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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걸의 창건설화] 4차원 사상을 수용한 천태사상 본원 단양 구인사(救仁寺)
  • 최종걸 주필
  • 승인 2019.12.11 15:21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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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양 구인사 경내 상월 조사전. 사진 제공 구인사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소백산에 고려시대 의천 국사 이후 대한불교천태종을 부활시킨 상월 원각 스님의 이야기는 드라마틱하다.

원각 상월(圓覺上月, 1911~1974) 스님이 1945년 5월 ‘억조창생 구제중생 구인사(億兆蒼生救濟衆生救仁寺)’라는 이름으로 중창했지만 돌이켜보면 지금의 4차원 및 4차산업혁명과도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근현대사의 민족 종교 창시자들의 이야기와 대동소이하지만, 특히 상월 스님의 출가 전 행보는 이미 출가 전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으로 일대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원불교를 개창한 전남 영광 소태산 박중빈 교주처럼 상월 조사도 태어날 때부터 각성(覺性)했다고 한다.

특히 상월 조사처럼 대한불교천태종 원장 스님들은 출가 이전에 이미 깨달아 스님들이 비밀리에 그 존재를 감춘 후 때가 이르면 최고 지도자 스님격인 총무원장으로 추대했다고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출가한 스님들 사이에는 불만이 많았지만, 총무원장 스님으로 추대된 스님은 처절하게 몸을 숨기고 수행을 한 후 상월 조사처럼 나타났다고 스님들은 필자에게 속삭였다.

소백산 연화봉 아래 자리 잡은 구인사는 대한불교 천태종의 총 본산이다. 천태종은 594년 중국의 지자대사가 불교의 선(禪)과 교(敎)를 합해 만든 종파로 지자대사가 머물던 천태산에서 이름을 따 천태종이라 했다.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 스님이 천태종 신앙을 수용한 이후 1000년을 건너뛴 1945년 상월 원각 스님이 칡덩굴을 얹어 암자를 지은 것이 천태종 본산인 구인사이다. 연화봉 아래로 연꽃이 피운 것 같다해서 ‘연화지’라는 곳에 천태종을 중창했다.

고려 시대 처음 전래한 천태종은 혼란한 불교를 통합하기 위해 애국불교, 생활불교, 대중불교의 삼대 지표를 통해 중생구제에 입각, 묘법연화경 속 천태사상을 수용했다고 한다.

대각국사 의천 대사는 당시 혼란했던 고려불교를 하나로 통합하고 바로잡기 위해 6세기경 천태 지의가 개창한 천태종 학문과 수행을 두루 겸비한 개혁 불교를 주도한 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과 용수보살의 맥을 이어받은 천태산의 지자대사와 대각국사 의천 대사를 사상적 바탕으로 근현대사에 소백산에서 중창하신 분이 바로 상월 원각 스님이다.

천태종은 1세기경 용수보살의 공사상과 중관사상을 중심으로 개창, 6세기경 지자대사가 교종과 선종의 극심한 대립을 하나로 융합하기 위해 천태종을 개창한 사상을 상월 조사가 중흥조로 수용한 것이다.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해 지난 1990년대에 경복궁 복원을 위해 강원도 대관령 산자락 수령 100년 이상 된 홍송(소나무 나무중 붉은 색을 띤) 나무를 벌채했지만, IMF로 어찌할 수 없자 천태종에서 이를 인수, 상월 조사전을 짓는데 쓰였다고 한다.

그 대조사 한국 천태종의 중흥조인 상월 원각 대조사가 모셔 있다.

한국 대부분 절의 역대 스님들이 열반 후 다비(화장)한 부도와는 달리 상월 조사는 매장(다비를 하지 않고 육신을 매장)한 것 또한 이채롭다.

필자가 가본 그 매장처는 일반 사람들이 쓸 수 없는 자리였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가 그렇듯 대한불교천태종 단양 구인사에도 특히 아픈 이들이 염불 수행으로 몸을 치유했다는 기도 영험담이 이어져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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