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최고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인정받고 있는 봉정사 극락전. 극락전은 12세기때 지어진 건물로 추정된다. 사진 제공 봉정사
우리나라에서 최고 지존을 뜻하는 왕 또는 대통령을 봉황(鳳凰) 또는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로 표현했다. 대통령을 상징하는 대외서신 등 청와대를 상징하는 문장에는 봉황 두 마리를 새겨넣고 있다. 그 봉황이 머문 절이라는 뜻을 가진 봉정사(鳳停寺)는 절 이름답게 고려 이후 최근까지 최고 지존들이 머문 곳이다.

사람 이름에도 그 사람의 역사가 간직해 있듯이 봉정사도 절 이름답게 천년을 넘어 봉황들이 머물고 가고 있다.

고려를 개국한 태조 왕건, 고려말 공민왕 이후 지난 1999년 4월 21일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2018년 7월 28일 문재인 대통령, 2019년 5월 23일에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차남인 앤드루 왕자도 각각 방문한 절이 봉정사이다.

특히 지난 1999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한국 방문 때, 가장 한국적인 전통문화 체험을 하고 싶다고 해서 소개한 곳이 봉정사였다고 한다. 이때 엘리자베스 여왕은 고즈넉한 산사의 아름다움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봉정사는 우리나라 유산 중 13번째 세계유산목록으로 등재된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중 경남 양산 통도사, 경북 영주 부석사, 충북 보은 법주사, 충남 공주 마곡사, 전남 순천 선암사, 전남 해남 대흥사 등 7개 사찰로 선정된 바 있다.

바로 그 봉정사는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222에 있다. 신라 문무왕 12년인 672년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 스님이 창건했다고 한다.

봉정사를 감싸고 있는 천등산(天燈山)은 원래 대망산이라 불렀는데 능인 대사가 젊었을 때 대망산 바위굴에서 수행하던 중 스님의 도력에 감복한 천상의 선녀가 하늘에서 등불을 내려 굴 안을 환하게 밝혀줬다 해서 '천등산(天燈山)'이라 이름하고 그 굴을 '천등굴(天燈窟)'이라 했다.

절 뒷산에 있는 거무스름한 바위가 선정을 누르고 앉아 있는데 그 바위 밑에 천등굴이라 부르는 굴이 있다. 십 년을 줄곧 도를 닦기에 여념이 없던 어느 날 밤 홀연히 아리따운 한 여인이 앞에 나타나 스님의 수행력을 시험코자 했다고 한다.

봉정사가 소개한 바로 그 천등굴에는 능인 스님의 수행과 깨달음에 대한 다음과 같은 사연이 전해온다.

옥황상제의 밀명을 받은 여인이 천등굴에서 10여년 넘게 하루 한 끼 생식 수행을 하는 스님의 도력을 시험하려고 "여보세요. 낭군님, 낭군님~~~"을 반복하면서 맑은 목소리로 능인 스님을 불렀다.

"소녀는 낭군님의 지고하신 덕을 사모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낭군님과 함께 살아간다면 여한이 없을 것 같사옵니다. 부디 낭군님을 모시게 하여 주옵소서"라는 여인의 음성이 간절해 가슴을 흔드는 이상한 힘이 있었지만, 능인 스님은 십 년을 애써 쌓아온 수행을 한 여인의 간청으로 허물 수 없었다.

여인은 계속 유혹을 하며 쉽게 돌아가지 않았다. 능인 스님은 오히려 여인에게 깨달음을 주어 돌아가게 했다. 수행 중인 능인 스님이 끝내 유혹에 넘어가지 않자 그 여인은 "대사는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나는 천상 옥황상제의 명으로 당신의 뜻을 시험코자 하였습니다. 이제 그 깊은 뜻을 알게 되었사오니 부디 훌륭한 인재가 되기를 비옵니다"라고 말하며 굴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여인이 사라지자 상서로운 기운이 내려와 굴 주변을 환히 비췄다. 그때 하늘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또 울려왔다. "대사, 아직도 수도를 많이 해야 할 텐데 굴이 너무 어둡습니다. 옥황상제께서 하늘의 등불을 보내드리오니 부디 그 불빛으로 더욱 깊은 도를 닦으시기 바라나이다"라고 하자, 바로 그 바위 위에 커다란 등이 달려 어둠을 쫓고 대낮같이 굴 안을 밝혔다. 능인 스님이 그 환한 빛의 도움을 받아 깨달음을 얻었다 해서 그 굴은 '천등굴', 대망산을 '천등산'이라 했다고 한다.

천등굴 수행을 마친 후 능인 스님이 절터를 찾기 위해 종이 봉황을 접어서 날리니 지금의 봉정사 터에 머물러 산문을 개산하고, '봉황이 머물렀다' 해서 봉황새 봉(鳳)자에 머무를 정(停)자를 따서 봉정사라 이름했다고 사적기는 소개하고 있다.

여느 절처럼 전란, 특히 6.25동난을 거치면서도 극락전의 경우 현존하는 다포계 건물로는 최고의 목조건물이라 추정된다. 고려 공민왕 12년인 1363년에 극락전의 옥개부를 중수했다는 기록이 1972년에 실시된 극락전의 완전한 해체 복원 시에 상량문에서 발견되면서 지금까지 한국에서 최고 오래된 목조건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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