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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선묘 보살이 뜬 돌로 의상 대사를 호위한 부석사(浮石寺)
  • 최종걸 주필
  • 승인 2019.10.04 16:15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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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모했던 의상 스님을 때론 용으로 그리고 뜬 돌로 환생과 변신을 해 불법을 지킨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鳳凰山) 부석사(浮石寺)에는 애틋한 사연이 깃들어있다.

당나라 유학 후 귀국하는 의상 대사를 험한 바닷길을 외호하기 위해 용으로 환생하는가 하면, 불사를 방해한 도적 떼를 쫓기 위해 공중에 바위 돌로 둥둥 떠다녔다는 선묘 낭자의 아름답고 애절한 사연이 내려온다.

의상 대사는 당나라 유학 후 부처님의 만행(萬行)과 만덕(萬德)을 기린 화엄학을 강론하기 위해 문무왕의 왕명으로 676년 부석사를 창건했다. 당시는 산에 산적들이 많아 절을 세울 때는 이들 산적과 화해를 하거나, 이들을 내쫓지 않으면 사찰 건립이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의상 대사와 선묘 낭자의 인연은 이렇다. 당나라 유학 중이었던 의상 대사는 당나라가 30만 대군으로 신라를 침범하려는 형세임을 알고 이를 대비토록 문무왕에게 전하기 위해 문무왕 11년인 671년 급거 귀국하게 된다. 의상 대사는 급히 귀국해야만 하는 사연 때문에 귀국길에 한때 하숙했던 곳에 들러 집주인과 집주인 딸에게 들러 작별을 고하려 했으나 선묘 낭자는 마침 출타 중이라 만나지 못하고 귀국선을 탔다.

선묘 보살은 의상 대사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선물로 주려고 승복을 정성껏 마련하여 손꼽아 기다리던 중 잠시 집을 떠난 사이에 의상 대사가 다녀갔다는 이야기를 부모한테서 듣고 만들어 두었던 선물을 가지고 의상 대사를 찾았으나 이미 배는 출발하여 바다 위에는 흰 돛만 보일 뿐이었다. 떠나가는 배를 하염없이 보고 있던 선묘 보살은 물결이 거센 바다에 몸을 던져 용으로 환생, 이 몸이 용이 되어 의상 대사님을 무사히 귀국도록 하겠다는 원을 세웠다. 용으로 환생한 선묘 보살은 의상 대사가 탄 배의 반야용선(般若龍船)으로 의상 대사의 멀고 험한 귀국길을 줄곧 호위 외호했다.

귀국하자마자 문무왕은 의상 대사를 불러 지금의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에 절을 짓도록 했다. 왕명에 따라 봉황산의 지세를 살펴본 즉, 화엄종지(華嚴宗旨)를 크게 선양할 수 있는 명산이긴 하나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산적 떼가 문제였다. 봉황산을 점령하고 있던 산적 무리 500여 명에게 수차례 자리를 양보해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이들은 막무가내로 오히려 스님을 겁박했다. 이에 용으로 스님을 외호하고 있던 선묘 낭자는 커다란 바위로 변신하여 이들 도적 떼들을 위협, 봉황산에서 내쫓고 의상 대사의 불사를 도왔다고 한다. 이 돌이 부석사 무량수전 왼쪽에 큰 바위가 마치 떠 있는 듯한 부석(浮石)이다. 이 같은 사연을 담은 부석사이다.

부석사 사적기 등에 따르면 부석사는 화엄종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지만 해동 화엄종찰로 화엄 사상의 발원지이다. 부석사는 의상 대사가 화엄 사상을 펼치기 위해 지은 화엄종의 본찰이지만 주요 전각과 불전에 모셔진 불상은 일반적인 화엄종 사찰과는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에 봉안된 아미타불은 서방 극락세계에서 설법을 펼친 부처님을 모셨다. 교리상으로 화엄 사상이 기반이지만 외형적으로는 정토사상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으므로 부석사는 아미타불 신앙과 화엄학이 조화를 이룬 특이한 사찰이다. 부석사를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무량수전과 선묘각 그리고 조사전 입구에 지금도 자라고 있는 선비화로 요약된다.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주불전이고, 선묘각은 의상 대사와 선묘 낭자의 설화와 관련된 창건 설화와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주불전으로 초석을 다듬어 놓은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되어 있다. 내부에는 아미타여래 부처님을 동향으로 봉안했다. 아미타여래 부처님을 법당의 중앙이 아니라 왼쪽 벽에 모셨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는 교리상으로 아미타불이 서방 극락세계의 부처이기 때문에 서쪽에 위치하여 동쪽을 바라보는 형식을 취한 것으로 불교학자들은 풀이하고 있다. 그리고 이 불상은 고려 시대에 제작된 소조 여래좌상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다.

선묘각은 무량수전 뒤편 오른쪽에 있는데 의상 대사의 창건 설화와 관련된 인물인 선묘 보살을 모신 각이다. 내부에는 지난 1975년에 그린 선묘의 영정이 걸려 있다. 선묘각은 선묘정의 부석과 함께 부석사 창건 설화 내용을 실재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부석사 경내 맨 위쪽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 전각인 조사전앞에 선비화라는 나무가 아직도 자라고 있다. 의상 대사가 부석사를 창건하고 나서 천축국(인도)에 가려고 평소 지녔던 지팡이를 땅에 꽂으면서 “이 지팡이에 뿌리가 내리고 잎이 날 것이다. 이것을 보고 내 생사를 살피면 된다.”라고 했다고 한다. 바로 이 지팡이에서 뿌리가 내려 지금도 사시사철 조사전 처마 앞에 때가 되면 꽃이 피고 잎이 나고 지는 선비화라고 부른다. 또 선비화는 아기를 못 낳은 여인이 잎을 삶아 그 물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 때문에 너도, 나도 나뭇잎을 따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보호를 하고 있다.

이외에도 부석사 경내 석등은 백번만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내려오고 있어 부석사를 찾는 순례자나 일반 방문객들이 종종 그 둘레를 돌고, 초파일에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 달밤에 이 석등을 돌면서 복을 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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