 56억7000만년이라는 비유이고, 돈오(頓悟) 즉각 깨달을 수도 있다는 식이다.

사적기와 내려오는 설화에 따르면 진표율사는 몸이 부서지는 처절한 참회 기도를 통해 사부대중에게 누구라도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고, 아픈 이들을 위쪽으로 하는 지장보살이 상주하는 중창 불사를 발원했다고 했다. 진표율사가 금산사 중창 시에 커다란 연못이 있어 이를 메우고 미륵장존불을 조성하려고 하자 이상하게도 흙으로 메우면 다음 날 파헤쳐지곤 했다고 한다. 연못에 사는 용이 파헤쳤기 때문이다. 이때 지장보살이 현신하여 진표율사에게 숯으로 연못을 메우면 용이 떠날 것이라는 방책을 알려준다. 하지만 연못을 메우려면 어마어마한 양의 숯이 필요했다. 그때 갑자기 마을에 눈병이 돌자, 진표 율사는 누구든지 연못에 숯을 한 짐 쏟아붓고 그 물로 눈을 닦으며 낫는다고 소문을 냈다. 이 같은 소문으로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연못은 순식간에 숯으로 메워졌고 마을 사람들의 눈병과 각종 병도 신기하게 나았다. 실제로 지난 1985년 미륵전 보수 공사를 위해 굴착기로 땅을 파는 과정에서 검은 숯이 나왔다고 한다.

진표율사는 말년에 아버지를 모시고 발연사(鉢淵寺)에서 함께 도업을 닦음으로써 효도를 다 하다가 발연사의 동쪽 큰 바위 위에 앉아 입적(入寂)했다. 제자들은 그 시체(屍體)를 옮기지 않은 채 공양하다가 해골이 흩어져 떨어짐에 흙을 덮어 무덤으로 삼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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