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간 회담에서는 말 한마디, 단어 한마디가 갖는 의미가 크다. 그 한마디가 미묘한 사안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이 지난 23일(현지시각) 뉴욕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대북 관계를 획기적으로 '전환(transform)' 하겠다는 메시지를 담았다는 보도를 보면 한반도를 둘러싼 이해 당사국 간 정책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그 당사자인 미국의 대북 협상 전략이 큰 틀에서 전환됐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정상회담 후 나온 '전환(transform)'이라는 표현이 북한 관련 리비아식 해법을 주장해 온 존 볼턴 보좌관 해임 이후 나왔다는 점에서 그렇다.‘선(先) 핵 폐기, 후(後) 보상’으로 불리는 리비아식 해법은 완전한 핵 포기를 선언하고 검증까지 이뤄진 후에야 제재 해제 등의 보상을 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리비아식 해법은 지난 2011년 리비아의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미국이 지원한 반군에 의해 살해되면서 ‘선 핵폐기-후 정권교체’ 모델이었다는 점에서 북미간 대화에 걸림돌로 작용해왔다.

특히 청와대 내에서는 이 같은 중대한 시점에 한미정상회담이 이뤄지고, 그 결과로 한국 측 발표문에 '대북 관계전환, 미국 측의 문건에는 'transform'이라는 단어가 사용됐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백악관에서는 청와대와 협의를 거쳐 이를 영문으로 번역하면서 '관계전환'을 나타내는 단어로 'transform'이라는 단어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관계 개선(improve)'이 아닌 'transform'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고 한다. 청와대도 대북 관계의 근본적 변화에 대한 한미 간 공감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또 한미정상이 '무력공격 금지', '싱가포르 합의 원칙 존중' 등을 놓고 회담했다고 알려지면서 북미대화에 ‘조력자’를 넘어 ‘촉진자’에 양 정상이 뜻을 같이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 한미정상회담 모두발언 중 "북한에 대해 행동(action)을 하지 않는다"라고 발언한 것은 군사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자, 행동이 아닌 협상을 통한 해결 원칙을 제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단 협상의 큰 틀 변화와 해결 원칙을 제시한 만큼 새로 바뀐 틀 내에서 한미, 북미, 남북 간 정상들의 한반도 평화구축 노력은 한 단계 진전된 모습이다.

특히 '70년 적대관계 종식'이라는 문구가 청와대 공식 발표에 포함된 만큼 이후 한미의 대북정책 기조가 북한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진전시키는 쪽으로 무게추가 이동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벌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11월 부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참석 가능성을 두고 '잘 될 것'이라는 관측이 흘러나오는 것도 이 같은 추측을 낳고 있다.

북한도 최근 리비아식 해법을 고수해온 존 볼턴 보좌관의 해임을 계기로 대미 유화 제스처를 보이는 점으로 볼 때 북미대화도 새로운 국면 속에 진행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서훈 국정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최근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 위원장의 부산 방남 가능성에 대해 "비핵화 협상 진행이 어떻게 되는지에 따라서 부산에 오지 않겠나"라는 보도도 있는 만큼 이해 당사국 간의 대화 변화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큰 틀에서 한 단계씩 변화되고 있다는 게 이번 한미정상 간 회담 후 '관계 개선(improve)'이 아닌 'transform'이라는 용어다.

다만 이 과정에서 한미 간 현안인 주한미군 주둔 관련 방위비 분담 문제나 미국이 원하는 무기구매 확대, 한일 간 지소미아 복원 등은 우리가 떠안아야 할 과제다. 나아가 남북한과 북미 간 협상에서 ‘조력자’를 넘어 ‘촉진자’ 역할을 동시에 해야 할 우리 정부에게는 이중고의 부담을 안고 있는 게 현실이다.

첨예한 이해 당사국 간에 ‘조력자’와 ‘촉진자’ 역할을 병행한다는 것은 긴 호흡을 갖고 인내도 결단도 함께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간 남북, 북미, 한미 간 대화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때로는 유엔총회 등 국제무대에서, 때로는 2018평창동계올림픽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당위성을 알려 온 문재인 정부의 외교적 행보도 한편으로는 빨라지겠지만 긴 호흡이라는 노력도 감내해야 할 과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길은 남북 모두가 함께 걸어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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