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같은 돈이라도 다양한 이름표가 있다. 우리가 각자 지닌 이름처럼 돈도 그렇다. 대통령이 따지지 않고 쓸 수 있었던 소위 통치자금부터 국회와 국가 공안 기관들이 출처를 밝히지 않는 특수활동비 등 숱한 이름을 갖고 있다. 거마비, 촌지, 복돈 등부터 그 쓰임새를 밝힐 수 없는 비자금 등 수 많은 돈에 관련된 용어들이 시대에 따라 달리해왔다.

그 돈의 이름표도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회계 또는 장부 그리고 예산이라는 기준을 개인부터 기업 더 나아가 정부까지 갖고 있다.

그 돈이 사익이냐 공익이냐에 따라 영리법인 또는 비영리법인이냐에 따라 회계와 장부에 기록하는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 기업 등 영리법인의 경우는 돈의 흐름을 감시하는 기관들에 의해 엄격한 검증을 받지만, 비영리법인의 경우 공익을 위한 특수성을 고려해 사안에 따른 투명성이 사각지대로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돈에는 사익이든 공익이든 반드시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언젠가는 그 꼬리표가 누군가에 의해 드러나는 게 돈의 모습이었다. 수많은 기업가가 툭하면 횡령과 배임 혐의란 죄명으로 감옥행을 하는 것도 돈의 그 꼬리표 때문이다. 이번에 논란이 되는 정대협과 정의기억연대의 지원금과 기부금 논란도 어찌 보면 돈의 사용처에 대한 이해와 오해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이 같은 논란의 기준은 투명성 여부이다. 비자금도 통치자금도 그리고 특수활동비도 그 성격에 따라 투명하게 집행됐다면 회계준칙에 따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대북 공작과 정보수집을 위해 써야 할 특수활동비를 대통령과 장관 그리고 국회의원에게 로비용으로 사용해 논란이 됐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특수활동비 성격에 맞지 않는 비정상적인 그야말로 공익이 아닌 사익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이처럼 돈의 쓰임새에 따라 공익과 사익의 경계선을 정확히 구분을 짓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엄정한 평가를 하고 있다. 특히 기부금과 지원금은 많은 이들이 마음을 모아 지원하는 만큼 그 투명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투명성의 기준은 소위 회계라는 원칙을 정해서 그 원칙대로 집행하는 데서 확보할 수 있다.

전국의 영유아원이 기를 쓰고 정부가 제시한 회계준칙에 반발한 것도 어찌 보면 정부가 지원만 하고 간섭하지 말라는 모습처럼 보였다. 하지만 개인과 각각의 가계도 매일 매일 쓰는 소위 가계부를 작성하듯 영유아원도 정부 예산이라는 보조금을 받는 만큼 정부는 마땅히 그 국가보조금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살펴봐야 할 의무가 있다. 그 때문에 회계준칙을 마련했다. 이는 비단 국가 예산뿐만 아니라 기부금과 보조금도 예외일 수 없다.

비영리법인이나 단체일수록 더 엄격한 회계기준을 마련해서 집행할 때 더 많은 후원과 지원을 담보할 수 있다. 특히 종교단체의 경우 그런 사례들을 많이 봐 왔다.

이번에 논란이 되는 정대협과 정의기억연대도 회계 투명성에서 불거졌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단체 중에 가장 어렵고 힘든 일에 나선 두 시민단체가 결국 회계 투명성이라는 덫에 걸려 곤욕을 치르고 있다. 답답할 노릇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이 자행한 소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특별법 제정과 진상 규명 등을 위해 지난 1990년 11월 출범한 단체가 회계 논란에 휩싸이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 11월 발족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과 2015년 설립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정의기억재단)’이 2018년 7월 11일 통합해 출범한 시민단체이다.

우리 사회는 그 두 단체가 추구했던 멀고도 험한 길에 아낌없는 갈채와 지원을 보냈지만 이를 관리하고 운영하는 회계는 누가 보더라도 투명하지 못했다는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그 논란의 최종 책임자는 윤미향 씨다. 30여 년간 두 단체의 온갖 악역을 감수하고 험한 길을 걸어왔던 그로서는 청천벽력같은 사회적 질타에 야속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우리가 관심과 염원을 갖는 만큼 그와 비례해서 투명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비영리법인과 단체에는 말은 않지만, 고요히 지켜보고 지원 여부를 늘 고민하는 사회이다. 국제구호단체가 연간 수천억 원의 기부금을 받아 정작 써야 할 곳에 쓰지 않고 그 단체를 운영하는 임직원들의 호의호식 비로 전용한 것도 한때 논란거리였던 점을 고려하면 회계 투명성은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늦지 않았다. 이번에 논란이 된 정의기억연대는 더는 논란의 확산을 막고 엄격한 회계기준을 공개하고 문제가 있었다면 책임자는 그 책임을 지면 된다. 대통령도 통치행위가 헌법정신에 어긋날 때는 탄핵당하는 세상인 마당에 국회의원직이 탐이나 책임을 회피하고 연연하는 모습은 가장 투명해야 할 시민단체 책임자의 자세가 아니다. 윤미향 씨는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그간 혼신을 다했던 시민단체를 살리는 길을 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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