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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칼럼]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 일간투데이
  • 승인 2019.10.29 11:18
  •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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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박사(서경대학교 나노융합공학과 학과장)

[일간투데이] 기술을 개발하는 엔지니어의 입장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20대 말에 이천에 있는 반도체 회사 과장으로 일할 때다. 늦게까지 일하고 사수인 김대리님 차를 얻어 타고 퇴근하다 보면 방금 전 지나친 차의 미등이 안 보일 정도로 안개가 자욱한 지역이 있었다.

지형적인 영향으로 발생한 안개인지라 조심해야 할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고, 양쪽 창문을 열어 운전석과 조수석 쪽으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서행하며 안개 지역을 벗어났다. 경험과 촉과 협동을 바탕으로 깊은 안개 속이라 할지라도 안전을 도모하며 가야할 방향을 찾게 된 것이다.

조금 나이가 들고 나서는 안개 속에서도 더 나은 대처를 할 수 있었다.

지금도 엔지니어로 살아가면서 비슷한 경험을 한다. 특히 첨단 기술분야의 차세대 기술 향방은 짙은 안개 속에 저 너머에 있다.

손을 뻗어 만져보려 하면 내 손 끝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지경이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아가야 한다. 해내야 하는 일의 범위 내에서 익숙해진 기술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목표에 가까이 가는 것이다.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사이에는 그것을 명확히 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하는데,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경계를 넉넉하게 높게 잡거나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일에 대한 한계를 자랑하기 좋을 만큼 작게 잡으면 몰양심과 사기의 경계에 서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모두 알 듯 어떤 사람은 그 경계를 속이며, 다른 사람을 속이기 전에 스스로 내적 확신을 통해 자신을 먼저 속인다.

개발 분야에서 최악의 관리자는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경계를 자신의 양심이 찔리지 않는 한계까지 설정한 후에 이것을 토대로 로드맵을 만들어 자신의 손바닥에 있는 시간표상의 시간들만 바꿔가며 아랫사람들을 쥐어짜는 사람들이다. 불행히도 규모 있는 회사라면 거의 모든 회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엔지니어, 교육자, 정치 · 경제 · 법조 · 종교 · 예술인 할 것 없이 권한과 직급이 높아질수록 그 경계선 상에서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솔직해지기는 참 쉽지 않은 것 같다.

가끔은 아인슈타인처럼 이후 수백 년 간 과학계를 밝힐 눈부신 빛을 발하는 사람도 있고, 최근 발표된 노벨상 수상자들과 같이 우리의 삶에 크게 도움이 되는 방법론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어떤 분야든, 다른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한 미증유의 분야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기존에 검증된 체계에 의존하여 아무도 보지 못하였던 영역을 한 번에 한 걸음씩 확장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다음 디딜 계단을 이번 계단에서 만든 후에 한 걸을 디뎌 올라가는 시스템이 안전한 진보의 기본이라 하겠다.

이런 시스템이 극도로 발달한 부분이 의료 분야인데, 단 한 사람도 똑같은 케이스가 없다 해도 무방한 환자 개개인의 케이스에 대처하기 위해서 기존에 축적된 엄청난 양의 데이터와 경험, 검증을 기반으로 구축된 시스템이 존재하고, 이 시스템에 의존해서 치료가 이루어진다.

한두 명의 성공 케이스가 의료 전반의 치료법으로 도입되지 않는 것도 이러한 시스템의 특징이다.

빅데이터 기반 인공지능이 이런 분야에서 빛을 보는 이유도 기존의 방대한 시스템을 인간이 가진 능력으로 찾아낼 수 없는 부분까지 파악하여 환자의 다음 단계 치료를 위한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의사는 이런 다음 단계 계단이 없을 때, 특별한 임상실험을 통하여 위험에 대한 가능성을 환자측과 나누고 진일보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 삶에서는 책임 때문에 안전장치를 내려놓고 번지점프를 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2015년 인천 송도의 직장으로 출근할 때 한강 하구의 다리 위에서 해무를 만났다. 바다 쪽에서 두터운 구름처럼 몰려온 안개는 어어? 소리를 낼 여유도 없이 앞 차를 집어 삼켰고, 내가 탄 차도 속도가 줄기 전에 그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바로 앞차가 보이지 않으니 서행하는 것 이외에 방법이 없었지만 서행하는 동안에도 갑자기 앞차가 눈앞 안개를 헤치고 시야에 들어와 내가 들이 받지는 않을까, 서행을 하고 있으니 뒤차가 속도를 줄이지 못해서 내 차를 들이 받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길고 길게만 느껴졌던 다리를 건넜다.

직장에 와보니 근처 영종대교에서 발생한 106중 추돌 사고 속보가 떴다. 대부분 사고 피해 차들은 출근 차량이나 공항으로 가는 차량이었을 터이고, 나처럼 한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많은 아버지들이 운전하는 차였을 것이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앞차가 보이지 않는 캄캄한 안개 속으로 빨려들어 갔지만, 가족의 생계를 위해, 약속된 일정을 위해 차를 멈출 수는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아빠니까, 대표니까, 공공 이동 수단의 운전자니까 맡겨진 일은 해야 하니까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는 짙은 안개에 빨려 들어가면서도 멈출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큰 이상과 포부를 가진 훌륭한 사람을 고르고 골라 투표를 하고 도민 수백만, 국민 수천만의 뜻을 모아 지도자를 세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모든 안개를 일시에 걷어 버리는 지도자의 통찰력이고,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다음 단계의 계단을 만들어 국민이 원하는 진보를 이루어 낼 줄 아는 성실함이다.

때로는 모든 책임을 지고 안개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생길 때 그 책임을 지라고 우리의 신뢰를 그들에게 담보하는 것이다.

누구는 공산주의자이고 누구는 고정간첩이라고 무책임하게 말하기 이전에 우리가 그들에게 지라고 명령해서 그들이 진 무거운 책임을 먼저 헤아려 보고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없게 하는 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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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행정팀 선임기자(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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