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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걸의 창건 설화] 왕자 7명이 출가 후 깨달았다는 칠불사(七佛寺)
  • 최종걸 주필
  • 승인 2020.01.02 14:15
  •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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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자방(亞子房)은 신라 효공왕 당시 담공(曇空)선사가 축조한 선원. 아(亞) 자형 선원으로 참선하는 스님들이 서로 마주치지 않게 방 구조를 만든 특이하게 설계했다. 담공선사의 축조 당시에는 한 번 불을 지피면 100일간 따뜻한 신비한 온돌방이라 하여 세계 건축사에도 기록돼 있다. 담공 선사를 일명 구들 도사라는 칭호도 내려온다. 사진 제공 칠불사
칠불사(七佛寺)는 지금으로부터 2000년전 인도에서 가락국 김수로왕에게 시집온 허황옥 공주 사이에 난 7명의 왕자가 출가 후 깨달았다 해서 붙여진 절 이름이라 한다.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범왕길 528 지리산의 중심봉인 반야봉(1,732m)의 남쪽 800m 고지에 있다.

칠불사는 고구려(372년 소수림왕 때 아도화상)와 백제 시대(384년 침류왕 때 마라난타) 불교가 전래한 것보다 이전에 인도에서 전파됐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이전의 가야불교의 발상지라는 점이다.

칠불사는 1세기경에 가락국 시조 김수로(金首露) 왕의 일곱 왕자가 그들의 외숙인 범승(梵僧 인도 스님) 장유보옥(長遊寶玉) 화상(和尙)을 스승으로 모시고 깨달아 이를 기념하여 김수로왕이 후원한 사찰로서, 가야불교의 발상지이다.

사적기에 따르면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김수로왕이 서기 42년에 화생(化生), 남해를 통해 가락국에서 온 인도 황하 상류의 태양왕조인 아유다국 허황옥 공주를 왕비로 맞아 10남 2녀를 두었다. 그중 장남은 왕위를 계승하였고, 둘째와 셋째 왕자는 어머니의 성을 이어받아 김해 허씨(許氏)의 시조가 됐다. 그 나머지 일곱 왕자는 외숙인 장유화상을 따라 출가했다고 한다. 이들 일곱 왕자는 장유화상의 가르침을 받으며 가야산에서 3년간 수도하다가 의령 수도산과 사천 와룡산 등을 거쳐 서기 101년에 이곳 지리산 반야봉 아래에 운상원(雲上院)을 짓고 정진한 지 2년 만에 모두 성불하였다. 칠(七) 불(佛)의 명호는 금왕광불(金王光佛), 금왕당불(金王幢佛), 금왕상불(金王相佛), 금왕행불(金王行佛), 금왕향불(金王香佛), 금왕성불(金王性佛), 금왕공불(金王空佛)이다. 이 7명의 왕자가 깨달아 칠불사(七佛寺)라 했다고 한다.

칠불사 경내와 인근에는 이와 관련한 지명들이 아직 남아 있다. 칠불사 경내에 있는 영지(影池)는 7 왕자의 그림자가 나타났다는 연못이다. 수로왕 부부가 출가한 일곱 왕자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와서 왕자를 보려 하자 장유화상은 “왕자들은 이미 출가하여 수도하는 몸이라 결코 상면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꼭 보고 싶으면 절 밑에 연못을 만들어 물속을 보면 왕자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장유화상의 말에 따라 김수로왕 부부는 연못을 만들어 놓고 그 연못을 보니 과연 일곱 왕자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를 보고 수로왕 부부는 환희심을 느끼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로 인하여 이 연못을 영지(影池)라 불렀다는 설화가 내려온다.

또 칠불사 인근 마을의 명칭인 범왕(凡王)마을은 김수로왕이 일곱 왕자를 만나기 위하여 임시 궁궐을 짓고 머무른 데에서 비롯됐고, 또 화개면 정금리의 대비마을(大妃洞)은 허왕후가 아들을 만나기 위하여 머물렀다는 곳이라고 한다.

칠불사는 이 외에도 문수보살의 상주 도량, 동국제일선원, 해동 계맥(戒脈)을 수립한 율법 도량, 동다(東茶)를 중흥한 차 도량, 거문고를 전승한 현악의 도량 등 무수한 인연을 품고 있다.

해동 계맥은 조선 순조 26년째인 1826년 대은낭오(大隱朗悟) 선사가 지리산 칠불사에서 ‘범망경’에 의하여 서상수계(瑞祥受戒)한 계맥으로 천 리 안에 계를 줄 스승이 없으면 부처님께 기도하여 서상을 받으면 계체가 성립되어 부처님께 계를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전라남도 영암 도갑사에서 주석하던 대은 선사가 서상계(瑞祥戒)를 받기 위하여 스승인 금담(錦潭)스님과 함께 칠불사로 와서 ‘범망경’ 의지하여 용맹 기도를 하는데, 대웅전에 모셔놓은 부처님 미간 백호로부터 한 줄기 상서로운 광명이 나와 대은 스님의 정수리로 서상계를 받고, 스승인 금담스님은 제자인 대은 스님으로부터 그 서상계를 전해 받았다고 한다. 그 계맥은 대은낭오(大隱朗悟), 금담보명(金潭普明), 초의의순(草衣意恂), 범해각안(梵海覺岸), 선곡율사(禪谷律師), 용성진종(龍城震鐘) 등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지리산은 문수보살이 일만 권속을 거느리고 상주하는 곳이다는 설화가 내려오고 있다. 지리산(智異山)이라는 이름도 대지문수사리보살(大智文殊師利菩薩)에서 ‘지(智)’자와 ‘리(利)’자를 각각 따온 것이라고 한다. 칠불사를 품고 있는 지리산 반야봉도 곧 문수보살의 대지혜를 상징한다. 특히 칠불사는 생문수(生文殊) 도량으로서, 칠불사에서 참선하거나 기도를 하면 문수보살이 근기에 맞추어 화현하여 기도를 성취해 주고, 또한 공부인을 보살펴서 견성오도케 하는 영험 있는 도량이라고 한다.


칠불사는 또 아자방(亞字房) 선원과 운상선원을 둔 동국제일선원임을 자부하고 있다. 아자방은 신라 효공왕 당시 담공(曇空)선사가 축조한 선원으로서, 방안 네 귀퉁이에 50cm씩 높은 곳은 좌선처이고 가운데 십자 모양의 낮은 곳은 경행처로 아(亞) 자형 선원으로 참선하는 스님들이 서로 마주치지 않게 방 구조를 만든 특이하게 설계했다. 담공선사의 축조 당시에는 한 번 불을 지피면 100일간 따뜻한 신비한 온돌방이라 하여 세계 건축사에도 기록돼 있다. 담공 선사를 일명 구들 도사라는 칭호도 내려온다.

운상선원은 옥보대라고도 하는데, 허왕후 오빠인 장유보옥 선사의 이름을 따서 옥보대라는 설과 거문고 전승자인 옥보고의 이름을 따랐다는 설이 있다. 현재는 운상선원을 대중 선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칠불사의 아자방과 운상선원에서 고려 시대의 정명 선사, 조선 시대의 서산대사(1520-1604), 부휴 대사, 초의 선사, 근현대에는 용성 선사, 금오 선사, 서암선사 등이 수행 정진할 만큼 동국제일선원 역할을 했다.

옥보고(玉寶高)가 지리산 운상원에 들어가 50년 동안 거문고를 연구하여 새로운 곡조 30곡을 지었고 칠불사가 위치한 화개면에 정금(井琴)이라 불리는 마을은 옥보고 선생이 옥보대인 운상원에서 거문고를 연주하면 이 마을의 우물에서 거문고 소리가 들렸다 하여 우물 정(井)자, 거문고 금(琴) 자를 사용하여 정금이라고 명명했다는 것이다.

조선 순조(純祖) 28년째인 1828년에 초의 선사가 칠불사 아자방에서 참선하는 동안 우리나라 차(茶)를 연구한 다신전(茶神傳)을 초록하고 이 다신전을 기초로 이후 불교 게송에 맞춰 우리차를 예찬한 동다송(東茶頌)을 저술하는 기반이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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