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서사 경내 진묵대사 부도. 지난해 중앙 부분이 조금씩 부풀려진 이적을 보였다고 한다. 사진 제공 봉서사.

명불허전(名不虛傳)을 실감나게 한 스님이 출가한 절에는 아직도 그 훈증이 남아 있다.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서방산 봉서사(西方山 鳳棲寺)엔 조선 중기 임진왜란이라는 난세 속에 찌든 백성을 보듬으려 세상에 들어간 진묵 대사 행적이 남아 있다. 진묵 대사는 우리 불교사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환생했다는 설화를 남긴 스님이다.

봉서사는 성덕왕 26년째인 727년에 창건이후 고려 공민왕 때 나옹(懶翁) 스님, 조선시대 선조 때에는 진묵(震默) 대사가 중창하고 이곳에 수행했던 곳이다. 진묵 대사는 당시 전국승려대조사(全國僧侶大祖師)로 불가에 신화를 남겼다고 한다.

역사는 동시대에 왜군에 맞서 승군을 모아 격전을 치렀던 서산 대사만을 조국을 위해 불살생을 묻어둔 승군대장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 피폐해진 민심을 위로하고 이들에게 희망이라는 불심(佛心)을 심어준 진묵대사는 서산 대사의 그늘에 신화로만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봉서사가 있는 서방산은 서방정토(西方淨土)를 상징하는 서방(西方)이라는 뜻과 함께 봉황(鳳凰)이 머무른다는 봉서(鳳棲)라는 뜻을 품은 바위산이다.

풍수가에서는 바위산 치고는 밀도가 강한 화강암으로 봉서사는 청룡 백호 자락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어서 기운을 함장(含藏) 하기에는 안성맞춤으로 평한다. 이는 곧 스님들이 수행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바위산이라는 의미다.

바로 이곳에서 진묵 대사가 출가했고 수행을 했던 곳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환생했다고 할 만큼 도력이 높았던 진묵 대사 였지만 임진왜란 시에 철저히 은둔적 삶을 살아 상대적으로 세간에는 덜 알려져 있다.

승가의 가장 기본계(基本戒), 다시 말해 헌법 제 1조 1항 격이 ‘살생을 하지 말라’ 하다. 왜적에게 맞서 게릴라부대 승군의 총대장 역할을 한 서산 대사와는 달리 진묵 대사는 세상에 나가 민심을 보듬었다. 서산 대사가 계율을 접어두고 호국에 나섰다면 진묵 대사는 승가의 가풍을 지키며 자비를 펼친 셈이다.

진묵대사는 처절하게 짓밟힌 세간 속으로 나가 이름 없는 백성의 애환을 살폈다.

호남지역의 절에 내려오는 진묵대사의 이야기에 따르면 진묵대사의 불가사의한 도력이 회자한다. 진묵 스님이 수행했던 절에서는 진묵대사의 훈증 덕분에 그나마 먹고 산다거나 진묵 대사의 기운이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한다.

불가에서 내려오는 ‘중 벼슬은 닭 벼슬만도 못하다’는 것처럼 진묵 대사는 수행자의 기본을 놓지 않았다.

청량산 원등사, 모악산 대원사, 수왕사, 김제 망해사와 성모암 등지에는 진묵대사와 관련된 일화들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진묵 스님이 어려서 출가 후 사미승으로 소임 볼 때 매일 나한전에 물과 향 등 공양을 올리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절 주지 스님의 꿈에 절의 신장들이 나타나 하소연했다는 것이다. “부처님이 올리는 공양을 어찌 우리가 황송하게 받을 수가 있겠느냐? 며 받을 수가 없으니 제발 진묵 스님에게 그 소임만은 면하게 해달라고 했다”라고 한다.

생가에 누님이 가난하여 식량을 얻으려 봉서사로 출가한 동생 진묵 스님을 찾아왔다고 한다. 하여 절에 있는 쌀 몇 되를 주면서 가지고 가서 드시라고 한 시점이 석양 무렵이라 집까지 가려면 밤중이 될 것을 걱정하자, 스님은 “아닙니다. 누님이 집에 도착할 때까지는 어둠이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20킬로 거리였지만 누님이 집에 도착하니 비로소 해가 졌다는 이야기도 내려온다.

또 진묵대사가 봉서사에서 수행 중 해인사 대장경이 불에 탈 뻔한 화재를 막았다는 설화도 전한다. 이 절에서 수도하던 진묵대사는 자주 해인사를 내왕하면서 대장경을 모두 암송하였다고 한다. 하루는 진묵대사가 제자를 데리고 급히 해인사로 갔는데, 그날 밤 대장경각 옆에서 불이 나 도저히 끌 수 없게끔 되었다. 이때 진묵대사는 솔잎에 물을 적셔 불길이 번지는 곳에 몇 번 뿌리자 갑자기 폭우가 내려 불길을 잡아 대장경판의 전소 위기를 막았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봉서사 경내 진묵대사 부도가 지난해에도 중앙 부분이 조금씩 부풀려지고 있다는 소식도 스님의 법력과 도력이 신화만이 아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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