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욱신 정치부 기자.
[일간투데이 이욱신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취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자본에게는 최소비용 투입에 의한 최대산출을, 소비자에게는 전 세계에서 가장 싸고 우수한 제품을 제공한다는 세계화의 복음이 바이러스 앞에서 무력함을 보인 순간 글로벌 공급망은 엉클어졌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각국이 취한 강경 봉쇄조치(Lockdown)는 경기의 급락을 몰고 와 갈수록 심화되던 양극화로 고통 받던 저소득계층을 더욱 더 곤궁한 위치로 밀어 넣고 있다.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인종차별이라는 수백년 고질이 다시 터져 나오면서 국가 전체가 한바탕 몸살을 앓고 있다.

이 위기 국면을 어떻게 헤쳐 나가느냐에 따라서 짧게는 수십년 길게는 수백년 인류의 운명을 결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누구는 예수 탄생을 기점으로 서력(西曆) 기원이 나눠지듯이 2020년을 인류의 새로운 시작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BC(Before Corona·코로나 이전)'과 'AD(After Disease·질병 이후)'로 나눠서 세상에 대한 이해, 사회 시스템 전반에 대한 재정비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전쟁이나 혁명, 대공황 같은 정치·사회·경제적 대격변이 발생하면 국가 시스템에 총체적인 재점검이 이뤄지며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행정학자 킹던(J. Kingdon)은 이를 '다중흐름모형'으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사회에는 다양한 '문제의 흐름'이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의 흐름'이 있는데 정치·사회·경제적 격변을 맞아 이들이 '정치의 흐름'과 만나 한 묶음이 되면 '정책의 창'이 열리면서 새로운 정책이 구현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평시에는 시행되지 못할 정책이 실행되면서 역사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다는 분석이다.

우리는 올 상반기 얼마 안 되는 기간 동안 적잖은 정책실험을 하며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을 살필 수 있었다. 대표적인 게 소득에 상관없이 전 국민에게 지급된 재난지원금이다. 비록 코로나19 사태로 급속히 악화되는 서민경제 회복이라는 당면 과제 해결을 위해 임시방편적으로 시행됐지만 4차산업혁명시대를 대비한 기본소득 논의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성과다.

하지만 최근 감염병 관리와 신속 대응을 위해 현 질병관리본부를 외청으로 승격·독립시키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보건복지부가 되레 자신의 권한을 확대하려 시도한 사례에서처럼 신속한 코로나대응이라는 명분에 정부 시스템 개편이 졸속(拙速)으로 이뤄져선 안 될 것이다. 집은 애초에 지을 때 잘 지어야지 잘못 짓고서 수선하려면 비용과 시간이 훨씬 많이 드는 법이다. 바쁠수록 천천히, 꼼꼼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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