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에 1년 계도기간 부여…노동계, "정책 후퇴" 강한 반발
특별연장근로 인가 범위도 확대

'50∼299인 기업 주 52시간제 안착을 위한 보완 대책'을 발표하는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사진=연합뉴스

[일간투데이 권희진 기자] 정부가 중소기업에 대한 주 52시간 적용을 사실상 1년 늦추기로 하면서 사실상 노동정책에 있어 '백기'를 든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주 52시간 시행 준비가 아직 안된 기업들은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지만, 사실상 노동시간 단축 기조의 후퇴로 해석될 수 있어 노동계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50∼299인 기업 주 52시간제 안착을 위한 보완 대책'을 발표했다. 보완 대책은 이날 경제활력대책회의의 의결을 거쳤다.

이 장관은 "주 52시간제 시행 준비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이 많다"며 "50∼299인 기업에 1년의 계도기간을 부여한다"고 밝혔다.

계도기간이 부여된 기업은 주 52시간제 위반 단속 대상에서 제외됨에 따라 주 52시간 제도가 유명무실하게 됐다.

기업이 주 52시간제를 위반하더라도 노동부는 위반 중소기업에 대해 최장 6개월의 시정 기간을 부여해 자율적으로 개선하도록 할 뿐 처벌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법적 강제성이 사라졌다. 이에에 따라 제도 시행의 동력도 그만큼 상실됐다는 평가다.

특히 주 52시간제 위반 고소·고발에 대해 법 준수 노력, 고의성 여부 등을 최대한 참작해 검찰에 송치함으로써 결국 법적 처벌을 피할 여지를 정부 스스로 마련해 준 것이나 다름 없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처럼 제도를 시행하고 위법 사실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한다면 법 자체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될 것이 뻔하다는 것이 노동계의 여론이다.

정부는 주 52시간제의 예외를 허용하는 특별연장근로 인가 범위도 확대한다. 특별연장근로는 노동부의 인가를 받아 주 52시간 초과 노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현행 법규상 자연재해와 재난, 이에 준하는 사고의 수습을 위한 집중 노동이 필요할 때 노동부의 인가를 받아 활용할 수 있으며 사업주는 특별연장근로를 신청할 때 노동자 동의서를 첨부해야 한다.

이 장관은 ▲인명 보호와 안전 확보, 시설·설비의 장애·고장 등에 대한 긴급 대처 ▲통상적이지 않은 업무량의 대폭 증가 ▲노동부가 국가 경쟁력 강화와 국민 경제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연구개발 등으로 인가 사유를 확대할 예정이다.

정부의 보완 대책은 지난 10일 종료된 정기 국회에서 탄력근로제 개선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이 무산됨에 따라 후속 조치의 성격으로 마련됐다.

정부는 현행 최장 3개월인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6개월로 연장하는 것을 포함한 제도 개정이 무산됨에 따라 행정 조치로 보완하기로 했다.

이 장관은 "계도기간 중에도 국회의 보완 입법이 이뤄지면 그 내용을 감안해 정부의 보완 조치도 전면 재검토·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노동계는 정부의 이번 발표에 대해 노동시간 단축 의지 자체가 있는지 의심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이 주 52시간제를 기업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시행하도록 함으로써 충분한 준비 기간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시행시기를 늦추는 것은 사실상 노동정책의 '퇴보'라는 지적이다.

특히 50∼299인 기업이 사실상 주 52시간제 시행에 들어가는 2021년은 문재인 정부 말기라는 점도 노동시간 단축 의지를 의심하게 하는 요인이다. 정부 말기에 노동시간 단축을 힘 있게 추진할 수 있겠느냐는 게 노동계의 시각이다.

또 300인 이상 기업이 지난 3월 계도기간이 끝나 주 52시간제 안착 단계에 들어가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노동 조건 양극화가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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