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자금, 피감 기업에 의존…'과거' 사안 배제 논란
"이사회서 문제 임원 축출해야"…"과거 잘못 사과·재발방지 약속해야"

▲ 삼성그룹 준법감시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지형 전 대법관(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이 9일 서울 서대문구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간투데이 이욱신 기자] 이재용 부회장 파기환송심의 요구로 만들어질 삼성그룹 준법감시위원회가 설립 취지에 맞게 독립적으로 제 역할을 할 것인지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상법 등 공식 법제에 없는 임의의 기구인데다 위원회를 실무적으로 지원할 사무조직에 필요한 인원과 자금도 삼성그룹 계열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과거 사례에 비춰 볼 때 삼성이 준법감시위로 이재용 부회장의 형량 감경 등 소기의 성과를 얻게 되면 다시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되풀이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10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준법·윤리경영 강화를 위해 김지형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학계·언론계·시민사회·법조계 출신 인사 6명을 위원으로 하는 준법감시위원회를 다음달 초 출범시킨다. 위원회는 최순실 국정농단에 연루된 이재용 부회장 파기환송심을 심리하는 서울고법 형사1부가 "권력자로부터 뇌물 요청을 받더라도 응하지 않을 방법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지난 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지형 위원장은 "이재용 부회장으로부터 위원회 운영과 관련된 '자율성·독립성'을 약속받았다"며 "준법감시위는 공정거래, 뇌물수수·부정청탁 뿐만 아니라 노조와 경영권 승계, 총수 일가 비리까지 '성역없이' 들여다보겠다"고 말했다. 특히 "최고경영진의 법 위반 행위를 직접 신고 받고 조사하고 시정과 제재를 요구하고 그래도 시정되지 않을 때에는 홈페이지 게시를 통해 사회적으로 환기시키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준법감시위가 피감 대상이 되는 삼성 주요 7개 계열사들로부터 완전한 독립성을 확보할 것인지 의구심을 갖는 시선이 많다. 준법감시위를 실무적으로 지원할 인력과 비용이 삼성 계열사들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삼성의 입김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인 것이다.

또 준법감시위가 다루는 사안의 시간적 범위도 논란거리다. 김 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아직 위원들과 상의해보지 않았지만 준법감시위가 설치된 이후부터 발생하는 사안을 다루는 것이 맞지 않겠느냐"고 언급했다. 이번 준법감시위를 만들게 된 직접적 배경인 국정농단 사태 등을 비롯해 불법노조파괴공작 등 어두운 '과거'는 빠지게 되는 셈이다.

김남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부회장은 "삼성이 준법감시위 활동의 진정성을 확보하고자 한다면 오는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과거 불법행위와 관련돼 형사처벌을 받은 문제 임원들을 이사회에서 면직처리하고 횡령·배임 임원은 재취직하지 못하게 하는 정관 변경을 해야 한다"며 "글로벌 기업인 삼성은 국내 법 뿐만 아니라 미국의 '해외부패방지법(외국 정부 관리 등에게 뇌물을 제공한 법인이나 개인을 처벌하는 법)'으로 처벌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문제 임원들을 이사회에서 배제시키고 이사회의 독립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삼성이 과거 불법·탈법행위가 발각돼 사회적 논란이 일어날 때마다 비서조직 해체·이건희 회장의 경영일선 후퇴 등 경영개선 조치를 내놨지만 사태가 일단락된 뒤에는 다시 잘못된 경영행태로 회귀한 경험을 곱씹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조장희 전국금속노조 삼성지회 부지회장은 "삼성은 과거 불법·탈법행위가 탄로나 사회적 지탄을 받을 때마다 위기국면을 전환하려고 외부적으로는 이건희 회장 사퇴, 대규모 사회 환원 약속 등의 '꼼수'를 내놨고 내부적으로는 '준법 경영'을 교육·강조했다"며 "준법감시위가 노조파괴 등도 다룬다고 하지만 삼성은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듯이 내부적으로 불법임을 알고 그 불법을 은폐하기 위한 활동도 서슴지 않는다. 삼성이 준법감시위 활동의 독립성·진정성을 나타내고 싶다면, 먼저 노조파괴공작 등으로 피해를 입은 노동자들에게 책임자들이 진솔하게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