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가사 약사전 석굴(승가굴)에 봉안된 석조승가대사상. 사진 제공 승가사.

일반적으로 풍수가에서는 절도량 주변의 앞산과 좌우 산들의 지형에 의미를 둔다. 절을 둘러싸고 있는 지형이 그 절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심산계곡(深山溪谷)에 가면 주파수가 통하지 않는 경우처럼 절을 중심으로 한 앞뒤 좌우 지형들이 그 절에 주는 기운도 주파수 역할을 한다는 속설이 있기도 하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앞산이 어떤 모습을 한 산인가에 따라 그 절의 기도발이 달라진다.

조용헌 교수는 대웅전 도량 앞에 펼쳐진 앞산을 기준으로 "삼각형 모양의 목산(木體)형 산의 존재 유무와 테이블처럼 평평한 토산(土體) 형상, 바가지 엎어 놓은 모양의 금체(金體) 형태, 뾰족뾰족한 바위 바위봉우리들로 구성된 화체(火體)형 산인가에 따라 기운이 다르다"고 한다.

특히 화체형은 기도발이 좋고, 삼각형의 목체형은 학승이 나오며, 평평한 토체가 있으면 왕사가 머무를 만한 절이라고 알려졌다. 

종로구 구기동에 있는 바로 그 승가사에서 바라본 앞산은 팔각정이 있는 북악산이 토체 형태로 보이는 흔히 一 일자문성으로 풀이한다.

토체가 안산으로 있는 형세는 국사나 왕사가 머무를 만한 터라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추측된다. 

신라 경덕왕 15년째인 756년에 수태(秀台) 스님이 창건 때, 당나라 고종 때 장안 천복사(薦福寺)에서 대중을 교화하면서 생불(生佛)로 지칭되었던 승가(僧伽) 대사를 사모한다는 뜻으로 승가사(僧伽寺)라 했다.

승가 대사는 서기 640년에 인도에서 출생해 당나라로 건너와 53년간 불교를 포교하는 동안 신통력이 자유자재했다고 한다. 관음보살 화신으로 일컬어지는 승가 대사를 기리기 위한 사찰이 승가사이다.

하지만 창건 시기와 관련해서는 다른 해석도 있다. 승가사 뒤 주봉인 승가봉(사모바위)에서 서남쪽으로 800m 지점에 자리 잡은 진흥왕순수비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비봉(碑峰)에는 승가사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조선 순조 16년인 1816년에 금석문의 대가였던 추사 김정희가 참배하러 왔다가 스님으로부터 역사가 매우 오래된 고비(古碑)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비봉에 올라갔다.

바로 그 고비가 진흥왕순수비였음을 발견하고 비문의 글자 해독을 위해 승가사에서 7일간 기도하며 판독을 시도하였지만 68자만 해독했다.

이후 중국과 일본 학자들의 판독에 따르면 견석굴도인(見石窟道人)이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바로 승가가 석굴은 승가굴, 현 약사전을 가리킨다.

또 그 도인은 당시 승가사에서 수도하고 있던 법장혜인(法藏慧忍) 스님으로 추정하고 있다. 진흥왕이 서기 555년에 북산에 왔을 때 승가굴을 방문했고, 승가굴에서 수도하던 도인인 법장 혜인 스님으로부터 비문의 내용을 받았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뒤에 진평왕이 할아버지인 진흥왕의 뜻을 받들어 북한산 승가굴을 참배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승가사는 555년부터 있었다다.

고려 숙종 4년인 1099년에 대각국사 의천 스님이 왕과 왕비를 모시고 참배하면서 불상을 개금(改金)하고 불당을 중수했다. 조선 초기의 고승이자 신미 대사의 스승인 함허(涵虛) 스님이 수도했고, 조선 후기인 고종 때 명성황후와 엄 상궁이 시주해서 중건했다.

약사전 석굴에 봉안된 석조승가대사상과 대웅전 뒤 108계 단위에 조성된 마애석가여래좌상의 기도와 약수의 효험 등이 상징적인 기도처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신라, 고려,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1400년간 왕상공경(王相公卿)이 국난 때마다 참배 기도를 드려 기도영험담이 이어지고, 백성의 소원도 한 가지만은 꼭 들어주는 기도처로 알려져 있다.

재미있는 풍수설과 관련한 대목은 대웅전 앞산은 토체형으로 왕사나 국사가 머무를 터지만 좌청룡에 속하는 왼쪽 산 때문에 비구 스님들이 맞지 않는다는 전설도 있다.

승가사 왼쪽의 좌청룡 형상이 옷을 벗은 여자가 비스듬히 누워 있는 모습의 나부반와형(裸婦半臥形)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 스님들이 들어오면 오래 있지 못하고 나간다고 한다. 풍수설에 의하면 비구승은 나부반와형의 산 기운을 받으면 정신이 혼미하고 정진 기도가 흐려져 결국 파계한다는 이야기가 있어서라고 한다. 그 좌측 봉우리 형태는 보현봉을 중심으로 마치 배부른 여인이 누워 있는 모습이라고 설명한다.

산에서 기도 수행을 하는 스님들 처지에서는 무의식 속에 산의 기운을 받기 때문에 이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으로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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