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제재 미중갈등에 ‘곤혹스럽다’ 말만
미중과 모두 이해관계 걸려 있어
“시진핑 하반기 방한시 위험수위 높아져”
삼성 “별도 대응팀은 안 꾸려”
업계 “중장기적으론 매출 우려”

▲ 삼성전자, 평택에 EUV 파운드리 생산라인 구축.사진=연합뉴스

[일간투데이 김영섭 선임기자] "노 코멘트(아무 말씀을 드릴 수 없음)."

중국 최대 IT기업 화웨이(華爲)에 대한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로 화웨이를 주요 고객사로 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곤혹스런 상황이다. 두 회사가 화웨이에 납품하는 메모리 반도체는 규제 대상은 아니다. 당장 영향은 없지만 중장기적으로 매출이 떨어질 가능성이 나온다.

더욱이 한국 입장에선 중국과 미국 모두에 이해관계가 있어 편을 들기가 난감하다. 최악의 경우 ‘중차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일각에서 제기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측은 25일 일간투데이와 통화에서 미국이 올 9월부터 시행할 예정인 ‘대(對) 화웨이 반도체 수출 규제’와 관련해 “드릴 말씀이 없다”며 ‘노 코멘트’ 공식 입장을 밝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런 입장을 거듭 확인하면서 “이번 사태와 관련해 삼성전자 내에서 별도의 대응팀이 꾸려진 것은 없다”고도 했다.

또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당장은 영향이 없겠지만 미국의 제재가 계속되면서 스마트폰, 네트워크장비 등 화웨이의 제품 생산이 줄어들게 되면 휴대전화 제조용으로 납품하는 하이닉스 반도체 제품 매출이 줄어들 개연성은 있다”고 전망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당장 직접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지는 않지만 사태 향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번 사태로 ‘업황에 결코 좋지는 않다’는 데는 지금도 동의한다.

나아가 올 연말 대통령 재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향후 화웨이에 부품이나 소재를 공급하는 기업들까지 제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반도체 업계 일각에선 미국 정부가 더 강력한 제재 카드를 꺼낸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활용할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또 미국은 최근 들어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줄이겠다는 목표로 추진 중인 '반(反) 중국 전선' 경제번영네트워크(EPN·Economic Prosperity Network)에 동맹국들의 참여를 적극 촉구하고 있다.

일부 국가들도 미국의 제재 강화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는 추세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5세대 이동통신(5G) 구축사업에서 가능한 이른 시간에 중국 화웨이를 배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영국은 지난 1월 화웨이 장비 제한적 허용했다가 미국 측 압박을 받아왔다.

이에 중국 측도 사태를 조용히 관망하고만 있지 않다. 화웨이 측은 지난주 삼성전자·SK하이닉스 중국법인 관계자들을 불러 미국 정부의 제재 움직임과는 관계없이 연간 10조원 상당의 메모리 반도체(D램·낸드플래시)를 안정적으로 공급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중국 정부 양측으로부터 사실상 ‘부탁 절반, 압박 절반’에 내몰리는 장면이 실제 상황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D램 시장의 73%(2019년 점유율 기준)를 장악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키를 쥐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D램 공급을 끊게 되면 화웨이가 매우 곤란할 수 있는 이유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이 매출 비중 1, 2위를 다투고 있어 어느 한쪽 손을 들어줄 수 없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업계 관계자는 “중국도 곤란하지만 우리도 여간 난처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며 “올 하반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방한할 경우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한국의 잠재된 ‘위험 수위’가 급격하게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앞서 미국 상무부는 ‘미국의 장비나 기술을 이용, 화웨이가 설계한 반도체를 생산해 화웨이에 공급하는 업체’를 대상으로 수출면허를 받도록 했다. 1차적으로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업체인 TSMC를 겨냥한 것이다. TSMC는 화웨이가 자체 개발한 통신용 반도체를 위탁받아 생산하고 있다.

미국의 ‘화웨이 때리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인 2011년 미국 국방부는 화웨이에 대해 ‘민간기업의 탈을 쓴 스파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더욱 강경해졌다. 작년 5월엔 화웨이를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미국 내 판매’를 금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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