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수사 경내 천연 동굴법당. 사진 네이버에서 캡쳐
우리나라 불교에는 지혜의 화신으로 여겨지는 문수보살을 신앙의 대상으로 모신 사찰들이 많다.

신라 자장 스님이 중국 당나라 청량산(오대산)에서 기도 끝에 문수보살을 친견한 이후부터 문수보살에 대한 이적들이 확산했기 때문이다. 불교 설화 속에도 경흥대덕(憬興大德) 스님이 문수의 경책을 받은 일이나 연회국사(緣會國師)가 문수보살을 친견한 이야기, 신라의 태자 보천(寶川)과 효명(孝明)이 오대산에 문수보살을 중심으로 한 오 방위 신앙을 정립했던 기록 등이다.

또 조선 세조의 병을 고쳐 준 문수동자의 설화, 문수동자의 경책을 들은 환우 화상 이야기, 땡추로 변화한 문수보살, 하동 칠불암의 문수동자 설화 등도 저마다 사찰에 문수보살의 이적을 말해준다.

‘화엄경’에는 중국의 청량산(오대산)을 문수보살의 상주처(常住處)로 자장 스님이 청량산의 태화지(太和池)에 있는 문수보살 석상 앞에서 7일 동안 기도해 보살로부터 범어로 된 사구게(四句偈)를 받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 속에는 한 노승으로부터 범어 게송에 대한 해석을 듣고 부처님의 가사(袈裟)와 발우 그리고 신라로 돌아가거든 구층탑을 세워 나라를 편안하게 할 것을 부탁받았다는 것이다. 이때 그 노승으로부터 우리나라 강원도 오대산이 문수보살의 상주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이 같은 가르침과 문수보살로부터 사리를 포함한 성물(聖物)을 받아 643년 선덕여왕 12년에 귀국, 황룡사에 구층탑을 세우고 오대산 중대(中臺)에 적멸보궁(寂滅寶宮)을 건립해 오대산을 문수 신앙의 중심 도량으로 만들었다.

그 뒤 강릉 수다사(水多寺), 태백산 석남원(石南院) 등에 문수보살과 관련된 수많은 사찰 창건설화를 남겼다.

통일신라 시대에도 왕자 출신의 보천 스님은 오대산의 중대가 1만의 문수보살이 머무는 도량임을 깨달아 왕좌를 버리고 수도 정진했고, 조선 세조가 등창 병으로 고생할 때 바로 이곳 상원사(上院寺)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문수동자의 감응을 받아 병이 낫게 된 뒤부터 문수 신앙은 더욱 확산한 것으로 불교학자들은 풀이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수도량으로는 오대산을 비롯해 춘천시 청평사(淸平寺), 삼각산 문수암, 김포 문수암, 평창군 문수사, 옥천군 문수사, 서산시 문수사, 구미시(선산) 문수사, 고성군 문수암, 울산시(울주) 문수암, 김제시 문수사, 익산시 문수사, 고창군 문수사 등이 있다.

사찰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측에 문수보살을 봉안하는 경우가 많고, 대적광전(大寂光殿)에도 비로자나불 좌측에 문수보살을 모시고 특별히 문수 신앙이 강한 사찰에는 문수보살상만을 모신 문수전(文殊殿)을 따로 두기도 한다.

바로 그 문수 신앙을 상징하는 대표 사찰 중 서울시 종로구 구기동 2번지 북한산 남장대 앞 문수봉 아래에 자리한 문수사 이야기다.

북한산(三角山) 문수사는 고려 시대 사찰로 문수 성지이다. 문수사와 문수봉에서 문수(文殊)가 문수보살을 의미하듯, 문수 신앙 영험 도량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고려 불교의 중흥조인 태고 보우(1301-1382) 스님도 문수사의 천연동굴에서 수행하다가 문수 동자에게 감로수를 받아 마시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설화도 전해온다.

삼각산 문수사는 오대산 상원사, 고성 문수사와 함께 3대 문수 도량이다. 문수 신앙과 관련된 대웅전, 천연 문수 동굴이 있다. 천연 문수 동굴은 동굴을 법당으로 조성한 것이다. 문수사는 서울을 비호하려는 목적에 따라 고려 예종 4년인 1109년에 탄연(坦然) 스님이 창건했다. 이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듭해왔다.

문수굴로 불리는 천연 동굴법당이 영험 있는 기도처로 널리 알려진 계기는 고려 때 태고 보우 스님이 문수보살로부터 감로수를 얻어 마시고 깨달았다는 것부터 조선 시대 암행어사로 알려진 박문수와 이승만 대통령이 어머니의 기도 영험으로 태어났다는 이야기 등이 내려온다.

특히 문수사 사적기에는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의 어머니가 멀리 황해도 평산에서 이곳 동굴 속에 모셔진 오백 나한상에게 치성을 드린 끝에 그를 낳았다고 한다. 그와 같은 인연으로 4·19 직전 이승만 박사가 당시 80세가 넘는 고령을 무릅쓰고 이곳을 방문해 ‘문수사’ 현판을 직접 쓰고, 당시 스님들과 함께 찍었던 빛바랜 흑백사진도 절에 남아 있다.

대웅전에 봉안된 문수보살상은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석가모니불은 영친왕의 비인 이방자(李方子) 보살이 시주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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