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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걸의 창걸 설화] 조선 왕실 호위무사, 불암사·진관사·삼막사·승가사
  • 최종걸 주필
  • 승인 2019.12.25 14:02
  •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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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가사는 서울 종로구 구기동 북한산에 있는 절로 인도 출신 승가 대사를 기리기 위해 봉안한 했다 해서 절 이름도 승가사이다. 사진 제공 한국학중앙연구원

대부분 절에는 입구에 해당하는 일주문을 지나면 곧바로 사천왕(四天王)이 있다. 4명의 호법신장이 절 안의 부처님과 신도들을 지키는 호위무사 역할을 맡고 있다.

이 천왕사들은 불거져 나온 부릅뜬 눈, 잔뜩 치켜세운 검은 눈썹, 크게 벌어진 빨간 입 등 두려움을 주는 얼굴에 손에는 큼직한 칼 등을 들고, 발로는 마귀를 밟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때 발밑에 깔린 마귀들은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신음하는 상을 하고 있다.

원래 사천왕은 고대 인도 종교에서 숭상했던 귀신들의 왕이었으나 불교에 귀의해 부처님과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됐다고 한다. 이들은 수미산(須彌山) 중턱에서 각각 그들의 권속들과 살면서 동서남북의 네 방위를 지키며 불법 수호와 사부대중의 보호를 맡았다. 이를 위해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세간의 선악을 늘 살피고 그 결과를 매월 8일에는 사천왕의 사자(使者)들이, 14일은 태자(太子)가, 15일에는 사천왕 자신이 제석천(帝釋天)에게 보고하는 것이 중대한 임무였다.

사천왕 중 동쪽을 수호하는 지국천왕(持國天王)은 안민(安民)의 신으로서 수미산 동쪽 중턱의 황금타(黃金埵)에 있는 천궁(天宮)에서 살았고, 16 선신(善神)의 하나이기도 한 지국천왕은 선한 자에게 상을 내리고 악한 자에게 벌을 주어 항상 인간을 고루 보살피며 국토를 수호하겠다는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얼굴은 푸른빛을 띠고 있으며, 왼손에는 칼을 쥐었고 오른손은 허리를 잡고 있거나 보석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그는 휘하에 팔부신중의 하나로서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향기만 맡는 음악의 신 건달바(乾達婆)를 거느리고 있다.

서쪽을 지키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은 몸이 여러 가지 색으로 장식돼 있고 입을 크게 벌인 형상으로 온갖 나쁜 이야기를 물리친다고 한다. 또 눈을 크게 부릅뜸으로써 그 위엄으로 나쁜 것들을 몰아낸다고 해 악안·광목이라고도 한다. 광목천왕은 죄인에게 벌을 내려 매우 심한 고통을 느끼게 하는 가운데 도심(道心 깨달음)을 일으키도록 하는 역할이다. 붉은 관을 쓰고 갑옷을 입고, 오른손은 팔꿈치를 세워 끝이 셋으로 갈라진 삼차극(三叉戟)을 들고 있고, 왼손에는 보탑을 받들어 쥐고 있다. 용(龍)과 비사사(毘舍闍) 등을 거르리고 있다.

남방을 외호하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은 자신의 위덕을 증가해 만물이 태어날 수 있는 덕을 베풀겠다는 발원을 하고 있다고 한다. 구반다 등 무수한 귀신을 거느린 증장천왕은 온몸이 적육색이며 노한 눈을 하고 있다. 갑옷으로 무장하고 오른손은 용을 잡아 가슴 바로 아래에 대고 있고, 왼손에는 용의 여의주를 쥐고 있다.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은 비사문천왕(毘沙門天王)이라고도 한다. 항상 부처님의 도량을 지키면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다고 해 다문이라고 한다. 암흑계의 사물을 관리하는 것인데 한때 불법에 귀의해 광명신(光明神)이 되었으나, 본래 자신의 원을 지킨다고 하여 금비라신(金毘羅神)이라고 한다. 다문천왕은 왼손에 늘 비파를 들고 있다.

불교국가였던 고려말 이성계 장군은 그 자신도 전국의 기도발이 영험한 도량에서 기도했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피로 쿠데타를 일으켜 조선을 건국할 수 있었다는 걸 숨기지 않았음을 여러 사찰에서 볼 수 있다. 장군 시절 꿈이 하도 혼란스러워 이를 장차 왕이 될 것이라고 명쾌하게 해몽한 무학 대사에게 왕이 되자, 무학 대사가 왕이 될 꿈을 해석해줬다 해서 약속했던 바대로 석왕사(釋王寺)라는 절을 창건, 시주한 사례가 그렇다. 무학 왕사를 곁에 두고 국사를 자문한 흔적들이 사찰 곳곳에 배어있다.

이후 아들인 태종, 손자인 세종, 증손자인 세조 때까지 불교는 유교를 국사로 하는 유생들의 강력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왕실의 절대적인 보호와 지지 속에 조선 불교의 큰 흔적을 남겼다. 고려 불교가 팔만대장경(고려대장경)을 남겼다면 조선 불교는 한글이라는 천추에 빛나는 불탑을 세웠다.

바로 그 세조가 아버지 세종대왕에 이어 한글을 창제하는데 실질적인 주역 역할을 했던 신미 대사를 대를 이어 국사로 모시면서 왕실 사방에 왕찰을 지정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이 있다. 세조는 도성 밖 사방에 왕실의 원찰(願刹)을 하나씩 뒀다고 한다. 부처님과 경내 신도들을 지키는 사천왕처럼 동쪽의 불암사, 서쪽 진관사(津寬寺), 남쪽의 삼막사, 북쪽의 승가를 사천왕 역할을 하도록 한 것이다. 왕실과 도성 안 백성을 보살피려는 비보 사찰 역할을 둔 셈이다.

동쪽의 불암사는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 불암산에 있다. 신라 때 절을 태조 이성계의 왕사였던 무학(無學) 대사가 중수했다고 한다. 이 절은 특히 인조 16년인 1638년에 왕명으로 역대 승려의 법통을 이어온 세속으로는 족보에 해당하는 것을 판각한 ‘석씨원류응화사적책판(釋氏源流應化事蹟冊板)’ 212매의 목판이 있다.

서쪽 진관사(津寬寺)는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 북한산(北漢山) 자락에 있다. 고려 현종이 자신을 지켜준 진관 대사를 위해 창건한 이후 조선 시대를 거쳐 고려와 조선 왕실의 국혼들을 위로하고 극락왕생을 기원한 수륙재(水陸齋) 도량 역할을 했다. 특히 세종 때는 집현전 학사들을 위한 연구실인 독서당을 둘 정도로 왕찰역할이 돋보이는 절이다.

남쪽의 삼막사(三幕寺)는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삼성산에 있다. 신라 문무왕 17년인 677년에 원효(元曉)·의상(義湘)·윤필(潤筆) 3대사(大師)가 관악산에 들어와서 막(幕)을 치고 수도했다 해서 삼막사라고 했다 한다. 조선 태조 3년인 1394년에 왕사였던 무학(無學) 대사가 국운(國運)의 융성을 발원한 것을 계기로 1398년 왕명에 의해 중건됐다고 한다.

북쪽의 승가사는 서울 종로구 구기동 북한산에 있는 절이다. 인도 출신 승가 대사를 기리기 위해 봉안했다 해서 절 이름도 승가사이다. 승가대 사는 서기 640년에 인도에서 출생해 당나라로 건너와 53년간 불교를 포교하는 동안 신통력이 자유자재했다고 한다. 관음보살로 화신으로 일컬어지는 승가 대사를 기리기 위한 사찰이 승가사이다. 신라, 고려,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1400년간 왕상공경(王相公卿)이 국난 때마다 참배 기도를 드려 가피를 입었고, 백성의 소원도 한 가지만은 꼭 들어주는 영험 설화들이 내려온다. 조선 초기의 고승이자 신미 대사의 스승인 함허(涵虛) 스님이 수도했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부처님을 외호하는 사천왕이 호위무사 역할을 했듯이 조선 왕실을 수호하는 특별 사찰로 불암사, 진관사, 삼막사, 승가사가 그 호위무사 역할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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