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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걸의 창건설화] 나반존자가 짐꾼으로 현신했다는 사리암(邪離庵)
  • 최종걸 주필
  • 승인 2019.10.28 14:17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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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거산(虎踞山) 또는 운문산(雲門山) 사리암(邪離庵)은 미륵불이 올 때까지 중생을 제도한다는 나반존자(那畔尊者) 기도 도량으로 경북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길 526에 있는 기도 도량이다.

사리암이 있는 사리굴(邪離窟)은 운문산에 있는 네 곳의 굴 중 하나로 동쪽은 사리굴(邪離窟), 남쪽은 호암굴(虎巖窟), 서쪽은 화방굴(火防窟), 북쪽은 묵방굴(墨房窟)로서 옛날에는 이 굴에서 쌀이 나왔는데 한 사람이 살면 한 사람 먹을 만큼의 쌀이, 두 사람이 살면 두 사람 몫의 쌀이 나왔다고 한다.

하루는 공양주 스님이 더 많은 쌀을 얻으려고 욕심을 내어 구멍을 넓히자 쌀은 나오지 않고 물이 나오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 장소는 나반존자(那般尊者) 상이 모셔진 바로 아래다.

호거산에서 호거(虎踞)는 산세의 웅장함을 뜻하고 사리암에서 사리(邪離)는 사악함과 멀리한다는 의미로 속됨과의 결별을 뜻한다고 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 말사인 운문사와 사리암은 삼국유사를 집필한 일연 스님이 고려 충렬왕 때 운문사 주지 스님으로 추대돼 삼국유사를 썼던 곳이기도 하다.

운문사 산 내 암자인 사리암은 관음전, 굴 법당, 천태각(天台閣), 산신각을 중심으로 기도 도량의 품격을 갖추고 있다.

사리암은 고려 시대 때부터 나반존자 기도 도량으로 영험 설화도 이어져 오고 있다. 나반존자는 부처님 사후 미륵부처님이 출현하기 전까지 부처가 없는 동안 중생을 제도하는 깨달음의 화신이다. 이와 관련해서 한 사리암의 주불전인 관음전 주련도 독성(獨聖 나반존자)에 관한 것이다. 이 같은 주불과 주련은 우리나라 사찰에서 보기 드문 곳이다.

나반존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이후 미륵불이 출현하기까지 부처님이 없는 동안 안 중생을 제도하려는 원력을 세운 분으로 부처님의 부촉을 받고 항상 천태산 상에서 선정을 닦으며 열반에 들지 않고 말세 중생의 복 밭이 되어 미륵불을 기다리는 존자이다.

나반존자 상이 봉안된 또 천태각(天台閣) 일명 독성각에는 조선 헌종 11년인 1845년에 신파 스님이 조성하면서 나반존자를 모신 곳이다. 천태각은 나반존자가 수행했다는 중국 절강성(浙江省) 천태산(天台山)을 기린 곳으로 나반존자 후면에는 1851년에 봉안된 독성탱화, 1965년에 경봉 선사가 점안한 산신탱화가 조성돼 있다. 나반존자 상은 조선 후기에 봉안된 것으로 흙을 구워 만든 채색 소조상이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입에 미소를 머금고 있어 인자한 할아버지의 모습이다.

사리암은 고려 초 보양 국사가 930년에 창건하고 1845년에 효원 스님이 중창한 이후 1977년부터 1998년 사이 명성 스님이 불사를 주도해서 경북 일대 기도 도량으로 신도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강원도 상원사 예불 길에 나섰던 세조의 등창을 치유하기 위해 문수보살이 때밀이 동자로 현신했다면 사리암 나반존자는 짐꾼으로 부처님 전에 올리는 공양물을 대신 졌다는 영험담이 내려오고 있다. 어느 날 부처님 전에 공양물을 올리려고 바리바리 짐을 지고 사리암에 오르다 지친 신도를 본 나반존자는 신도의 무거운 짐을 대신 옮겼다는 것이다. 그 신도가 지쳐 더는 오르기가 힘들 것 같다고 여긴 나반존자는 젊은 산객으로 현신해 그 짐을 대신 지고 신도와 함께 사리암까지 안내한 후 홀연히 사라졌다는 일화다.

또 있다. 조선 고종 황제가 몸이 불덩이로 고행을 하던 중 청우 스님이 사리암에서 백일기도를 주관하던 중 꿈에 선인이 나타나 임금님의 머리에 침을 꽂아주라고 해서 이를 어의들에게 전하니 깨끗이 나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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