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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걸의 창건 설화] '응무소주 이생기심' 서린 '길상사'
  • 최종걸 주필
  • 승인 2020.01.15 11:33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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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 스님이 지난 2009년 길상사 법당에서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법문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길상사.

불교 경전 중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에는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이란 게송이 있다. 이는 ‘줬다’, ‘받았다’라는 그 어느 곳에도 마음을 두지 말라는 뜻이다.

세계 불교사에 금강반야바라밀경 게송에 나오는 ‘응무소주 이생기심’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도량이 서울 성북동 길상사(吉祥寺)이다.

암흑과도 같았던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파란만장한 삶 속에도 ‘무소유’라는 글에 반해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 떠난 길상화 김영환 보살이 ‘마음이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고 떠난 절이다.

뭇 사나이들에게 웃음을 팔아 일군 수천억대의 재산을 흔쾌히 보시할 수 있다는 것은 도인도 마음을 내기 어려운 일이다. 

길상화(吉祥華) 김영환 보살은 1916년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고전 궁중 아악과 가무일체를 하규일의 문하에서 진향이라는 이름을 받아 기생의 삶을 살았다.

한때 시인 백석으로부터 자야(子夜)라는 아명을 받아 서울의 마지막 기생으로 이름을 떨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환 보살은 1950년대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궁중요리를 포함한 고급 한정식집이었던 요정을 냈다.

당시 청운각, 삼청각과 함께 정·재계 인물뿐만 아니라 남북 간 밀사들이 막후 정치협상 장소로도 유명했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격동의 세월 동안 수많은 사나이를 지켜본 김영환 보살이었지만 어느 날 법정 스님이 쓴 ‘무소유’라는 수필을 읽고 자신이 일군 그 모든 것을 스님에게 시주하겠다는 마음을 냈다고 전해졌다. 

처음 법정 스님은 그녀의 시주를 거절했다. 하지만 이후 김영환 보살은 10년 동안 간청해 결국 법정 스님은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후 그녀가 시주한 '대원각'은 ‘맑고 향기롭게’라는 근본 도량으로 가꾸는 불사로 거듭났다. 

이후 김영환 보살이 법정 스님으로부터 받은 건 염주 하나와 길상화라는 법명을 얻었다. 동시에 김영환 보살 소유의 요정 ‘대원각’ 7000여 평의 절터와 전각 일체는 ‘길상사(吉祥寺)’로 거듭났다. 

1997년 12월 14일은 불교사에 길이 남을 첫 법문이 펼쳐진 날이다. 

길상화 보살은 떠나면서 수천의 대중 앞에서 “저는 불교를 잘 모릅니다만 저기 보이는 저 팔각정은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는 곳이었습니다. 저의 소원은 저곳에서 맑고 장엄한 법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뿐입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후 ‘무소유’, ‘버리고 떠나기’, ‘나그네 길에서’, ‘아름다운 마무리’ 등 수십 편의 시어와 같은 산문으로 종교 간 벽을 두지 않았던 법정 스님 역시 길상화 보살의 마음을 받아 이를 다시 사람들의 몫으로 남겼다. 

22세 법정 스님은 대학 졸업을 1년 앞두고 출가, 효봉스님을 은사로 모셨다. 

효봉스님은 일제 시대 때 판사를 지낸 분으로, 어느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사형 선고를 내리는 판사라는 직을 던지고 엿장수로 전국 떠돌면서 죄업을 씻은 후 출가했다. 

 ‘무소유’는 법정 스님은 송광사 경내 불일암이라는 암자에서 수행정진 중 남긴 법어이면서도 산문집이다. 

이후 ‘무소유’가 종교의 벽을 넘어 대중들에게 알려졌고 ‘무소유’의 행간은 김영환 보살에게 마치 게송처럼 받아들여진 것으로 추측된다.

‘대원각’이 ‘길상사’로 회향한 이후, 요정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시민 누구나 찾아와 마음을 추스르는 열린 공간으로 명맥이 이어졌다. 

법정 스님 본인도 열반에 앞서 '장례식을 하지 마라. 관(棺)도 짜지 마라. 평소 입던 무명옷을 입혀라. 내가 살던 강원도 오두막에 대나무로 만든 평상이 있다. 그 위에 내 몸을 올리고 다비해라. 그리고 재는 평소 가꾸던 오두막 뜰의 꽃밭에다 뿌려라.'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법정 스님은 그의 산문집 중 ‘버리고 떠나기’처럼 2010년 3월 11일 길상사에서 79세의 나이로 열반했다.

성북동 길상사는 ‘무소유’와 ‘응무소주 이생기심’이 서린 미래 천년 불사를 남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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