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길을 알고 가자-오늘의 길, 내일의 길

쉬어가는 김에, 이번엔 노래에 담긴 길을 한번 좇아가보는 것도 흥미롭겠단 생각이 든다. 그런데 참으로 야릇한 일이다. 길이라는 단어에는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서정성의 코드가 숨어 있다. 길의 이미지를 떠 올리다보면 끝도 없이 펼쳐진 우리네 인생 같은 여정이 그려지기도 하고, 저물녘 희미한 그림자를 남기고 가뭇없이 사라져가는 나그네의 쓸쓸한 어깨가 겹쳐지기도 한다.

괴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나는 고작 이 세상에서 하나의 나그네. 한가닥 편로에 지나지 않는다. 그대들인들 이 밖에 더 무엇이겠는가.”

비단 괴테뿐이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문객들과 가객들은 우리 삶을 나그네길에 비유하였다. 가수 최희준이 불러 히트한 <하숙생>이라는 노랫말 역시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로 시작되지 않는가.

이렇게 길의 이미지를 차용한 노래들도 많지만 구체적인 지명이 직접 등장하는 노래도 있다. 대표적인 노래가 바로 <울고 넘는 박달재>이다.

한때 차량으로 몸살을 앓던 박달재는 얼마 전 새 도로가 개통되면서 지금은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아 아스팔트 고갯길이 흙먼지로 덮여 있다. 휴게소 동쪽 귀퉁이에 세워진 <울고 넘는 박달재>기념비 역시 쓸쓸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쇠락한 관광지 신세가 된 박달재지만 관광객들로 붐빌 땐 휴게소 확성기를 통해<울고 넘는 박달재>가 울려퍼지곤 했다.

그런데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이곳이 고적해지고 나니 오히려 이곳에 어린 사연이 더욱 가슴을 파고든다. 박달재에 담긴 사연은 이별과 기다림의 원형이다. 먼저<울고 넘는 박달재>의 노랫말을 떠올려보자.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 비에 젖는구려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구비미다
울었소 소리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

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 두고 가는 님아
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 가소
도토리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며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


반야월 선생이 써서 1948년에 발표한 이 노랫말은 단장을 끊는 듯한 이별의 순간과 기다림의 고통을 고도의 수사법으로 그려낸 수작으로 꼽힌다. 노래에 담긴 애달픈 사연을 반추하다보면 어느새 가슴 한 자락이 싸해진다.

경상도 젊은 선비 박달은 과거를 보러 가다 백운면 평동리에서 금봉이라는 처자를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박달은 과거에 급제한 후 그녀와 함께 살기로 굳은 언약을 하고 한양으로 길을 떠난다. 하지만 자나깨나 금봉이 생각뿐이었던 박달은 공부를 게을리하여 과거에 낙방한다. 금봉이를 볼 낯이 없었던 박달은 돌아가겠다던 약속을 어기게 된다.

한편 성황당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박달이 급제해 돌아오기만을 빌던 금봉은 상사병에 걸려 박달이 떠나간 고개에서 숨을 거둔다. 금봉에 대한 그리움을 이기지 못해 박달은 뒤늦게 돌아오지만 이미 금봉이 죽은 지 사흘이나 지난 후였다. 결국 박달도 금봉의 환영을 쫓다가 낭떠러지에 떨어지고 만다.

박달과 금봉의 애달픈 사랑이 전설처럼 남아 있는 박달재는 고려 때 김취려 장군이 거란 10만 대군을 물리쳤던 곳, 신라 경순왕이 왕건에게 항복하기 위해 울고 넘던 고개, 어린 단종이 유배지 영월로 가기 위해 수양대군에 대한 울분을 삭이며 넘던 고개이기도 하다. 어린 단종을 유배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금부도사 왕방연은 이렇게 노래했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온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길에 대해 또 빼놓을 수 없는 노래는 <비 내리는 고모령>이다. 구슬픈 가락에 담긴 노랫말 역시 애달프기 그지없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떠나올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턱을
넘어오던 그날 밤이 그리웁고나

맨드라미 피고지고 몇 해이던가
물방앗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아
어이해서 못 잊느냐 망향초 신세
비 내리는 고모령을 언제 넘느냐

고모령은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에서 팔현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이곳에도 전해오는 전설이 있다. 옛날 고모령에는 어린 남매를 키우는 홀어머니가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스님 한 분이 와서 “이 집은 전생에 덕을 쌓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가난하다”는 말을 하더란다.

이 말을 들은 어머니와 어린 남매는 덕을 쌓기 위해 흙으로 산을 쌓았는데 남매가 서로 높이 쌓고자 시샘하며 다투는 걸 보고 어머니는 크게 실망하여 집을 나오고 말았다. 어머니가 자식들을 잘못 키웠다는 자책감으로 하염없이 걷던 길이 바로 고모령인데 정상에 와 집을 향해 뒤돌아봤다 해서 ‘뒤돌아볼 고’에 ‘어미 모’자를 써서 고모령이라 칭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아한 게 있다. 박달재와 고모령은 같은 고개인데 왜 ‘재’와 ‘령’이라는 다른 글자를 붙였을까 하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여기엔 별다른 의미는 없다. 고개나 재는 우리말 표기, 령은 한자식 표기다. 령 말고도 고개를 뜻하는 한자어로는 ‘현’, ‘치’, ‘천’, 등이 있다. 이중에서 ‘령’은 군사적 요충지나 통행량이 많은 도로에 쓰인다.

 

글 : 남인희 前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장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