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훈 박사(서경대학교 나노융합공학과 학과장)

혁명이라고 불리는 많은 사건들의 전후를 살펴보면 새로이 생겨난 것과 없어진 것의 차이가 극명하다.

산업혁명도 예외는 아니어서 1, 2, 3차 산업혁명을 살펴보면 증기, 전기, 전자통신 등과 같이 각각의 혁명을 이끌고 새로운 시장을 이끈 주체로 이름을 붙이고 그로 인해 없어진 것들은 잊혀진다.

없어진 것은 1, 2, 3차 산업혁명의 차수에 관계없이 ‘일자리’다. 그리고 혁명을 주도한 기술도 너무나 생활과 밀접해 져서 존재 자체가 잊힐 지경이 된다.

마치 소를 찾고, 그 발자국을 따라가서 소를 발견하여 코뚜레를 꿰고, 길들이고, 집에 데리고 돌아와 그 존재마저 잊어버리는 십우도의 일부와 닮았다.

어렸을 때 우리집을 안방처럼 편하게 드나드시던 계란 파는 할머니가 계셨다. 이맘 때면 김장에 쓸 새우젓갈을 가져와 대문 앞 계단에 늘어 놓고 쇠스랑 같은 도구로 젓갈을 퍼 주시던 새우장수 아저씨도 있었다.

동네 마다 마켓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분들의 일자리가 없어졌다. 유통 구조의 변화가 방문 판매 일자리를 없앤 것이다.

3차 산업 혁명 초기에 겪었던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는 70년대 후반 동네에 전자식 교환기를 적용한 전화국이 들어왔을 때다. 실제로 주변의 많은 친구 어머니들이 실직하셨다.

실직은 누구에게나 절대로 겪고 싶지 않을 만큼 두려운 일이지만 지금 와서 당시의 실직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름 사연도 많은 전자식 전화국이었지만 강북에서 제일 큰 최초의 전자식 교환 전화국이라는 사실조차 잊혀지고 그냥 ‘전화국’이라고만 불렸다.

인터넷 기반의 정보통신 산업이 꽃을 피우고 4차 산업으로 바통을 넘기는 이 시기에 ‘전자 상거래’라는 말은 아예 쓰이지도 않는다. 불과 수 년 전 까지만 해도 ‘전자 상거래 경제 기반 구축’이 정부의 화두였지만 이제는 거래와 지불수단의 일부로 인식되어 거래에 있어 전자상거래 가능 여부를 아무도 물어보지 않게 됐다.

2016년 다보스 포럼에서 처음 언급된 4차 산업 혁명은 2, 3년 간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느냐는 의심부터 주도권을 놓쳤다는 후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반응을 낳고 있지만 ‘혁명’에 가까운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용 측면에서는 일자리를 없애고 있다.

최근 논란이 많은 ‘타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일자리 측면에서 바라보면 4차산업혁명의 신기술 분야라고 하기보다는 4차산업시대의 열린 마음가짐을 기반으로 시작된 신사업에 가깝다.

이 분야에서 4차산업혁명 신기술에 어울리는 자리는 자율주행 자동차가 차지하고 있다.

화물 자동차의 자율주행 시스템으로 최근 시리즈 D 투자를 완료하여 1.3조원의 회사 가치를 인정 받은 TuSimple 사 같은 회사의 기술은 화물을 운송하는 분들의 노동 환경 개선에 이바지 할 것이고, 여타 자율주행 기술은 택시 기사님들의 노고도 줄여 줄 것이다.

그러나 자동차가 모든 주행을 감당하는 레벨 5에 이르면 해당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은 혁명을 체감하게 될 것이고, 기술이 무르익으면 자동차의 자율 주행 자체가 당연하게 받아들여 지면서 또 한 번의 산업혁명이 완료될 것이다.

완성차 업체에서 바라보는 전기자동차의 시장점유율은 최대 30% 정도이지만, 지난 주 Fortune지보도에 의하면 전기차로 인한 자동차 산업의 지각변동으로 인해 지난 일주일 동안 아우디와 다임러 AG에서 2만여명이 실직했다.

블룸버그지에서 수집한 완성차 제조업체의 2020년 전망에 따르면 주로 독일, 미국, 영국 등 자동차 제조 선진국에서 8만 명의 감원이 예상된다고 한다.

전기 자동차의 실직 기여도는 자율주행 기술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4차산업혁명의 한 축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문제는 이런 산업에 대한 국내 기반이 갖추어 지지 않은 상태에서 성숙도가 높은 미국이나 중국 기술이 국내로 들어와 비용은 비용대로 유출되고, 고용시장은 고용시장 대로 악화되는 상황을 만나게 될 때다.

이런 상황을 피하려면 역설적이긴 하지만 정부의 기술수요조사서에 적어 넣어야 하는 ‘고용 창출 기대효과’란에 ‘고용 대체 기대효과’를 적게 할 필요도 있다.

처음 HDTV로 중계방송을 시청할 수 있었던 때가 ‘오 필승 코리아!’를 외쳤던 2002년이고, 모든 공중파 방송의 HDTV 시청이 가능해진 때가 2007년이었다.

HDTV 시험 방송이 시작된 해가 2000년. 1999년 반도체 회사에서 걱정하던 것은 ‘HDTV의 엄청나게 많은 픽셀들을 구동하려면 1 GDRAM이 필수인데, 256MDRAM도 양산 못하고 있는데 어쩌지..’ 였다. 그러나 HDTV의 등장이 반도체 시장에 새로운 활력이 되어 더 나은 DRAM 기술을 개발할 자본을 제공했다.

2010년대에는 DRAM 시장의 침체기가 왔지만, 스마트 모바일 기기와 MP3 기기의 플래시 메모리 수요로 반도체 산업 분야의 해가 지지 않았던 것을 기억한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도 생활공간 주변과 자율주행 자동차에서 쏟아져 나오는 IoT 데이터와 5G 통신 환경에 연계하여 다루어야 하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하기 위해서 더 많은 반도체 제품의 수요가 발생할 것이다.

서비스 혁신을 기치로 내세운 신사업이 좋은 지, 아니면 신기술이 좋은 것인지 판단할 필요는 없다.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을 떨칠 수 없겠지만 우리는 지금 산업혁명 중이라는 자각으로 기술의 주도권을 놓지 않으면 새로운 기술의 수용을 위해 필연적으로 일자리가 발생하는 또 다른 분야가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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