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 회암사 터 북쪽 능선 위에 작은 암자 터에 세워진 지공 화상 부도비. 사진 제공 회암사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고려말 국사 나옹선사가 지은 시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靑山兮要我以無語)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蒼空兮要我以無垢)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聊無愛而無憎兮)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如水如風而終我)

나옹선사는 스승인 인도 출신 지공스님으로부터 철저한 불이(不二) 사상과 간화선(看話禪) 임제종의 선풍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이를 무학대사에게 전해 고려말 침체한 불교계를 혁신을 일으켰다고 한다. 바로 지공, 나옹, 무학 3대 화상(3大和尙)이 터를 잡고 창건과 중창해서 천년 국찰의 틀을 세운 곳이 경기도 양주시 회암사길 281 회암사(檜巖寺)다.

지공스님의 법명은 제납박타(提納薄陀:禪賢)로 승맥으로 볼 때 가섭(迦葉)의 108세손이라고 한다. 인도의 동북지방 마가다국 만왕(滿王)의 왕자로 태어나, 8세 때 중동부 인도에 있는 나란다사 율현(律賢)에서 출가 후, 19세 때 남인도 능가국 길상산의 보명(普明) 스님에게 법을 전수받고 당시 원나라에서 법을 펼쳤다고 한다. 이때 유학 중인 나옹스님을 제자로 받아들여 간화선을 근간으로 한 임제종 선풍을 고려말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옹 스님과 사제의 인연을 맺은 지공 화상이 고려 충숙왕 15년인 1328년에 창건한 회암사는 제자인 나옹화상이 우왕 2년인 1376년에 중창했고,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와 왕사였던 무학대사에 의해 대대적인 불사가 이어진 국찰이었다.

지공스님이 제자인 나옹 스님에게 회암사 터가 본인이 출가한 천축(天竺 인도)의 나란다사와 그 지세가 같다고 회암사를 중창하도록 했다고 한다.

지공스님이 이후 원나라에 돌아가 입적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공민왕이 직접 지공스님의 사리를 머리에 이고 궁중으로 옮긴 후 공민왕 21년인 1327년에 왕명으로 회암사에 사리탑을 조성할 만큼 지공스님은 왕사로서 뿐만 아니라 임제종 선풍을 고려에 남겼다. 목은 이색이 지은 목은집에 ‘서천제납박타존자부도명’에서 이 같은 기록이 남아있다고 사적기는 소개하고 있다.

지공스님의 제자인 나옹 스님은 고려말 왕사(王師), 나옹 스님의 제자인 무학대사는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의 왕사로 회암사가 3대 화상을 배출한 국찰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특히, 태조 이성계는 왕사인 무학대사가 머무르고 있던 회암사에 불사가 있을 때마다 대신을 보내 아낌없는 지원을 하는 한편 아들인 태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난 뒤 회암사에서 불가에 입문 수도 생활을 했다고 한다.

회암사의 주지 스님이었던 무학대사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꿈을 풀이해 왕이 될 것을 예언한 이야기와 한양 천도와 관련된 설화로 조선 개국의 왕사였다.

이처럼 우리나라 불교에서 회암사는 조계종의 수행의 바탕을 이뤘던 빼놓을 수 없는 절이다.

옛 회암사 터 북쪽 능선 위에 삼대화상 묘탑(廟塔)을 지키기 위한 작은 암자 터에 세워진 지공, 나옹화상의 승탑과 함께 무학대사의 묘탑이 이를 보여주고 있다.

전성기 때는 전각이 총 262간이었고, 암자도 17개, 모셔진 불상도 15척짜리가 7구, 관음상도 10척이나 될 만큼 회암사는 크고 웅장해 아름답기가 동국 제일로서 이런 절은 중국에서도 많이 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전하고 있다.

특히 조선 중기 때 문정왕후는 1545년 자신의 소생인 명종이 12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모후(母后)로서 8년간 수렴청정하는 동안 보우(普雨)대사와 함께 1550년 선교(禪敎) 양종(兩宗)을 부활시키고, 승과와 도첩제(度牒制)를 다시 실시하는 등 불교 부흥을 후원했다.

명종이 즉위하고 20년간 실질적 제 1 권력자로 조선을 20년간 통치한 문정왕후는 회암사에서 열 큰 재를 앞두고 목욕재계를 한 뒤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 체 열반했다고 한다. 그 능이 태릉(泰陵)이다.

명종 때 불교를 중흥하려던 문정왕후의 죽음으로 억불숭유정책을 강력히 주장하는 유생들의 상소와 함께 특히 회암사 주지였던 보우대사가 제주도로 유배된 이후 유배지에서 피살되자 그 여파가 회암사 스님들에게까지 미쳐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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