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자산문을 개창한 징효 국사 답비와 부도탑. 사진 한국관광공사 제공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 사자산(獅子山)에 있는 법흥사(法興寺)는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 중의 한 곳으로서 대표적인 불교 성지이다.

사적기에 따르면 신라 때 자장율사(慈藏律師)가 당나라 청량산에서 문수보살(文殊菩薩)을 친견하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와 가사(袈裟)를 받아와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태백산 정암사(淨岩寺), 영축산 통도사(通度寺),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등에 사리를 봉안하고 마지막으로 이 절을 창건해 진신사리를 봉안했다. 창건 당시 절 이름은 흥녕사(興寧寺)였다.

이후 신라 말에 징효절중(澄曉折中) 국사가 중창해 선문구산(禪門九山) 중 사자산문(獅子山門)의 중심 도량으로 삼았다. 징효절중 국사는 당나라에서 남전보원의 법맥을 이은 뒤 847년 문성왕 9년에 귀국한 철감 국사 도윤 스님의 제자로, 스승과 함께 전남 화순 쌍봉사에서 머물면서 선법을 펼치다가 이곳 영월 흥녕사를 중심 사찰로 해 사자산문을 새로 세웠다고 한다. 스님은 헌강왕 때 사자산 흥녕선원에 자리를 잡고 사자산파를 선종의 한 문파로 확립시켰다. 징효국사는 열반 시 1000개의 사리가 나왔다고 할 만큼 수행력이 높았다고 한다.

사자산(獅子山)은 횡성과 평창, 영월의 세 경계가 만난 지점에 있다. 사자산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백덕산(1350m)이 감싸주고, 서쪽으로는 삿갓봉, 남쪽으로는 연화봉이 둘러있어 웅장한 데다 ‘네 가지 재물이 있는 산’이라는 뜻의 사재산(四財山)이라고도 부른다. 그 네 가지 재물은 산삼과 옻나무, 가물었을 때 훌륭한 대용 식량이 된다는 흰 진흙과 석청(꿀)이다.

또 사자산이란 유래는 643년 선덕여왕 12년에 자장 율사가 당나라 청량산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모셔오면서 사자(獅子)를 타고 왔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법흥사의 절 이름도 처음에 흥녕사(興寧寺)에서 흥녕선원, 사자산사(獅子山寺)로 바뀌는 과정에서 수많은 부침을 거듭하다 고려 중기 이후 1000년 동안 폐허나 다름없었다가 1902년에 지금의 법흥사로 개칭됐다고 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찰처럼 법흥사도 창건 이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전란과 화재 등으로 소실돼 폐허나 다름없었다가 1902년 비구니 스님인 대원각 스님이 현몽에 따라 중건후 법흥사(法興寺)로 개칭했다고 한다. 이후로도 1931년 산사태가 나서 옛 절터 일부와 석탑이 소실되자 1933년에 지금의 터로 적멸보궁을 이전 중수했다고 한다.

현재 적멸보궁은 1902년에 세운 적멸보궁을 헐어내고 1993년에 재건축한 것이다. 적멸보궁 좌측 뒤에는 자장율사가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수도했던 곳으로 전해지는 토굴은 낮은 언덕의 완망한 경사를 이용하여 흙으로 석실 위를 덮은 형태이다. 석실의 외부 구조는 원형으로 마치 분묘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토굴 좌측에는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진신사리를 넣고 사자 등에 싣고 왔다는 석함(石函)이 남아 있다.

사리함의 정확한 위치는 주지 스님들 사이에 불문율로 전해진다고 한다. 진신사리의 영원한 보전을 위해 자장율사가 사자산 어딘가에 사리를 숨겨둔 채 적멸보궁을 지었다고만 알려져 있다. 지금도 간혹 사자산 연화봉 주변에 오색 무지개가 서리는 것은 바로 그 사리가 방광(放光)하기 때문이라고 스님들은 풀이한다.

우리나라 사리기도의 뿌리인 적멸보궁 답게 때때로 이적을 보이는 곳이다.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