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과 증권사들이 금융상품을 만들어 판매하거나 중개한 상품들이 투자자에게 수익은 커녕 원금도 돌려주지 못해 투자자와 금융사 간에 소송사태가 갈수록 빈발하고 있다. 일부 은행에서는 최고 책임자가 사고 상품의 부실 은폐를 지시했다는 정황과 함께 뒷돈을 받고 부실을 알면서도 금융상품을 만들어 동종 업계인 증권사들에 상품을 팔아 검찰의 압수수색까지 당하는 이탈행위도 적발됐다.

특히 국내증권사가 연루된 소송이 지난 1년 동안 10% 넘게 증가한 가운데 증권사가 피해를 봤다고 원고로서 제기한 소송이 40% 넘게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재 증권사 56곳 중 소송이 진행 중인 건 34곳으로 전체 증권사 절반 이상이 소송에 휘말려 있다. 또 이들의 소송 건수는 370건으로 1년 전보다 12.8% 늘었고 소송금액은 무려 3조1838억원으로 52.7% 증가했다. 특히 증권사가 피해를 봤다며 원고로서 제기한 소송이 148건으로 1년 전보다 42.3% 늘었고 소송금액도 6440억원으로 61.9% 급증했다. 증권사가 원고로 제기한 소송은 지난 2017년 말 94건에서 지난해 말 109건으로 증가한 데 이어 올해 6월 말 기준 1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6월 말 현재 가장 많은 소송에 휘말린 증권사는 한국투자증권으로 41건, 미래에셋대우 38건, 유안타증권·NH투자증권 각 31건, KB증권·메리츠종금증권 25건, DB금융투자 17건, 하나금융투자 14건 등의 순이다.

피해를 봤다고 원고로서 가장 많은 소송을 제기한 건 미래에셋대우로 14건이고, 피해를 준 피고로서 가장 많은 소송에 연루된 건 한국투자증권으로 31건이다. 소송금액은 유안타증권이 1조7314억원으로 압도적인 1위다.

유안타증권은 지난 2013년 옛 동양증권 시절 계열사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불완전판매로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 제기한 소송에 얽혀 있고, 뒤이어 NH투자증권 2480억원, 미래에셋대우 2461억원, 현대차 증권 1439억원, 한화투자증권 1335억원, 한국투자증권 1272억원, 이베스트투자증권 1129억원 등의 순이다.

이 중 현대차 증권 소송금액은 1년 전보다 687.7%나 늘었고, 한화투자증권은 526.9%, 이베스트투자증권은 1052.9% 각각 증가했다. 이들 증권사는 지난해 중국 에너지기업인 중국국저에너지화공집단(CERCG)과 관련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부도 사태로 상호 소송전을 벌인 곳이다.

발단은 지난해 5월 한화투자증권과 이베스트투자증권이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중국 CERCG 관련 ABCP를 발행하자, 현대차 증권 500억원 등 금융회사 9곳이 이를 매입했는데 ABCP가 부도를 내자 ABCP를 가장 많이 매입한 현대차 증권이 한화투자증권과 이베스트투자증권을 상대로 500억원 규모의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을 냈다. 또 유안타증권과 신영증권은 ABCP를 되사겠다고 약속해 놓고 이를 지키지 않았다며 현대차증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등 증권사 간에 소송전이 벌어졌다.

문제는 ABCP를 발행하는 과정에서 한화투자증권과 이베스트투자증권, 나이스신용평가, 서울신용평가 등 관계자들이 해당 CERCG 측으로부터 거액의 부정한 돈을 받고 부실 어음을 발행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는 점이다.

한화투자증권과 이베스트투자증권은 CERCG의 자회사 CERCG 캐피탈이 지난해 5월 발행한 16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기초자산으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발행했지만, ABCP가 판매된 지 3일 만에 CERCG의 또 다른 자회사인 CERCG오버시즈캐피탈 회사채가 부도를 맞으면서 신용평가사들은 해당 ABCP의 신용등급도 채무지급 불능을 뜻하는 'D등급'으로 하향했고, 그해 11월 만기 때 채권자에게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해 부도가 났다.

어음 발행을 주도했던 한화투자증권과 이베스트투자증권 직원들이 CERCG로부터 5억6000만원을 챙긴 정황이 드러나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가 지난 30일 해당 증권사와 신용평가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했다. 경찰은 한화투자증권과 이베스트투자증권 직원이 경찰 수사 과정에서 특정 경제 처벌법상 사기와 수재,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가 적발돼 압수수색에 나섰다고 발표했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도 지난 8월 금감원 검사 직전 하나은행의 원금손실 파생결합펀드(DLF) 자료가 삭제된 것과 관련, 하나은행 최고 책임자가 고의로 삭제를 지시했다는 정황을 어느 정도 포착했다는 점을 시사하면서 조사 결과를 조만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투자자들에게 금융기관은 신용과 신뢰의 상징으로 통한다. 신용과 신뢰를 생명처럼 여겨야 할 금융기관들이 어설픈 상품을 판매해 수조원의 금융손실을 안기고, 손실을 은폐하려는 행위는 스스로 금융기관이기를 포기하는 행위다. 또 상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부실징후를 알고도 금품을 수수하고 부실한 금융상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행위는 사기 집단이나 다름없다.

금융시스템의 근간인 금융사들의 이탈행위가 도를 넘고 있는 만큼 금융당국의 철저한 조사와 감독 이후 해당 금융사들에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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