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보면 전쟁이나 혁명, 대공황 같은 정치·사회·경제적 대격변이 발생하면 국가 시스템에 총체적인 재점검이 이뤄지며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행정학자 킹던(J. Kingdon)은 이를 '다중흐름모형'으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사회에는 다양한 '문제의 흐름'이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의 흐름'이 있는데 정치·사회·경제적 격변을 맞아 이들이 '정치의 흐름'과 만나 한 묶음이 되면 '정책의 창'이 열리면서 새로운 정책이 구현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평시에는 시행되지 못할 정책이 실행되면서 역사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다는 분석이다.
우리는 올 상반기 얼마 안 되는 기간 동안 적잖은 정책실험을 하며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을 살필 수 있었다. 대표적인 게 소득에 상관없이 전 국민에게 지급된 재난지원금이다. 비록 코로나19 사태로 급속히 악화되는 서민경제 회복이라는 당면 과제 해결을 위해 임시방편적으로 시행됐지만 4차산업혁명시대를 대비한 기본소득 논의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성과다.
하지만 최근 감염병 관리와 신속 대응을 위해 현 질병관리본부를 외청으로 승격·독립시키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보건복지부가 되레 자신의 권한을 확대하려 시도한 사례에서처럼 신속한 코로나대응이라는 명분에 정부 시스템 개편이 졸속(拙速)으로 이뤄져선 안 될 것이다. 집은 애초에 지을 때 잘 지어야지 잘못 짓고서 수선하려면 비용과 시간이 훨씬 많이 드는 법이다. 바쁠수록 천천히, 꼼꼼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이욱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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