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완성차·부품업체·전자·IT업체, '모빌리티 앞으로!'
한국 기업, 역대급 참가…약화된 혁신성·중국업체 모방 맹추격

▲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0'에서 삼성전자 프로모터가 관람객들에게 반려봇 '볼리'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일간투데이 이욱신 기자] 지난 7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TA) 주관으로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전자제품전시회 'CES 2020'이 10일 막을 내렸다. 올해는 'AI(인공지능)를 우리의 일상으로'라는 행사 슬로건에 맞게 AI 관련 기술·서비스가 대거 선보였다. 모빌리티 분야에서는 자동차 완성차 업체들뿐만 아니라 부품업체, 전자업체들까지 다양한 솔루션을 내놔 눈길을 끌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삼성·LG 등 기존 전자 대기업들뿐만 아니라 많은 스타트업들이 참여해 양적인 팽창세를 보였지만 예전만큼 혁신적인 제품을 선보이지 못했고 그마저도 중국업체들이 모방품을 내놓으며 빠르게 따라붙어 기술경쟁력 강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0'에서 관람객들이 LG전자 요리봇 '클로이 테이블'의 시연을 보고 있다. 사진=LG전자

◇삼성, '볼리'·'네온' 등 AI 제품·기술 선봬…LG, 'AI발달단계론' 제시

이번 행사에 참여한 기업들은 AI를 전면에 내세웠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글로벌 가전기업들은 다양한 가전제품에 장착한 AI를 통해 개인의 취향을 파악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삶의 편의가 증진되는 미래상을 전시부스에 구현했다.

삼성은 반려봇 '볼리'를 선보였다. 노란 테니스 공 모양의 볼리는 사용자를 따라 다니며 그 명령에 따라 집안 곳곳을 모니터링하고 스마트폰, TV등 주요 스마트 기기와 연동해 다양한 홈 케어를 수행할 수 있는 로봇이다.

볼리는 '단말기 장착형 인공지능(On-Device AI)' 기능도 탑재돼 있어 보안과 프라이버시 보호를 강화한 시큐리티 로봇이나 피트니스 도우미 역할을 하는 등 필요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기능을 확장할 수 있다.

김현석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 사업부문장(사장)은 "개인 삶의 동반자 역할을 하는 볼리는 인간 중심의 혁신을 추구하는 삼성전자의 로봇 연구 방향을 잘 나타내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미국 벤처 자회사인 스타랩스는 인공지능 프로젝트 '네온'을 소개했다. 네온은 영화와 TV, 인터넷 플랫폼 등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가상 캐릭터를 창작·편집·조종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인 '코어 R3'로 제작한 영상을 선보였다. 프라나브 미스트리 네온 최고경영자는 트위터를 통해 네온의 캐릭터 사진을 공개하며 "스스로 새로운 감정 표현과 움직임, 대화 등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디서든 내집처럼'을 주제로 'LG 씽큐존'을 꾸민 LG전자는 ▲진화된 AI 화질개선 프로세서를 탑재한 '8K TV' ▲AI를 적용한 '인스타뷰 씽큐' 냉장고 ▲AI DD(다이렉트 드라이브)모터를 탑재한 대용량 '트윈워시' 등 다양한 인공지능 가전제품을 전시했다.

LG전자는 또 인공지능 발달단계론을 제시하며 AI 기술의 단계별 발전 방향을 제시했다. 권봉석 LG전자 최고경영자(사장)는 "AI 발전은 ▲효율화 ▲개인화 ▲추론 ▲탐구 4단계가 있다"며 "지금은 1단계 또는 2단계 초입이다. 2단계부터 업체별 차별화가 본격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AI 기술 연구·개발의 선도기업인 구글은 자체 부스 외에도 수많은 타 기업 부스에서 '구글 어시스턴트' 또는 아마존 '알렉사'와 연동되는 기기들을 선보였다. 델타항공은 항공기 위치부터 승무원 규정과 공항 상황 등 수백만건의 운항 데이터를 분석하는 AI 플랫폼을 소개함으로써 AI와 전통산업의 융·복합을 통한 시너지를 기대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0'에서 관람객들이 현대자동차 부스에서 개인용 비행체 컨셉트 'S-A1'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현대차, 미래 모빌리티 비전 공개…도요타, '우븐 시티' 소개

최근 몇 년간 자동차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참가하면서 CES는 '라스베이거스 모터쇼'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올해는 다양한 자동차 완성차 업체들뿐만 아니라 부품업체, 전자·IT업체까지 가세해 가히 모빌리티(이동성)의 '백가쟁명(百家爭鳴)'이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현대자동차는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하늘을 나는 자동차'인 도심항공모빌리티(UAM)를 활용한 미래 모빌리티 비전을 공개하며 글로벌 모빌리티 선도업체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현대차 전시관에는 ▲우버와 함께 개발한 실물크기 개인용 비행체(PAV) 컨셉트 'S-A1' ▲목적 기반 모빌리티(PBV) 컨셉트 'S-링크(Link)' ▲모빌리티 환승 거점 컨셉트 'S-허브(Hub)' 등이 설치돼 많은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계열사 현대모비스는 지난해 공개한 자율주행 기반 도심 모빌리티 컨셉트인 '엠비전'을 기술적으로 한 단계 더 진화시키고 공유성(Sharing)을 더한 '엠비전 S(M.Vision S)'를 내놨다.

일본 자동차회사 도요타는 스마트 시티인 '우븐 시티(Woven City)'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후지산 인근에 내년 초 착공되는 우븐 시티는 실제 사람들이 사는 '살아있는 연구실험실'로, 자율주행차, 로봇, 퍼스널 모빌리티, 스마트 홈, AI 등의 기술을 실험, 개발하는 기반이 된다. 과거 자동직기(무명베 짜는 기기) 제작사에서 출발한 회사의 역사를 되새기며 스마트시티로 다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겠다는 취지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영화 '아바타'에서 영감을 얻은 쇼카 '비전 AVTR'을 내놓으며 친환경성과 지속가능성을 강조했다. 올라 칼레니우스 다임러 AG 및 메르세데스-벤츠 AG 이사회 의장은 기조연설에서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고 차량 생산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아우디의 자율주행차 '에이아이미(AI:ME)'는 시선 추적 기능을 통해 차량과 탑승자가 소통하고 가상현실(VR) 고글을 쓰고 이동중 다양한 인포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도록 해 '집도 직장도 아닌 제 3의 생활 공간'을 만들었다.

혼다는 운전의 재미도 즐길 수 있도록 여러 단계 자율주행이 가능한 증강 운전 컨셉트카를 선보였다. 센서를 통해 차량이 운전자의 의향을 파악하고 자율주행 단계를 조절한다.

세계적 자동차 부품회사 보쉬도 자율주행 컨셉트 셔틀차를 소개했다. 포드는 2족 보행 로봇 '디지트'를 선보였다. 자율주행 택배차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디지트가 차에서 물품을 가지고 내려 배달한다.

IT·전자업체도 모빌리티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구글은 구글 어시스턴트가 탑재된 볼보와 BMW 차량을 공개했다. 차량내 구글 어시스턴트를 이용해 내비게이션을 이용하고 집안과 연결해 전등을 제어하는 장면을 시연했다. 아마존은 이탈리아 고가 브랜드 람보르기니의 '우라칸 에보' 모델에 알렉사를 얹었다. 이 밖에 반도체업체 인텔은 자율주행 택시 자회사 모빌아이를 내세워 자율주행 장면을, 퀄컴은 자율주행차를 지원하는 완성형 시스템 '스냅드래곤 라이드'를 각각 공개했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가 5G 기반 '디지털 콕핏 2020'을 내놨다. 자사의 자동차용 프로세서인 '엑시노스 오토 V9' 칩셋을 탑재해 차량내 8개 디스플레이를 활용할 수 있고 8개 카메라가 안전한 운전을 돕는다. 삼성 디지털 콕핏은 올해로 세 번째 공개임에도 일반인 대상 시연이 제한돼 아쉬움을 샀다. LG전자도 처음으로 차 안에서 인포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을뿐만 아니라 집안 가전제품을 조작할 수 있는 커넥티드카 기술을 선보였다.

일본 소니는 컨셉트 전기차 '비전-S'를 내놨다. 차 안팎에 장착된 소니의 이미지 센서 등 33개의 센서로 주변 환경을 감지하고 전 좌석 와이드스크린 디스플레이와 정교한 오디오, 커넥티비티 등 서비스를 제공한다. 영화, 음악, 게임 등 다양한 컨텐츠를 거느린 소니가 하드웨어와 컨텐츠를 결합한 자동차 전자장비부품 산업에 본격 진출하면 상당한 파장을 불러 올 것이라는 관측이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0'에서 관람객들이 중국 TV 업체 콩카 부스에서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 대기업·스타트업, 대거 참여…중국업체, TV·가전 등 유사품 내놔

이번 CES에서 우리나라는 전통적인 행사 터줏대감인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전자업체들을 비롯해 현대자동차, SK, 현대중공업, 두산중공업 등 대한민국 산업을 대표하는 대기업, 중견기업, 스타트업 등을 총망라해 390여개 기업이 참가했다. 참가 기업수만으로도 주최국인 미국(1933개)과 중국(1368개)에 이어 세번째로 많은 역대급 규모였다.

비록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각각 반려봇 '볼리'와 요리봇 '클로이 테이블' 등으로 여전히 행사의 중심에서 언론과 관람객들의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두 업체 모두 이전에 소개한 제품들을 업그레이드한 수준에 머물러 혁신성이 예전보다 못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미·중 무역전쟁의 장기화로 알리바바와 샤오미 등이 불참하고 화웨이는 지난해 제품을 전시하는 등 중국기업들이 위축된 면도 보였지만 이번 행사에 참가한 가전업체들은 삼성·LG전자 제품들을 모방한 제품을 대거 내놓으며 기술 맹추격을 과시했다.

가전분야에서 TCL과 하이센스, 하이얼 등 중국 회사들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각각 '패밀리허브'와 '인스타뷰' 냉장고에 접목한 투명 디스플레이 기술을 그대로 따라한 제품들을 선보였다. 하이얼은 LG전자의 의류관리기 '스타일러'와 유사한 제품을 전시했다. TCL은 LG전자 '트윈워시'처럼 상단 통돌이, 하단 드럼 세탁기로 구성된 이중 세탁기 '듀플렉스'를 내놨다.

TV 분야에서는 너나할 것 없이 8K TV를 내놨으며 TCL, 하이센스, 스카이워스, 창홍 등이 삼성전자가 지난해 내놓은 세로 방향 스크린을 기본으로 한 TV '더 세로'를 모방한 제품들을 공개했다. TCL은 삼성전자처럼 QLED TV와 마이크로 LED를 표방한 제품도 가져왔다.

김현석 삼성전자 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8K 칩을 만들려면 최소 2년 이상은 걸리는데 지난해 초부터 시작했으면 내년에 나온다고 본다"며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2년 정도로 추정했다.

권봉석 LG전자 사장도 중국 업체들의 발빠른 추격에 대해 "카피를 너무 잘하고 있다. 같은 제품이 너무 많이 전시돼 있다고 느꼈다"며 "우리도 기술적 차별화를 빨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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