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박사(서경대학교 나노융합공학과 학과장)

우리는 일할 사람은 줄어들고, 이전에 없었던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유지될 수 있는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시점에 서있다.

미래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차세대 기술'과 는 차별화된 신기술에 국가 차원에서 필요한 연구가 진행되고 개발될 수 있도록 투자해야 한다.

'차세대 기술' 이라는 두 단어에는 '현 세대 기술 관련 시장은 레드오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는시장 상황이 숨겨져 있다.

특정 기업이나 연구소가 차세대 기술 개발에 주력한다는 이야기는 '전혀 새로운 기술을 개척할 아이디어는 없다'는 현실의 반증일 가능성도 높다.

기존 기술의 연장선 상에 있는 기술이 매우 발전한다 해도 거기에 '혁명'이라는 단어를 붙이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4차 산업 혁명'의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레드오션인 현재 기술의 차세대 기술을 개발해서 좀 더 나은 시장 점유를 향유하는 것 마저도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기술 개발을 하는 엔지니어 입장에서 항상 염두에 두고 있는 연설 한 구절이 있다. 클린턴 대통령의 1997년 1월 취임연설에서 미국의 중산층과 안정된 노후생활을 구축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한 적이 있다. 산업 측면에서는 '컴퓨터와 마이크로칩을 발명한 것' 이었다.

미국은 그런 전혀 새로운 기술들이 자신들의 거대한 소비사회를 유지해온 원동력이라는 사실에 대한 이해가 산업계 전반에 깔려 있어서 새로운 기술들에 대한 지원이 원활한 편이다.

일론 머스크가 제안한 시속 1200km 진공터널 열차인 하이퍼 루프도, 그가 열심히 로켓 이착륙 재사용 기술을 개발하여 발사 비용을 낮춘 후 60개씩 700번, 42,000 개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려 전 지구를 무선 인터넷 망으로 뒤덮어 버리겠다는 구상도 이미 실현되고 있다.

컴퓨터와 마이크로칩을 발명해서 누린 이익에 대한 사회적 기억을 바탕으로 그들은 유전자 가위도, 양자 컴퓨터도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미국이 미래의 먹거리라 생각하고 국력을 기울여 개발한 기술이 큰 국익을 가져다주지 못한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 인건비가 높아진 미국의 생산성을 높여줄 수단으로 각광받던 3D 프린팅 기술은 최근 아디다스의 스마트 공장이 폐쇄된 예에서 보여지듯이 기대만큼 성공하지 못했다.

게놈 프로젝트로 인간 유전자 지도를 가장 먼저 완성하고 나면, 사람의 무병장수를 보장하는 산업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국력을 기울였지만 바이오 산업 전반의 진보를 가져오는 긍정적 효과만 남고 국익에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하였다.

작은 머신을 만들어 사람들의 삶을 바꾸겠다고 시작한 마이크로 머시닝 (MEMS) 기술도 움직이는 마이크로 기계보다는 움직이는 부분이 없는 마이크로 센서 제조 기술로 안착되었다.

최근 IoT 기술에도 이러한 센서들이 다수 적용되고 있지만, 움직이는 부분이 있는 마이크로 기계들을 IoT 기술에 적용한 예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엄밀히 말하면 움직이는 부분이 없는 마이크로 센서기술은 미세 표면가공이라 불리는 반도체 공정에 가까운 것이고, MEMS에서 호기롭게 외쳤던 마이크로 기계 기술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초전도체 기술 개발, 신경망칩 기술 개발 등도 시장 판도를 크게 바꾸지 못한 사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명이라 할 만한 새로운 기술, 전혀 새로운 산업은 국민의 미래와 복지를 보장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실은 모든 정부가 그런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골몰한다. 그런데, 대부분 국내 연구 과제는 수요조사 단계에서부터 산업의 대분류/중분류/소분류 안에 개발하고자 하는 기술을 맞추어 넣어야 한다. 레드오션 리스트 안에.

그런 리스트 밖의 기술들을 이야기의 주제로 꺼내 놓고 엔지니어들과 의논하는 것을 좋아한다. 수년 전 국내 대기업의 작은 과제를 수행한 적이 있다.

과제 선정을 위한 발표를 하러 갔을 때 첫 반응은 '우리 부서에서 지금까지 이 대학에 과제를 준 적이 없는데?'였고, 발표를 마친 후에는 기존 연구결과들에 대한 질문의 연장선 상에서 '그렇게 좋은 당센서를 개발해서 뭘 하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다. (과제 내용은 당센서와 전혀 관련이 없었다.)

"저요? 당 센서가 아니라 당 배터리로 자동차가 달리게 하는 것이 제 꿈 중 하나입니다" 대답했더니 모두 와하하.. 웃어 주셨다. 지금 여러분들도 모두 혈액 속에 6그램 밖에 없는 당 대사에서 생긴 에너지로 이 자리에 계십니다. 7톤 코끼리가요, 최고 시속 45km까지 달리는데요, 당을 씁니다.

수억 년 전 60톤이 넘는 공룡은 에너지원으로 뭘 썼을까요? 당이요. 그런데 코끼리가 신나게 수십 킬로미터를 달리고 내놓는 것은 가쁜 숨과 방귀 정도입니다.

실제로 당이라 불리는 글루코오스 한 분자는 우리가 생물시간에 배웠던 에너지원인 ATP를 34 ~ 38개 만든다. 이런 반응의 에너지 효율은 40% (내연기관은 19%, 전기자동차는 37%)에 달하여 첨단 전기자동차를 넘어설 뿐 아니라 나머지 60% 마저도 열손실인지라 체온을 유지하는데 사용된다.

온도도 기껏해야 거대 포유류의 경우 50도씨 대를 넘지 않는다. 화재 위험도, 감전 위험도 없다. 그래서 수십 톤 고래부터 하찮은 곤충까지 모두 당을 에너지로 삼고 삶을 영위한다.

효율도 높고 친환경적인 에너지원이므로 유관 분야 연구원들이 재미있어 할 만하다. 재미있어 하셨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 연구소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전혀 새로운 분야에 대한 이야기는 무언가 시도할 대상으로 인식되기 어렵다.

새로운 것 말고 '차세대 기술'을 개발해야 회사 내에서 살아 남는다. 기존에 하던 기술개발의 범위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 한다고 시도하다 실패하면 회사생활이 위태로워지는 것이 현실이다.

회사에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장을 마련한다고 대기업에서 사내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것을 본다. 문제는 그런 지원 대상 사업의 내용이 회사 밖 창업 지원 시설에서 지원하는 대상과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작은 스타트업들을 지원하는 일은 직원의 사기진작에 좋고, 위험부담도 낮으며, 미약한 시작이었지만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 대외 홍보에도 좋으니 대기업에서 큰 부담없이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차세대 기술 개발, 수입 부품 대체 국산화 기술 개발, 스타트업 지원 등은 지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대기업은 대기업에 맞는 창업이 있고, 개인은 개인에게 어울리는 창업이 있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보고 싶은 것은 새로운 산업 분야를 개척하기 위해 규모 있는 모험을 하는 대기업이다. 실패한 모험이라도 그로 인해 축적된 기술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다.

정부도 신사업 분야 R&D를 지원하고자 한다면, 기초원천분야 R&D 지원, 기술력 있는 벤처 및 중소기업의 발굴과 성장 지원 등에 정부 R&D 투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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