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길을 알고 가자- 오늘의 길, 내일의 길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우거진 길 사이로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가면 뿌연 흙먼지가 일곤 했던 길······.

어릴 적 보았던 신작로의 모습은 지금 생각하면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길이었으나 당시엔 미지의 세계로 연결해 줄 것만 같은 큰 길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추억의 책갈피에서나 만날 수 있는 이런 길을 눈앞에서 본적이 있다.

1995년 3월, 나진 선봉으로 향하는 북한 방문길에서였다. 어디를 가더라도 신발장수 눈에는 신발만 보이고, 옷장수 눈에는 옷만 보이는 법이다. 명색이 도로 만드는 일에 30여년을 몸담아 왔으니 북한에 가서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도로였다.

물론 평양 같은 대도시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소도시라고 하는데, 도로 사정은 너무나 초라했다. 그나마 그 길위를 달리는 건 자동차도 아니었다. 물론 가끔씩 자동차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가기도 하지만 주로 볼 수 있는 건 목탄차였다. 연통에서 연기가 ‘폭폭’ 나는 목탄 트럭들을 봤을땐 솔직히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다음에 많은 것이 소가 끄는 달구지, 그 다음은 자전거였다.

북한의 도로사정은 매우 열악했다. 북한에서는 도로 대신 철도가 운송체계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화물수송의 90%, 여객수송의 62%를 철도가 맡고 있었다.

북한의 도로는 철도의 보조수단이었다. 화물의 7%, 여객운송의 37%를 담당하고 있는 게 고작이었다. 평양을 중심으로 6개의 고속도로와 34개의국도, 44개의 지방도로가 건설되어 있었다. 이런 길들은 중국과는 6군데 지점에서, 러시아와는 1군데 지점에서 연결되고 있었다.

고속도로가 개통된 건 1978년으로 평양에서 원산, 평양에서 남포, 평양에서 순안 등 소구간들이 건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양에서 개성 구간을 제외하고는 고속도로에 대부분 중앙분리대가 없는 4차선 포장도로이며, 우리나라의 국도 수준이었다. 주행속도는 시속 50Km이내라고 하니, 고속도로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였다.

고속도로는 38.9%가 아스팔트 포장이며 그 외는 콘크리트 포장이었다. 하지만 일반 도로는 자갈과 모래로 된 비포장 길이 대부분이었다. 평양을 중심으로 일부 간선도로와 평양에서 개성, 청진에서 나진 등의 주요 구간에만 포장이 돼있는 실정이었다.

이렇게 북한의 도로사정이 형편없는 원인은 두말할 것도 없이 경제사정이 좋지 못해서다. 다른 원인을 꼽는 다면 지형상 도로개발이 곤란하다는 점도 들 수 있다. 또한 중화학공업 위주의 산업구조에서는 운송 면에서 도로보다 철도가 더 효율적이다. 따라서 도로는 지역의 연결수단으로 30Km이내 단거리 운송을 원칙으로 하고, 철도와 내륙수로가 없는 지역에 한해 장거리 운송을 담당하고 있다.

북한엔 우리처럽 자동차가 많지는 않지만 과속이나 차선위반, 음주운전등 교통법규를 위반했을 때는 우리처럼 철저하게 처벌한다. 단속에 적발되면 면허를 정지당하거나 차량을 몰수당하기도 한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음주운전뿐 아니라 흡연운전도 금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북한 경제수준의 차이만큼이나 도로사정도 큰 차이가 있지만 남북한 통합과 나아가 통일을 위해서는 남북의 길을 잇는 것이 급선무다. 도로야말로 한 나라의 기간시설이며 가장 중요한 인프라이고 보면 끊어진 길을 잇는 건 상징적인 의미로써뿐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도 미룰수 없는 일이다.

현재 남북한의 도로망은 질적 양적인 측면에서는 수준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기본적인 골격은 통합 가능한 형태이다.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예를 들어 남한은 장기적으로 남북 7개 축, 동서 9개 축의 격자형 간선도로망을 건설할 계획이고 북한은 서해안의 개성-신의주, 동해안의 원산 (고성)-나진· 선봉, 그리고 이를 연결하는 평양-원산 고속도로 등 H자 형태의 간선도로망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북한지역의 남북 2개 축과 남한의 남북 7개 축은 쉽게 연결될 수 있는 형태다. 이번에 연결되는 경의선은 이가운데 중요한 시범사업이면서 동시에 남북한 수도를 연결한다는 의미도 갖고있다.

앞으로 한반도 전체의 통합된 도로망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 사업이 추진돼야 한다. 남북한 단절 도로망의 지속적인 연결과 북한지역에 체계적인 도로망의 건설, 그리고 남북통합 도로망이 대륙으로 연결되는 아시안하이웨이, 즉 대륙고속화도로와의 연결이 필수적이다.

현재 남북간에는 6개의 단절된 국도와 앞서 언급한 7개의 남북 방향 간선도로망이 있다. 이들 도로망을 단절시키지 않고 연속적으로 북한으로 연결하여 남북 방향의 통합간선도로망을 구축해야 한다. 동시에 북한지역의 부족한 동서 방향 연결도로망의 확충도 시급하다.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통합 간선망은 북한 지역 동서 연결노선의 확충과 남한의 남북 방향 도로망의 북쪽으로의 연장으로, 격자형을 이루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도로망은 앞으로 우리가 표방하는 ‘개방형 통합국토축의 구성’ 과 맥을 같이하게 된다. 특히 이번에 건설되는 경의선은 전통적으로 한반도의 남북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간선도로다.

시대에 따라 때로는 문명개화로로, 교역로로서의 역할을 했던 이 길은 앞으로 서울과 평양을 연결하는 남북화해의 상징으로, 훗날엔 통일도로로 제 역할을 해낼 것이다. 다행히 현재 문산-개성을 연결하는 1번 국도와 통일전망대- 금강산을 연결하는 7번 국도가 연결돼 왕래가 시작되었다.

경부고속도로가 개성- 평양- 안주 고속도로와 연결되고, 안주- 신의주구간이 중국의 심양, 베이징과 연결되는 날이 그리 멀지만은 않았다. 또한 이러한 구도는 아시안하이웨이의 동북지역 네트워크의 골격이 된다.

서로 단절된 공간을 다리로 잇듯, 이제 우리는 남과북, 끊어진 공간을 잇는다. 아리고 설운 정을 잇는다. 오랜 세월의 나이테에도 끊어지지 않은, 아니 결코 끊어질 수 없는 인연을 잇는다.

 

글 : 남인희 前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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