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gchoi62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최종걸의 창건설화] 불상이 절을 짓게 한 심복사·용화사·도피안사
  • 최종걸 주필
  • 승인 2019.11.21 15:32
  • 19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구글+
네이버 밴드
네이버 블로그
네이버 폴라
핀터레스트
URL 복사
   
▲ 평택 심복사 대적광전에 봉안된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사진 제공 심복사
불교 경전 중 금강경에는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란 구절이 나온다. 모든 형상 있는 것은 모두가 허망하니 모든 형상을 본래 형상이 아닌 것을 알면 곧 진실한 모습을 보게 된다는 뜻이다.

절에 모셔진 불상 역시 본래 없었다. 석가모니부처님 시절에는 불상이나 성물(聖物)들이 없었지만, 부처님 열반 후 500년 후에 그리스의 조형 양식을 빌려 사람의 다양한 마음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 시발 처가 바로 지금의 파키스탄 간다라 지역이다.

간다라 지역은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대왕(재위 BC 336∼BC 323)이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성립하는 과정에서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시킨 새로운 헬레니즘 문화가 꽃핀 곳이다. 알렉산더대왕이 당시 불교국가였던 인도(지금의 파키스탄) 지역의 인더스강까지 진격했다가 강을 건널 수 없자 이 지역까지를 점령했다. 이 시기에 다양한 조형과 조각 양식이 전해지면서 처음으로 불상 등 성물들이 탄생했다. 불상도 엄밀하게 말해서 상(相)이지만 후대에 와서 좀 더 쉽게 마음을 표현하려는 수단으로 불상이 등장한 것으로 불교학자들은 풀이하고 있다. 실제로 사찰에 모셔진 불상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표현을 하고 있다.

불상과 관련해 우리나라에 좀 특이하게 내려오는 설화가 있다. 강원도 철원의 도피안사에 모셔진 철조비로자나불좌상, 경기도 김포 해안가에 있는 용화사 미륵 보살상, 경기도 평택시 현덕면 덕목리 115번지의 광덕산 심복사(廣德山 深福寺)의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그렇다.

철원 도피안사의 경우 6·25동란 때 소실됐다가 땅속에 묻힌 철조 비로자나불상만 온전히 남아 다시 복원됐다. 땅속에 묻혔던 불상이 1959년 봄 당시 제15사단 사단장이었던 이명재 장군 꿈에 나타난 것이다. 불상이 사흘 밤 동안 이 장군 꿈에 나타나 땅속에 묻혀 답답하다고 했다고 한다. 이튿날 장군은 전방 순찰을 나갔다가 갑자기 갈증을 느껴 민가에 들렀는데, 집주인의 모습이 꿈속에서 만난 불상과 너무나 흡사해서 집주인과 함께 폐허가 된 절터로 찾아갔는데, 놀랍게도 절터 바닥에는 불상의 육계(머리 부분)가 땅 위에 솟아 있었다. 여러 장병이 불상을 끌어 올리려고 시도했으나 불상은 꿈적하지도 않아 장군이 불상의 얼굴을 정갈하게 씻은 뒤 자신의 군복을 벗어 입혔더니 그제야 불상이 땅 위로 올라왔다는 것이다. 장군은 그 절터에 도피안사를 중건하고 철조 비로자나불상을 다시 모셨다고 한다.

김포 해안가의 용화사도 고려 말과 조선 초 개경과 한양 뱃길을 오가던 뱃사공인 정도명이 조공을 배에 가득 싣고 오다가 간조로 인해 운양산 앞에 배를 대게 되었는데 그날 밤, 부처가 꿈에 나타나 대어놓은 배 밑쪽에 석불이 있으니 잘 모시라 해 보니 과연 배 밑에 미륵보살 상이 있어 이를 모시고 자신도 삭발 수도하게 되었다는 창건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경기도 평택시 현덕면 덕목리 115에 있는 광덕산 심복사에도 어부의 그물에 걸린 석조 비로자나불좌상이 창건한 것으로 추정되는 설화가 내려온다. 사찰의 창건 시기는 고려 시대로 추정되지만 심복사가 알려진 계기는 바로 바닷속에서 건져진 석조 비로자나불좌상 때문이다.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심복사 대적광전 안에 봉안된 것으로 고려 말에 파주군 몽산포에 살던 천노인(千老人)이 덕목리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것이라고 한다.

천 노인이 바다에 그물을 쳤다가 끌어올리니 큰 돌이 걸려 바다에 던져 버리고 자리를 옮겨 다시 그물을 쳤더니 그 돌이 또 걸려 올라왔다는 것이다. 천 노인이 이상히 여겨 돌을 자세히 보니 불상이라 배에 싣고 뭍으로 와 지게에 지고 모실 곳을 찾아 광덕산으로 올라가던 길에서 멈춘 곳이 지금의 심복사 자리라고 한다. 심복사 자리에 오자 지게 위의 불상이 갑자기 무거워져 내려놓았다는 것이다. 그날 밤 꿈에 “바닷가에 큰 배 한 척이 있고 옆에 검은 소 세 마리가 있을 것이니 배의 목재를 이용해서 절을 지어라”라는 소리에 바닷가에 가보니 과연 배와 소가 있었다. 그 배의 재목을 소의 등에 싣고 와서 이 절을 창건했다는 설화다. 최근에 심복사 스님과 신도들이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시게 한 소의 공덕을 예찬하는 ‘우보살 공덕찬’비를 소의 무덤가에 세웠다.

없던 불상과 새로 생긴 불상이 둘이 아니다(不二)는 것을 보여준 창건 사례들이다.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