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역정 첫 시작점은 김대중전 대통령과의 만남"
검찰개혁·준연동형 비례대표 법안통과 성과 꼽아
청와대·여당, "통합·협치"…야당, "대안있는 비판" 당부

▲ 문희상 국회의장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퇴임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정치역정에 대한 소회를 밝히고 있다. 사진=김현수 기자
[일간투데이 이욱신 기자] "아쉬움은 남아도 후회 없는 삶이었다. 하루하루 쌓아올린 보람이 가득했던, 행복한 정치인의 길이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퇴임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자신의 정치인으로서 삶을 정리했다. 1965년 혈기왕성한 청년으로서 한일회담 반대투쟁에 나선 것으로 따지면 55년 세월이었고 1980년 '서울의 봄'을 기점으로 하면 40년이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정당에 참여한 것으로 치면 33년 정치역정을 마무리하는 소회였다.

문 의장은 자신의 정치역정에서 결정적인 첫 장면으로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사후 주변의 권고로 동교동 지하 서재에서 이뤄진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만남을 꼽았다. 그는 "김 전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며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통일에의 꿈이 무지개처럼 솟아오르는 세상'이 저를 정치로 이끌었다"며 "그날 모든 것을 걸고 이뤄야할 인생의 목표가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만남은 유신시절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이 될 정도로 박 전 대통령을 흠모하던 부친과의 불화의 시작점이기도 했다. 부자간 불화는 1997년 12월 19일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으로 우리 헌정사상 처음으로 수평적이고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지고 난 뒤 끝났다. 문 의장은 "그날 아버지 묘소를 찾아 큰 절을 올리고 '내 말이 맞았죠'라며 오열과 통곡을 했다"며 "그렇게 아버지와 화해했다"고 회고했다.

문 의장은 지난 2년간 입법부 수장으로서 가장 기뻤던 날로 검찰개혁법안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통과된 때를 꼽았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박상천 전 법무부 장관을 통해 추진하던 검찰 개혁이 2개월 만에 좌절되며 실망하시던 모습, 노무현 전 대통령 때 검찰개혁을 추진하다 좌절하는 모습, 그 때 민정수석으로 개혁을 추진하던 문재인 현 대통령까지 역대 대통령들의 모습을 다 기억 한다"며 "세분의 대통령의 꿈과 염원을 담아 (국회의장으로서) 책임지고 법안 통과를 추진했지만 항상 협치를 강조하던 사람이 강행처리를 하게 돼 기쁘면서도 가장 가슴 아린 날이기도 했다"고 술회했다.

문 의장은 "'용장불여지장, 지장불여덕장, 덕장불여운장(勇將不如智將 智將不如德將 德將不如運將·용맹한 장수는 지혜로운 장수만 못하며, 지혜로운 장수는 덕 있는 장수만 못하고, 덕 있는 장수는 운수 좋은 장수만 못하다)'라는 말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복 많은 분"이라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한 뒤 "'복 많다'고 말하지만 문 대통령이 시대정신을 잘 알고 있기에 지난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고 집권 4년차에도 60% 넘는 지지율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문 대통령이) 코로나19 방역 성공에 대한 전 세계적인 평판에 걸맞게 국민들에게도 성과를 보여야 할 것"이라며 "취임 첫날 국회를 찾아 각 당 대표를 만난 것처럼 21대 국회가 개원하면 각 당 대표단, 원내 대표단, 상임위원장단을 초청해 대화하며 '여야정협의체'를 만들어 코로나19 국난극복과 경제회생을 도모할 것"을 권고했다.

문 의장은 "20대 전반기 국회는 1700만 촛불시민의 뜻을 받들어 300명 국회의원 중 234명이 찬성해서 쓰레기 한 톨 없이,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대통령 탄핵을 이뤄내는 등 전 세계에 유례없는 성숙한 민주주의를 보여줬다"며 "촛불의 원인은 제왕적 대통령제에 의한 국정농단에 있는 만큼 촛불의 완성은 비선 실세가 군림하지 못하도록 제도화된 개헌을 해야 하는데 20대 후반기 국회는 그러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문 의장은 자신의 소신인 의원내각제 개헌의 중간단계로 현행 헌법상 보장된 책임총리제를 강화하는 중간 단계 방식으로라도 국회가 좀 더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을 촉구했다.

문 의장은 "'청청여여야야언언(靑靑與與野野言言)'에 따라 청와대는 청와대답되 여당을 거수기로 여기지 말고 여당은 청와대의 거수기가 아닌 여당다워야 한다. 야당은 비판은 하되 대안을 내놓는 야당다워야 한다"며 "언론은 정치와 동업자 관계로 서로 협조하되 시대정신을 선점하기 위해 매일 다퉈야 한다"고 각자의 역할에 충실할 것을 주문했다.

문 의장은 마지막으로 "고단했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마음으로 제가 나고 자라서 뼈를 묻을 고향 의정부로 돌아가겠다"며 "40평 짜리 단층집에서 어릴적 어머니께서 작은 뜨락에 10평 남짓 꽃밭을 만들어 분꽃, 과꽃, 채송화, 접시꽃을 심고 기르시던 추억을 되새기며 소일하고 싶다"고 소박한 퇴임 이후 소망을 밝혔다. 문 의장은 "글 쓰는 재주가 없어서 어설픈 자서전은 평생 안 쓴다"면서도 "같이 작업할 사람이 있으면 생각해보겠다"고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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