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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걸의 창건설화] 계룡산이 품은 동학사, 갑사, 신원사, 마곡사
  • 최종걸 주필
  • 승인 2019.10.24 13:25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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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의 대표적인 산중 하나를 들라면 계룡산(鷄龍山)이다. 닭도 수행하면 용으로 환생할 수 있다는 전설을 품고 있는 산이다. 그 계룡산이 품고 있는 사찰 중 갑사, 동학사, 신원사와 함께 마곡사에도 깊고 깊은 창건설화가 있다.

먼저 동학사(東學寺)는 이 절의 동쪽에 학 모양의 바위가 있으므로 동학사(東鶴寺)라 하였다는 설과 고려 시대 충신이자 동방이학(東方理學)의 조종(祖宗)인 정몽주(鄭夢周)를 이 절에 제향(祭享)했다 해서 동학사라는 설화가 함께 전해진다.

동학사 창건은 남매탑 전설이 내려오는 신라 33대 성덕왕 23년인 724년 상원(上願) 조사 스님부터 시작된다. 당시에는 문수보살이 강림한 도량이라 하여 절 이름을 청량사(淸凉寺)라 했다. 이후 고려 태조 3년인 920년 도선(道詵)국사가 중창한 뒤 태조의 원당(願堂)이 되었고, 조선 태조 3년인 1394년 고려의 유신(遺臣) 길재(吉再)가 동학사의 운선(雲禪) 스님과 함께 단(壇)을 쌓아서 고려 태조를 비롯한 충정왕·공민왕의 초혼제와 정몽주의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1457년 대학자이자 스님이었던 김시습(金時習)이 조상치(曺尙治)·이축(李蓄)·조려(趙旅) 등과 더불어 삼은단 옆에 단을 쌓아 사육신의 초혼제를 지내고 이어서 단종의 제단을 증설했다. 다음 해에 세조가 동학사에 와서 제단을 살핀 뒤 단종을 비롯한 정순왕후(定順王后)·안평대군(安平大君)·금성대군(錦城大君)·김종서(金宗瑞)·황보인(皇甫仁)·정분(鄭奔) 등과 사육신, 그리고 자신이 왕위를 찬위(簒位: 임금의 자리를 빼앗음)하는 과정에서 원통하게 죽은 280여명의 성명을 비단에 써서 주며 초혼제를 지내게 했다. 이후 초혼각(招魂閣)을 짓게 하고 인신(印信: 도장)과 토지 등을 하사하는 한편 동학사라고 사액하고, 스님과 유생들이 함께 제사를 받들도록 해 신라, 고려, 조선 시대 왕실에 얽힌 이들 혼의 극락왕생을 발원했던 깊은 사연을 간직한 절이다.

다음은 화엄 사상 중심 천년고찰 갑사(甲寺) 창건설화다. 닭도 수행하면 용으로 환생한다는 계룡산(鷄龍山)을 대변하는 사찰이다. 전라남도 영광 불갑사, 영암 도갑사와 함께 3갑으로 한국 불교사에 빛나는 3寺(사)다.

계룡산 서쪽에 있는 갑사의 창건설화는 다양하다. 석가모니 열반 후 아소카 왕은 사리보탑에서 많은 양의 사리를 발견해 시방세계(十方世界)에 나눴다. 그때 사천왕 가운데 북쪽을 담당하던 비사문천왕을 계룡산에 보내 바위 안에 사리를 담아 두도록 했다고 한다. 훗날 고구려 출신인 아도화상이 신라 최초의 사찰인 도리사(桃李寺)를 창건하고 고구려로 돌아가기 위해 계룡산을 지나갈 때 산중에서 상서로운 빛이 하늘까지 뻗쳐오르는 것을 봤다. 그 빛을 찾아가 보니 천진보탑이 있었다. 아도화상은 탑 아래 배대에서 예배한 후 갑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이후 당나라 종남산의 지엄 선사에게 화엄 사상을 배우고 귀국한 의상대사가 통일 신라 시대에 천여 개의 전각을 중수하고 화엄대학지소(華嚴大學之所)를 창건해 나라의 큰 사찰 중 하나인 국중대찰(國中大刹)이 됐다.

갑사는 백제의 고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 6교구 본사 마곡사 말사지만 1911년 이전에는 계룡산 제1의 사찰이었다. 통일 신라 시대인 679년 문무왕 19년에 의상(義相) 대사가 중수하면서 화엄종 10대 사찰에 포함된 화엄십찰 중 하나이다. 갑사의 명칭은 창건 당시 풀이 사면의 산을 거느리다가 마치 갑(甲) 자처럼 가운데 한곳으로 모여 빼내는 것 같은 형상이라서, 또는 하늘과 땅 사이 가운데서 가장 으뜸이라는 의미로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임진왜란 때 승군을 처음 일으켰던 영규스님 이후 서산대사와 함께 전투에 혁혁한 공을 세운 휴정 스님이 승군과 함께 주둔했던 곳이기도 하다.

중수과정의 이적 또한 흥미롭다. 임진왜란에 이어 정유재란으로 갑사가 불에 타 다시 중수하고자 했던 주지 스님이 간절한 발원을 하던 중 어느 날 꿈에 하늘에서 황소 한 마리가 법당 마당에 와 제가 스님을 도와 절을 다시 세우는 데 힘을 보태겠다 하고 갔다고 한다. 꿈이 생생해서 깨어보니 간밤에 꾼 꿈속 그 황소가 법당 마당에 “음매 음매 음매~~~”하고 나타났다고 한다. 그 황소는 이후 매일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절을 짓는 데 필요한 나무와 기와 또는 절을 짓는 데 동참한 신도들이 먹을 쌀 등을 등에 지고 왔다고 한다. 황소 덕분에 절 중창이 원만 성취될 즈음 그 황소는 죽었다. 주지 스님은 이를 부처님의 가피로 여겨 황소를 잡아먹지 않고 탑을 조성했다. 이를 공우탑라 부르고 여전히 보전 중이다.

필자가 갑사 스님들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근세기에 기도 중인 천진보탑 옆 암자에서 석두 스님이 기도 정진 중 누구도 문을 열지 말라 했건만 수일이 지나도 스님이 기도 중에 나오지 않자 어느 보살이 엿보는 순간 보지 못하게 빛을 발했다(방광했다). 오랜 정진 끝에 석두 스님이 도봉산 망월사 무문관으로 만행을 떠나려 하자 계룡산 호랑이가 밤새 포효했다는 이적을 보여 수행자의 사표 된 갑사 수행 이야기다.

계룡산 남쪽 자락에 있는 신원사(新元寺)는 백제 651년 의자왕 11년에 열반종(涅槃宗)의 개산조인 보덕(普德)스님이 창건했다. 신원사는 계룡산 동서남북 4대 사찰 중 남쪽 자락에 있다 해서 남사(南寺)로 불렸다. 주목할 것은 대웅전에서 동쪽 약 50m 거리에 계룡산 중악단(中嶽壇)이 있다. 본래는 계룡산의 산신제단(山神祭壇), 즉 계룡단이었던 것이 조선 말 고종 때 북한 묘향산 상악단(上嶽壇), 남한 지리산 하악단(下嶽壇)을 두고 있었으므로 중악단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신라 때는 중사례(中祀禮)로 제사를 지냈고, 조선 시대에는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제사를 지냈으나 현재에는 향전(香奠, 초상집에 부조로 내는 돈이나 물품)을 올린다고 한다. 중악단은 우리나라 산악신앙의 제단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계룡 삼사의 본사 마곡사(麻谷寺)는 계룡산이 품고 있는 4대 사찰 중 하나인 충남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태화산 자락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이다. 갑사와 함께 한국 불교사에 기리 빛나는 창건설화가 있다. 신라 시대 당나라에서 귀국한 자장(慈藏) 율사가 통도사, 월정사와 함께 마곡사를 세웠다고 한다. 자장 율사가 불사를 회향할 때 그의 법문을 듣기 위해서 찾아온 스님과 신도들이 ‘삼대 마(麻)와 같이 무성했다’라고 하여 ‘마(麻)’자를 넣어 마곡사(麻谷寺)라고 했다고 한다.

마곡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었던 김구(金九) 선생과도 인연이 깊은 사찰이다. 대한제국 말기에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인 장교 초치다 보스케(土田壞亮)를 김구 선생이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 나루에서 죽인 뒤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해 이 절에 잠시 몸을 피하고 있었다. 지금도 대광명전 앞에는 김구 선생이 심은 향나무가 있는데, 그 옆에 ‘김구는 위명(僞名)이요 법명은 원종(圓宗)이다’라고 쓴 푯말이 꽂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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