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석유선 취재팀장

지난달 말 채권은행이 발표한 구조조정 대상 건설업체 명단 발표는 그야말로 해프닝의 연속이었다.

당초 25일 오전으로 알려졌던 발표 시각은 오후 3시로 돌연 연기됐다. 그로 인해 내일자 기사를 준비했던 조간 신문뿐만 아니라 정부, 지자체, 공기업, 보증기관, 하도급 업체들은 발표당일 아침내내 사전 명단 확보로 진땀을 뺐다.

문제는 발표 당사자인 채권은행들조차 해당 기업들의 실명 공개를 하지 않아, 공식 발표 후에도 ‘C·D등급 실명 확보’라는 미션이 언론사와 각급 건설사에게 떨어졌다.

공시를 통해 알아서 공개토록 한 채권은행의 비공개 방침으로 하루종일 수많은 업계 종사자와 언론이 정보캐기에 혈안이 되어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이번 해프닝은 지난해 구조조정 발표 후 실명이 공개된 기업이 기업개선(워크아웃)절차를 밟기도 전에 부정적 평가를 받아 신규사업에 타격을 입는 등 곤혹을 치른 탓에 채권은행이 비공개 방침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결국 발표 후 몇시간내 실명은 만천하에 공개됐고 시장에 혼란만 가중시킨 꼴이 됐다. 구조조정 명단을 발표한다면서 비공개로 하면, 시장의 리스크가 줄어들 것이란 판단은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인 발상이다.

문제의 본질은 건설시장이 이번 구조조정 발표로 인해 얼마나 뼈아픈 자기 반성을 하고  업계 스스로 옥석 가리기를 하느냐에 있다.

구조조정 대상으로 확정된 건설사들은 명단이 발표될 때마다 위기극복에 사활을 걸겠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그 상황만 모면하기 위해 수주 능력도 되지 않으면서 "공사물량을 확보하겠다, 관리비용을 줄이겠다"며 보여주기식 자구책만 남발하고 있다.

정부도 이들을 상대로 강력한 구조조정을 강요하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다. 퇴출할 기업은 퇴출시키고 공종 조정, 건설사간 상생협려게, 하도급제 개선 등 건설산업 선진화의 채찍을 가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채권은행이 주도하는 구조조정 명단 발표도 이제 건설업계 스스로 손을 보고 새로운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경영상황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간 경영성과를 중심으로 한 현재의 은행권의 기업대상 신용평가는 건설사의 건전도와 위험요인을 파악하는데 부족함이 많다.

남이 발표하는 잣대에 이끌려 이리저리 휘둘리는 모습만 재탕하는 것은 결코 건설업계의 진정한 구조조정도 아니며, 궁극적인 발전도 가져오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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