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윤완

▲ 김윤완 시인
이젠 우덜도 이유 없이 짓밟히며 죽어 살진 않을 꺼여
죽도록 짓이겨져도 찍소리 못하며 바보같이 살진 않을 꺼여
즈덜이 뭔데 무슨 권리로 우덜을 멋대로 짓뭉게고 학대했냐 이거여
이젠 우덜도 뚝심으로 일어나 더러운 구둣발을 때려눕히고
돌팍으로 짓이기던 그 사악한 손목쟁이도 꺾어치울거라 이거여
우덜도 일어나, 정의와 생존의 뿌리로 일어나
억센 질경이의 매운 맛을 보일 거다 이거여
비겁과 굴욕의 꺼풀을 벗고 장와 평등의 대명천지에서 마음껏 살꺼다 이거여
우덜도 우덜의 권리를 누리며
새봄의 푸른 이파릴 펄럭이며 펄럭이며 당당히 살꺼다 이거여


■출처 : '거대한 말뚝', 열린출판미디어(2004).

▲걸쭉한 사투리 입말이 당당하고 싱그럽다. 여기 어디에 엄살이나 가식이 끼어들 틈이 있으랴. 세련된 문어체 표준말을 구사하면서 위선과 허위를 밥 먹듯 하는 권력자들을 보고 살아야 하는 '우덜(우리들)'로서는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울화가 해소되는 것처럼 후련해진다. 밑바닥의 민초라고 눈코입귀가 없는가? 몸과 머리가 없는가? 배우고 가진 것은 없어도 알만한 건 다 알고, 느낄 건 다 느끼고, 생각할 건 다 생각한다. 무력해 보여도 생존을 위해서 본능적으로 발동하는 자체 생명력은 어느 화초보다 질기다. 권세를 지닌 '즈덜(저들)'에 의해서 아무리 짓밟혀도 끈질기게 견디며 더욱 푸르게 '일어나'는 여기 어디에 비굴과 오만이 자리하랴.

질경이는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한 무제 때 마무(馬武) 장군이 이끄는 전쟁터의 황야에서 많은 병사들이 굶주림과 갈증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그때 한 병사가 말들을 풀어 주었더니 이것을 뜯어 먹고 생기를 얻었다. 장군은 모든 병사들과 말들에게 이것을 먹이게 하였다. 그랬더니 모두가 병이 낫고 원기를 회복하였다. 마무장군은 이것을 전차(戰車)의 수레바퀴 앞에 깔린 풀이라 하여 차전초(車前草)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지천에 깔린 잡풀이 무력(武力)을 지닌 병사들과 병마들을 살리는 명약이 될 줄 누가 알았으랴.

전차와 우마차, 사람의 '구둣발'과 '돌팍'에 "이유없이 짓밟히며 죽도록 짓이겨져도" "뚝심으로 일어나"는 "억센 질경이의 매운 맛". 그 강인한 생명력은 오직 푸른 식물성 정신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구둣발'과 '돌팍'으로 대변되는 권력의 횡포에 "찍소리 못하며 바보같이 (죽어) 살진 않을 꺼", "때려눕히고 꺾어치울거"라는 저항의 목소리와 몸짓도 어디까지나 식물성이다. 새로운 난폭자가 되어 '구둣발'이나 무신경한 광물성 '돌팍'을 내지르려는 게 아니라, 언제까지나 푸르른 식물성 정신, 순수한 저항정신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의 발로이다. 그러한 질경이 정신이야말로 정신적 기갈과 질병에 시달리는 세상의 약초가 될 것이다.

'다시 질경이'다! 권력은 없어도 누구보다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민초들이 지켜보고 있다. 오직 푸르름으로 무장한 질경이들이 권력자들의 위선과 허위를 견제하며 꿈틀거리고 있다. '질경이 씨 기름으로 불을 켜라.' 눈이 맑은 질경이들이 "새봄의 푸른 이파릴 펄럭이며 펄럭이며" 일어나고 있다.

■김윤완(金潤琓, 호: 솔뫼)

△1939년 충남 청양 출생.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단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1959년 박종화·서정주의 추천으로 시집 '로타리 부근'을 발표하면서 등단.
△천안여자상업고등학교 교사 및 교감, 단국대학교 및 경기대학교 강사, 한국문인협회 및 한국예총 천안지부장, 국제PEN클럽 이사, 한국현대시인협회 지도위원 역임.
△한국문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한국농민문학회, 동국문학인회, 단국문인회 회원.
△예총예술문화공로상, 천안시민의 상, 충남문화상, 농민문학작가상, 흙의 문예상, 단국문학상 본상 등 수상, 녹조근정훈장 수훈.
△시집 : '노타리 부근' '암흑의 계보' '도시 71' '잿더미' '백발의 밤' '농토' '달아 달아 밝은 달아' '개미의 춤' '민들레야 그러나 민들레야' '참새는 날지 않는다' '벙어리새' '토박이새' '우화공화국의 눈물' '거대한 말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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