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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걸의 창건설화] 눈이 무문관이 된 설악산 신흥사(新興寺)
  • 최종걸 주필
  • 승인 2019.10.31 12:51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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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침묵', '알 수 없어요'에 이어 '아득한 성자'라는 화두 시어(詩語)로 대를 이어 근현대 불가(佛家)를 지킨 절이 있다. 겨울철 내리는 눈으로 무문관이 된 설악산(雪嶽山) 신흥사(新興寺)다. 설악산 신흥사 산 내 백담사로 출가한 만해 한용운 스님의 시맥을 이어, 세수 87세까지 동안거와 하안거 때에 무문관에 입방한, 무산 오현 스님이 조실로 주석했던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 이야기다.

신흥사는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 설악산 산 내 봉정암, 오세암, 백담사를 부속 암자로 두고 천 년을 넘어 스님들의 치열한 수행담이 이어져 오고 있다.

왜 그곳에서, 수행 중인 스님들은 깨달음을 얻었겠는가? 바로 눈(雪) 덕분이다. 눈이 하도 많이 내리니 옴짝달싹도 못 하고, 오로지 수행 외 할 일이 없다는 우스갯소리 아닌 미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비슷한 예가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를 단골로 배출한 미국 시카고대학교도 그렇다. 학교 밖은 우범지대라 학생들이 밖에 나갈 수가 없어서 오로지 공부에 전념할 수밖에 없는 까닭에, 경제학 전공하는 학생들이 특히 두각을 나타냈다고 한다.

타인에 의해 가는 곳은 '감옥(監獄)'이지만 스스로 택한 곳은 바로 '무문관(無門關)'이라는 불가의 속설처럼 신흥사 산 내 암자에는 스스로 택한 무문관이 다름 아닌 눈이었던 셈이다. 자장 스님의 사리탑 기도의 영험함이 인연의 씨앗을 뿌려져 천년을 넘어 치열한 수행처로 거듭나고 있는 절이기도 하다.

신흥사 사적기에 따르면 자장(慈藏)율사 스님은 특히 당시 신라의 최전선인 강원도 오대산 자락과 설악산 봉정암에 탑을 조성한 이후 국론통일과 부처님의 법향으로 삼국 통일 위업을 기리기 위해 신흥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652년 신라 진덕여왕 6년에 자장율사 스님이 창건 당시, 지금의 신흥사인 향성사(香城寺)를 창건하고 인근에 계조암(繼祖庵)과 능인암(能仁庵)도 함께 수행처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당시 자장 스님은 만년 길지인 향성사에 구층탑을 만들어 불사리(佛舍利)를 봉안하고, 문수보살에게서 전해 받은 사리 기도로 삼국 통일을 염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향성사가 698년 효소왕 7년에 능인암과 함께 불타 버린 뒤 3년간 폐허로 변했다. 향성사가 화재를 당한 지 3년 후 의상 조사 스님이 능인암 현재 내원암 터에 다시 중건하고 선정사(禪定寺)로 개칭했다. 의상 스님이 중건한 선정사는 1000년 동안 번창했지만 1592년 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구층탑이 파괴됐고, 1642년 인조 20년엔 화재로 완전히 타 버리는 전란과 화마가 덮쳤다. 2년 후에 영서(靈瑞), 혜원(惠元), 연옥(蓮玉) 세 분의 스님들이 중창 서원을 기도 정진 중 비몽사몽 간에 백발 신인이 나타나서 지금의 신흥사 터를 점지해 주며 “이곳은 누 만대에 삼재가 미치지 않는 신역(神域)이니라”라는 말씀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곳에 중창한 곳이 지금의 신흥사다.

절 이름을 신인(神人)이 길지(吉地)를 점지해 주어 흥왕(興旺)하게 되었다 해 신흥사(神興寺)라고 지었다는 중창 유래다.

현재 봉안된 삼존불은 의상 스님이 중건할 때 조성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또한, 보제루는 휴정(休靜) 스님 등 60여분의 진영(眞影)을 봉안하고 있다. 조선 시대 효종이 시주한 향로와 추사 김정희의 진필(眞筆), 그리고 향성사지 삼층석탑과 청동 시루, 범종, 경판 277매(枚), 사천왕상 등 절 일대가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청동 시루는 순조의 하사품으로 벽파가 역대 왕조의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한 것이고, 경판은 효종 때 만들어진 것으로 한자·한글·범어(梵語)가 혼합된 희귀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경판의 종류로는 '은중경(恩重經)' 전질과 '법화경' 일부 등이 있다. 범종은 경내 보제루에 보존돼 있는데, 이 종은 600kg으로, 1400여 년 전 향성사의 창건 당시의 종이라고 전한다. 향성사가 불탈 때 깨졌던 것을, 1748년에 개주했으나 소리가 완전하지 못해 1758년에 다시 개주했다가 6·25전쟁 때 총상을 입은 뒤 1963년에 수리해 보존 중이다.

신흥사가 영동 북지역 불가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자 "신흥사가 과거의 신흥사가 아니라 새로운 신흥사가 됐다"며, '神興寺'의 귀신 신(神) 자를 시대에 맞게 새로울 신(新) 자로 고쳐 사용하자는 중론이 일어났다. 해서 지난 1995년부터 영동지역 불교를 새로 일으킨다는 서원을 담아, 사명(寺名)을 앞자리의 귀신 신(神)자를 새로운 신(新)자인 신흥사(新興寺)로 바꿨다.

자장 율사가 삼국 통일을 염원했던 사리탑 서원이 천년을 넘어 지난 1997년 10월에는 높이 14.6m인 세계 최대의 청동 불좌상을 봉안해 통일을 염원하는 뜻을 기려 이어져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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