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이 천하의 근본이라고 흔히 일컫는 뜻인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은 농업이 그만큼 국가정책에서 중요하게 여겨야 할 대목이란 뜻이다. 미국도 중국도 농업정책을 우선시한다.

기술패권을 두고 다투고 있는 미국과 중국도 자국산 농산물 수출과 농민 정책에 각별한 대응에 나서고 있다. 중국에만 있는 1호 문건이라는 게 있다. 매년 신년에 첫 번째로 나오는 정부 정책문서라는 의미인 1호 문건의 핵심은 '농민'과 '농업'이라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중 무역갈등 속에서도 미국산 농산물을 중국이 사주지 않는다고 대놓고 중국에서 수입하는 모든 품목에 대해 관세 폭탄을 퍼붓고 있다. 그렇다 보니 중국은 미국산 농산물을 협상의 지렛대 삼아 무역협상을 조율하고 있다.

우리도 다르지 않다. 도시화가 집중됐다지만 국토의 70% 규모가 산과 논밭으로 농산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이 때문에 정부가 세계 주요 기구들이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해서 대응하고 있지만 유독 농업 부분만은 개도국으로 유지하려고 애써왔다. 개도국으로 유지해야 개도국이 누리는 혜택이 곧 농업을 보호하는 방어막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선진국과 개도국(개발도상국)을 명확하게 구분 짓는 일관된 기준은 통상적으로 기대수명ㆍ소득수준ㆍ문맹률 등이 경계선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인당 소득수준, 무역 자유도, 금융 개방성 등을 기준으로 대한민국을 지난 1997년에 개도국에서 졸업시켰다. 또 직전인 1996년에 대한민국은 ‘경제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회원국에 가입했다. 세계은행은 2016년부터 1인당 소득을 기준으로 저소득국가(1025달러 이하), 중하 소득 국가(1026~4035달러), 중상소득 국가(4036~1만2475달러), 고소득 국가(1만2476 달러 이상)로 국가를 분류한 가운데 우리는 이미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가 넘어 고소득 국가에 속한다. 대부분 주요 국제기구가 한국을 개도국이 아닌 선진국으로 분류하고 있는 셈이다.

주요 국제기구들이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분류했지만 농업 분야만큼은 개도국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이번에 정부가 개도국이 누릴 수 있는 특혜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의 압력에 정부가 사실상 백기 투항한 셈이다. 농업 분야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는 대신 자동차 등 우리 수출주도 분야에서 보복을 피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지만 향후 미칠 파장과 대응책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발단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26일(현지 시각) 한국을 포함한 11개 나라·지역을 지명해 'WTO(세계무역기구)가 개도국 문제를 손봐야 한다'라고 촉구한데서 비롯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든 네 가지 요건은 주요 20개국 협의체(G20) 회원국,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세계은행(WB)이 분류한 고소득 국가, 세계 상품 교역의 0.5%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 등이다. 우리나라는 11개 나라·지역 중 이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유일한 국가로 빼도 박도 못 하는 처지였다. 마치 한국을 지목해서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라는 협박이나 다름없는 대목이다. 그러면서 "WTO가 90일 안에 실질적인 진전을 이뤄내지 못하면 미국 차원에서 이들 국가의 개도국 대우를 일방적으로 중단하겠다"라고 선포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지난 25일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결정 시한을 이틀 넘긴 시점에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보다 앞서 일찌감치 대만·브라질·싱가포르 등이 향후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후 우리 정부도 울며 겨자 먹기로 뒤따랐다. 같이 지목된 중국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은 세계 2번째 경제 대국임에도 WTO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돼 각종 특혜를 누린다고 비판을 가했지만, WTO 개도국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농업 외 모든 분야가 지표로 볼 때 선진국으로 분류된 마당에 농업 분야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대책이 발등의 불이 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부가 농업 분야에 쏟아부은 보조금이나 대체 농산물에 대한 해외 농산물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가정하에 기존의 농업정책을 수정하거나 대안 정책을 수립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우리가 수출주도형 산업정책을 펴는데 정부 역량을 집중한 경험을 살려 농산물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점을 반영할 때다.

때마침 정부가 지난 4월 25일 농어업의 지속할 수 있는 발전 방향을 협의하고 대통령 자문에 응하기로 하는 대통령 직속 기구로 '농어업 농어촌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위원회는 위원장 1명을 포함해 30명 이내의 위원에는 당연직 위원인 기획재정부장관, 농림축산식품부장관, 해양수산부장관, 국무조정실장과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을 포함한 ‘농업 · 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 제3조 제4호에 따른 생산자단체, ‘수산업 · 어촌 발전 기본법’ 제3조 제5호에 따른 생산자단체 등 농어업인단체의 대표 12명 이내와 농어업 · 농어촌에 관한 전문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학계 등 관련 분야의 전문가 12명 이내로 구성돼 있어 이 위원회에서 얼마든지 대응책이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위원회 기한도 5년이나 된다.

농어민이 생산하고 관계 식품분야와 유통기업들이 가공과 유통 그리고 수출을 융합한 6차산업을 주도한다는 정책을 마련할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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