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징금 행정소송·법인·전·현직 임직원 형사소송 모두 패소
대리점, 거래중단 우려 실명 비공개, 증거력 상실…5년 조사 헛일돼

▲ 공정거래위원회 로고.

[일간투데이 이욱신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5년간의 조사 끝에 법인 뿐만 아니라 임직원 형사고발 등 고강도 제재를 내린 현대모비스 대리점 물량 밀어내기 사건이 공정위의 완패로 결론났다.

형사 사건에서 현대모비스 임원들에 대해 무혐의 결정이 내려진 데 이어 현대모비스가 제기한 행정소송에서도 공정위가 패소했다. 공정위에 현대모비스의 갑질 피해를 진술한 대리점들이 향후 거래중단을 우려해 검찰과 법원에 나오지 않으면서 증거가 신뢰성을 잃은 것이 결정타가 됐다.

당초 이 사건은 현대모비스가 대리점 상생기금 출연과 피해보상 등 자체 시정방안을 내놓으면서 사건을 종결짓는 동의의결을 신청했는데도 공정위가 시범케이스로 강공책을 폈다 명분도 실리도 다 놓친 모양새가 됐다.

28일 법원과 공정위 등에 따르면 최근 대법원은 현대모비스가 제기한 시정명령 및 과징금 처분 취소 소송에서 현대모비스가 승소한 원심 판결을 유지했다. 대법원은 심리도 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는 '심리불속행기각' 결정을 내렸다.

공정위는 앞서 지난해 2월 대리점에 부품을 강매하는 '밀어내기식' 영업을 한 혐의로 현대모비스에 과징금 5억원을 부과하면서 법인과 전·현직 임직원을 형사 고발한 바 있다. 공정위는 이 사건을 2013년 처음 접수한 뒤 5년간 조사를 진행했다.

공정위는 현대모비스가 2010년 1월부터 2013년 11월까지 4년간 과도한 매출 목표를 설정하고 1000개 대리점에 부품을 강매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이 사건은 김상조 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공정위원장 재직 시절 "공정거래 질서를 어지럽히는 기업에는 법인 뿐만 아니라 임원 등 개인에 대해서도 형사 고발을 하는 등 강력 대응하겠다"고 밝힌 뒤 첫 임원 고발 사례여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해 11월 현대모비스에 대해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공정위가 1000여개 현대모비스 대리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을 때 400여개 대리점이 응답했고 공정위는 설문조사에서 부품 밀어내기가 있었다고 답한 대리점들의 응답 내용을 증거로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상당수 대리점이 검찰에서 피해 사실이 없다고 진술하거나 검찰 출석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모비스가 제기한 행정소송에서도 대리점들의 설문조사가 문제가 됐다. 공정위가 법원에 제시한 이들 대리점의 응답서에는 대리점주의 실명이 들어가지 못했다. 현대모비스와 계속 거래를 해야 하는 을의 입장에서 실명으로 나설 대리점은 없었던 것이다.

서울고법은 "실명이 없는 설문조사 내용은 증거 능력이 없다"고 보고 "현대모비스의 물량 밀어내기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현대모비스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도 심리도 하지 않은 채 사건을 종결했다.

세상의 주목을 받은 대형 사건이 심리불속행으로 끝나자 공정위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는 분위기다. 당초 이 사건은 현대모비스가 자진시정 방안을 이행하는 것으로 법 위반 여부를 따지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는 동의의결을 신청했다가 피해 구제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기각된 사안이다.

현대모비스는 동의의결을 신청하면서 대리점 상생기금 100억원을 출연하고 동의의결 확정일로부터 1년간 대리점 피해를 보상하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공정위의 관계자는 "상당히 중요한 사건인데 대법원에서 심리불속행으로 끝낸 것은 의외"라며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하는 갑질을 제재할 때 피해자의 진술이 결정적인데 이를 법원에서 쓰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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