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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걸의 창건설화] 대웅전이 두 개인 약사도량 장곡사
  • 최종걸 주필
  • 승인 2019.12.29 15:50
  •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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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해 5월부터 올해 3월까지 고려 건국 1100주년을 기념하는 ‘대고려 918·2018 그 찬란한 도전’ 특별전에 전시된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金銅藥師如來坐像). 사진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흔히 절에 가면 중심에 대웅전(大雄殿)이 있다. 대웅전은 절의 중심이 되는 전당으로 큰 힘이 있어서 도력(道力)과 법력(法力)으로 세상을 밝히는 영웅을 모신 전각이라는 뜻이다. 때문에 모든 절에는 대웅전이라는 전당이 중심이고 기타 전각들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절중 유일하게 경내에 탑은 없고 대웅전이 상 하 두 개를 둔 절이 있다. 상대웅전에는 기도 영험담이, 하대웅전에는 나라에 큰일이 일어났음을 예고하는 이적을 보인다고 한다.

바로 그 장곡사(長谷寺)는 충청남도 청양군 대치면 장곡리 15 칠갑산(七甲山) 산 내에 있다. 장곡사는 신라 문성왕 12년인 850년에 구산선문 가지산파(九山禪門 迦智山派) 제 5조인 보조 선사 체징(體澄) 스님이 창건했다고 한다.

장곡사(長谷寺)라는 절 이름은 칠갑산의 계곡 가운데 장곡천(長谷川)에서 유래한 것으로 긴(長) 계곡(谷)의 절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장곡사 앞에 흐르는 계곡도 절 이름답게 아흔아홉 굽이를 휘도는 아흔아홉 계곡이다. 마치 백번째 담(潭)에 세운 강원도 설악산 내 백담사(百潭寺)를 연상케 한다.

우리나라 절 가운데 유일하게 2개의 대웅전을 둔 절로 약사기도 영험 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또 특이하게 경내에 탑이 없다.

장곡사 대웅전이 두 개가 된 사연은 사적기에도 정확히 소개하지 않고 있지만 장곡사가 약사 기도 도량으로 이름이 알려지자 찾아오는 신도들이 많아지면서 대웅전이 비좁아 하나 더 건립하지 않았을까 하는 해석을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칠갑산 남동쪽의 도림사가 임진왜란 때 불탄 뒤 남아 있던 대웅전을 장곡사로 옮겼다는 설도 있다.

장곡사는 약사기도 영험 도량답게 상대웅전과 하대웅전 모두 약사여래불이 봉안돼 있다. 하대웅전의 경우 주불이 약사여래불이다. 상대웅전의 경우 주불은 비로자나불이지만 약사여래불이 협시 불로 모셔져 있다. 이같이 약사 도량답게 상대웅전(동남향) 약사불은 영험이 많은 반면 하대웅전(서남향)의 약사불은 이적을 많이 보인다고 한다.

맞배지붕 형태의 상대웅전은 통일 신라 시대의 바닥과 14세기 양식을 한 배흘림기둥, 다포집,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철조 약사여래좌상이 봉안돼 있다. 신라 말에서 고려 초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철조 약사여래좌상은 오른손은 무릎 밑, 왼손을 무릎 위에 놓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약사불을 상징하는 왼손 손바닥 위에 약 그릇이 놓여 있던 흔적이 있다. 이 불상은 9세기 유행한 비로자나불로 고려 전기 불상이다.

상대웅전 약사불과 관련해서는 1998년 9월 어느 날 충남 예산의 한 신도가 꿈속에서 약사불을 만났다고 한다. 약사불은 약병을 하나 주면서 대웅전이 2개인 절을 찾아가 기도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 신도는 약사불이 준 약을 먹고 평소 아는 사람 가운데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을 찾아 아픈 부위를 만져주고 꿈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깨어보니 꿈속에서 자신이 만져 준 사람들이 병이 나았다고 한다. 그 신도가 하도 꿈이 생생해서 대웅전이 2개인 장곡사를 찾았는데 꿈속에서 만난 약사불이 상대웅전의 약사불이었다고 한다.

하대웅전은 조선 중기의 전각으로 맞배지붕을 얹어 임진왜란 이후에 유행한 건축양식이지만 법당 안에는 병든 이들을 구제한다는 금동 약사여래불 좌상이 봉안돼 있다. 1346년에 조성된 흔치 않은 고려 시대 불상으로 보물 제337호로 지정돼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해 5월부터 올해 3월까지 고려 건국 1100주년을 기념하는 ‘대고려 918·2018 그 찬란한 도전’ 특별전에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金銅藥師如來坐像)과 발원문(發願文)을 전시한 바 있다. 전시에 소개된 금동약사여래좌상과 1007명의 스님과 신도들이 함께 발원한 10m가 넘는 발원문에는 삶에서 병마가 비껴가기를 기원하는 복장물도 함께 공개됐다.

불상의 발원문은 지난 1959년에 실시한 복장(腹藏) 조사 중 발견되었고 발원문에는 고려 충목왕 2년인 1346년에 불상이 조성됐다고 기록돼 있다.

불복장(佛服裝)은 부처님의 탄생을 위해 불상과 불화에 발원문, 후령통, 다라니, 경전, 직물류 등을 봉안해 생명을 불어 넣어주는 의식으로 대웅전 등에 불상을 조성할 때 함께 불상 안에 넣는 성물들이다.

바로 그 하대웅전내 금동약사여래좌상이 지난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총탄에 유명을 달리했을때와 1983년 미얀마(현 미얀마) 아웅 산 테러로 전두환 대통령을 수행했던 장관과 청와대 수석들이 목숨을 잃었을 때 구슬 같은 땀방울을 흘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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