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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관세음보살 기도발이 통한 보리암(菩提庵)
  • 최종걸 주필
  • 승인 2019.10.13 13:06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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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남해군 금산(錦山)내 보리암(菩提庵)은 신라 시대 창건된 절로 강원도 낙산사 홍련암, 강화도 보문사와 더불어 한국 관음 신앙의 3대 기도처로 알려져 있다.

보리암은 한국의 대표적인 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성지중 하나다. 법화경과 화엄경에 등장하는 관세음보살은 법신불의 대행자 역할을 하면서 대자대비의 상징으로 모든 중생의 고통을 직관하여 구제해준다. 십일면관음, 천수천안관음 등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듯이 일반 대중의 고통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보살로 아미타불과 함께 일반 대중에게 가장 친근한 보살이다.

이처럼 관음 신앙은 삼국 시대에 중국에서 전래된 이후 통일 신라, 고려, 조선 시대에 걸쳐 많은 영험담과 설화를 이어오고 있다. 관음 신앙 가운데에서도 남해 보리암은 특히 해수 관음 신앙을 대표하고 있다.

보리암은 두가지 창건설화가 내려오고 있다. 가락국 김수로왕의 황비인 인도 아유타국 허황옥 공주의 삼촌인 장유 선사가 창건했다는 것과 신라 원효 대사가 강산을 유람하다 산이 빛나는 것을 보고 보광사라는 절을 짓고 이 산을 보광산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우선 원효대사 창건 설화이다. 683년 신문왕 3년에 이 산에 풀집을 짓고 수도하던 원효 대사가 희뿌연 광채를 뿜으며 나타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감동으로 창건했다고 한다. 원효 대사가 화엄경에서 관세음보살의 상주처인 보광궁에 착안하여 산 이름을 보광산(普光山), 관세음의 별칭인 보문(普門)에서 보자를 인용, 절 이름을 보광사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남해 보리암의 핵심 상징은 관세음보살이 봉안된 보광전과 해수관음상, 그리고 3층석탑이다. 보광전은 663년 문무왕 3년에 초창됐다. 주불은 김수로왕 시기의 허 왕후가 인도에서 모셔왔다는 관세음보살이고, 남순동자와 해상용왕이 좌우 보처로 봉안돼 있다. 연꽃 대좌 위에 관음보살이 정병을 들고 서 있다. 보관에는 석가모니불 좌상이 새겨 있다.

보리암 삼층석탑과 관련된 이야기에 따르면 보리암 삼층석탑은 가락국 김수로왕의 왕후인 허 황후가 인도에서 올 때 배에 싣고 왔다고 한다. 이 탑 밑에는 부처님의 진신 사리가 봉안되어 있어 탑 위에 나침반을 올려놓으면 그 바늘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성계(1335-1408)와 금산의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성계가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열기 위해 전국의 이름난 성지에서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계룡산과 지리산에서 기도가 응답이 없자 보광산을 찾아 백일 기도를 한 후 조선 개국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 기도를 하고 조선 왕조를 개국하자 그에 감사하는 뜻에서 산 이름을 온 산을 비단을 두른다는 뜻을 지닌 금산(錦山)이라 했다. 그 이후 1660년 현종 1년에 왕이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 이름도 보리암(菩提庵)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보광전에서 200미터 떨어진 바위에는 이성계가 기도했던 자리인 이씨기단(李氏祈壇)이 있는데 매년 가을 전주 이씨 종친회에서 제사를 올린다고 한다.

근래들어 보리암에 모셔진 관세음보살은 용두 관음으로 해수관음상을 헬기로 이운할때 관음상 주위에서 서기가 어리고 빛이 흩뿌려졌다고 한다. 또한 세명의 스님이 기도 정진 끝에 관음보살 목소리를 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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