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훈 박사(서경대학교 나노융합공학과 학과장)

[일간투데이 김종훈 칼럼리스트] 이제 판데믹 한 가운데서 다른 나라에서는 엄두도 못 낼 엄청난 트래픽을 감당하며 이루어지는 비대면 교육을 통해 초등학생부터 대학원생까지 어떻게 하면 개개인 안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켜 자발적으로 학습하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때다.

여기 졸업을 앞둔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궁금했을 질문 하나가 있다. '얼마나 좋은 스펙이면 삼성의 반도체 라인에서 근무할 수 있을까?'

그러나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볼 질문이 하나 더 있다. '삼성의 반도체 라인에서 근무하는데 부족함이 없으려면 최고의 스펙을 지녀야 할까?' 아니다. 라고 답을 달고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반도체 라인에는 크게 두 부류의 인력이 존재한다. 엔지니어와 테크니션. 다른 여러 첨단 생산 집단도 이러한 두 부류의 인력구성을 가지고 있다. 엔지니어는 설계, 개발을 맡고 테크니션은 현장 기술자로 생산을 담당하는 인력으로 나뉜다.

엔지니어는 대졸 이상, 테크니션은 고졸 이상으로 나뉘어 선발되고, 대졸 이상의 연구직 중에서도 연구개발을 담당하려면 석박사 이상의 학력은 지녀야 하고 학사로 연구부서에 진입하면 경험이 상당히 쌓일 때까지는 석박사 출신 연구 인력들의 연구지원을 맡기도 한다.

엔지니어와 테크니션 사이의 구분은 너무도 깊어서 아무리 오래 직장생활을 해도 테크니션이 엔지니어 직무를 맡게 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도무지 현장에 익숙하지 못한 초임 과장에게 사수 형님만큼이나 친절하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 공정에 대한 '감'을 가진 테크니션들이 있었다.

교육을 하는 사람이 되고 보니 테크니션 분들 가운데서도 전공교육을 거쳐 좋은 엔지니어가 될 수 있는 몇몇 분들이 떠오른다. 반도체 라인의 테크니션은 대부분 여성이었는데, “이럴 때는 왜 이런 조건을 써요? 공부를 더 하면 잘 알게 될까요?” 묻는 분도 있었다.

다시 처음의 화두로 돌아가서 반도체 라인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 높은 학점과 영어 실력이 필요한가 하는 점인데, 회사생활을 오래하신 분들 가운데 입사 때 영어실력은 좋았지만 영어 자체에 대한 감각도 무디어 진 분들도 상당 수 있다. 정말 재미있는 것은 업무에 꼭 필요하지는 않아도 진급을 위해 계속 공부하시는 분들도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장비의 매뉴얼이 대부분 영문이고 작동 메뉴도 영어이니 영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맡은 직무를 더 잘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국내 반도체 제조회사는 세계적인 슈퍼 갑이기 때문에 을인 장비 공급회사에서 엔지니어를 파견하여 원하는 공정 수율이 나올 때까지, 엔지니어들이 장비에 익숙해질 때까지 개발과 교육을 감당한다. 영어 한 마디 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최첨단 장비들에 대한 완벽한 사용법을 익힐 수 있다.

그런데 왜 빼어난 영어성적이 대기업 입사의 기준이 되는 것일까? 불필요한 교육을 지탱하는 유일한 힘인 '불안감' 때문이다. '대기업 다니면서 영어도 못하면 어떡해' 라는 대의명분 앞에 압도되어 따로 학원에 다녀서 라도 영어성적이 좋아야 한다는 것은 '초등학교 들어가는데 덧셈 뺄셈도 못하면 어떡해' 걱정하며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는 불안감과 맞닿아 있다.

재수 동기 중에 서울대 기계공학과에 합격한 친구가 있다. 건담 만화책뿐만 아니라 자동차 쪽 일본어 책을 항상 끼고 다니고 일본어도 잘 해서 “야, 너 일본 좋아해?” 물었다. “응.”하면 비난을 하려 했던 의도도 마음 한 구석에 두고 물었을 것이다.

친구의 대답은 '로봇 건담이 좋다. 그래서 자꾸 건담 만화핵을 보다 보니 반복되는 조사들이 눈에 띄고 그 앞의 쉬운 한자들이 눈에 보이고 그게 궁금해서 일본 단어를 좀 찾아보는 것으로 시작해서 이제는 일본어 자동차 공학 책을 보는 것도 아무 느낌 없게 되었다.

그런데 피아트의 신차 크로마 터보 범퍼에 제노이라는 충격흡수 신소재가 들어갔는데 너 알아? 너 재료과 잖아.'로 카운터펀치를 맞은 기억이 있다.

토익 점수 높은 학생을 직원으로 뽑는 것보다 웬만한 토익 점수에 스페인어, 아랍어를 현지에 떨어뜨려도 밥 굶지 않을 정도로 구사하는 학생을 뽑는 것이 대기업의 생존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꼭 영어성적이 필요하다면 국가에서 모든 입시와 취업에 필요한 영어성적을 정하여 그 이상의 성적인 영어성적 증명을 제출하면 그 외의 선발기준으로 삼지 않도록 법제화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참고로 대부분의 대학원 입시에서 요구하는 영어성적은 TOEIC 750점, 졸업을 위한 종합시험 영어성적 기준은 TOEIC 800점 정도이다.

높은 영어점수를 향하여 폭주하는 한국사회를 만든 것은 대기업 커트라인이 영어성적으로 표현되는 현실도 일조했다.

같은 맥락으로 소재분야 전공의 전자기학이나 고체열역학을 대학 전공과목에서 없애자고 하면 아마도 가르치는 분이나 현업에 종사하시는 분들 모두 어떻게 그런 과목을 없앨 수 있냐고 하실 것이다.

그러나 졸업 후 은퇴할 때까지 단 한 번(혹은 한 번이나 두 번 정도 사용할 기회가 있을)도 사용하지 않는 지식을 힘들게 배우게 할 필요가 있는지 매 학기 고민하고 있다.

어떤 분야, 어떤 수식을 접하더라도 담담하게 풀어낼 수 있는 수학, 물리학, 화학 쪽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졸업 후 디지털 분야나 IT 분야에 적응해서 남다른 성취를 이루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앞서 로봇 설계에 미쳐서 기계공학을 좋아하다 보니 대학 입학할 시점에 일본어 원서를 줄줄 읽게 된 동기의 예에서 보듯 불안감과 상관없이 자기 분야에 빠져들었다가 자타가 공인하는 고수가 된 분들이 주변에 상당 수 있다.

한 때 몸담은 적 있는 소형가전회사 고졸 회장님, 삼성 쪽 그래핀 장비는 모두 제작하신 플라즈마 회사 대표님, 로봇을 만드는 동기와 후배, IT 백앤드 부분에서 삼성전자의 시스템을 만지시는 신학대 중퇴이신 팀장님…

스펙을 위해 영어공부를 하거나 쓰지 않을 지식을 억지로 배우려 하지 않으셨지만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실력을 가지게 된 분들에게서 판데믹 시대의 교육과 인력 개발의 방향을 배울 필요가 있다.

선생님들과 어린이들과 학부모님들 모두를 고문하듯 쥐어짜 이어지는 온라인 수업이 기존의 교과목 진도를 어떻게든 소화하여 학부모님과 선생님들, 교육 당국을 포함한 사회 전체의 불안감을 낮추는 자위가 되지 않게 하려면 말이다.

온라인 교육 방송 한 켠에 해당 방송과 등가의 지식을 전달해 주는 유튜브 영상 리스트도 솔직하게 선별하여 첨가하는 센스도 교육자와 학생들과 부모님들의 고통을 줄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 사이에서 소모되는 우리 아이들의 시간은 우리 모두의 미래를 담보할 가장 소중한 가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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