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 “정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다”

▲ 22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서 보안검색 노동자 정규직화 관련 브리핑을 마친 구본환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브리핑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로 이동하던 중 직원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일간투데이 한지연 기자] ‘꿈의 직장’으로 불리는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발표에 취준생과 기존 정규직 사이에서 ‘이게 공정한 나라냐’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일명 ‘인국공 사태’로 불리는 이번 논란은 지난 22일 인천공항은 비정규직 보안검색요원 1,902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발표에서부터 시작됐다.

기존 인천공항 정규직 근로자는 1,400여 명이었으나, 해당 정책으로 인해 지금까지 약 1만 명에 달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0)` 정책의 일환으로, 지난 2017년 문 대통령이 인천공항을 방문한 후 제1호 사업지로 선정된 바 있다.

공기업 중 최상위 NCS 합격선을 형성하는 인천국제공항은 “대졸자 공채 사무 직렬 기준 ‘토익 만점’을 받아도 겨우 서류만 통과될 정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입사 경쟁이 치열한데, ‘알바천국’ 등을 통해 보안요원으로 일하던 비정규직들이 최소한의 경쟁도 없이 한순간에 정규직 전환이 되어 입사를 희망하며 노력하던 취준생들에게 박탈감을 심어준 꼴이 된 것.

‘인국공 사태’로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매일 허벅지 찔러가면서 14시간씩 전공 공부를 했다. 근데 열심히 노력했던 내가 호구가 됐다. 이게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에 살기 싫어졌다”, “진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다” 등 불만을 표출하는 취준생과 기존 정규직들의 게시글이 끝없이 올라오고 있다.

사진=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반대 청원글. 25일 오후 12시 기준 22만 명 이상이 청원에 동의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쳐>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화 그만해주십시오’라는 글이 등장했다. 청원인은 “사무 직렬의 경우 토익 만점에 가까워야 고작 서류를 통과할 수 있는 회사에서, 비슷한 스펙을 갖기는커녕 시험도 없이 그냥 다 전환이 공평한 것인가 의문이 든다”며 “노력하는 이들의 자리를 뺏게 해주는 게 평등입니까?”라고 역차별 현실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해당 청원 글은 25일 12시 기준 22만 명 이상이 동의한 상태이다.

또한, 인천공항 직원들의 ‘단톡방’ 내용도 논란을 가중시켰다. 입장 시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카톡방들에는 이번 정규직 전환 대상자들이 “벤츠를 뽑아야겠다”, “서연고 나와서 뭐하냐, 나는 190만 원 벌다가 정규직 간다”는 대화를 하며,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 이들에게는 “공부는 니네 선택”, “누가 하래?” 등 조롱하는 말들까지 오갔다. 특히 “또 투쟁해서 사무직 자리까지 받자”는 등의 내용으로 누리꾼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사진=유출된 '인천공항 근무직원'들의 오픈카톡방. 정규직 전환 대상이 된 비정규직들이 정규직 전환에 대해 대화 중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논란이 커지자 인천공항공사와 정부에서는 인터넷에 떠도는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인천공항공사는 지난 22일 기자회견을 통해 알바생은 정규직이 될 수 없다. 보안검색 요원은 2개월간의 교육을 수료하고 국토교통부 인증평가를 통과해야 하는 등 단독 근무를 위해서는 1년 이상의 시간 소요되어 알바생이 보안검색 요원이 될 수는 없다“면서 ‘알바’ 논란을 해명했다.

정규직 전환 시 연봉이 5000만 원이라는 내용에 대해서도 ”현재 보안검색 요원의 평균 임금은 약 3850만 원 수준이며, 정규직 전환 시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일축했다.

카톡방 논란과 관련해 김원형 인천공항 보안검색노조 위원장은 25일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보안검색 노동자들은 취준생들이 원하는 공사 일반직으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고 별도 직군으로 전환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카톡방 캡쳐본은 ‘가짜뉴스’라며 “변호사를 통해 수사 의뢰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청와대의 답변 또한 비슷했다. 황덕순 청와대 일자리수석은 25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현재 공사에 취업을 준비하는 분들의 일자리와는 관련이 없다"며 "비정규직 보안검색직원의 일자리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누리꾼들의 비판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고, 정치권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2017년 문 대통령의 취임사 중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며 ‘공정성’을 추구하면서 이번 정규직 전환이 공정하지 않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정의당은 “인천공항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 모두가 거칠게 항의하고 있고 경영계는 날마다 정규직 전환이 청년의 취업 기회를 박탈한다며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며 "정부의 무원칙과 공사의 졸속 처리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끊이지 않은 논란 속에 하태경 미래통합당 의원은 지난 24일 자신의 SNS에 가칭 ‘로또취업방지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사진=하태경 의원과 하 의원의 '로또취업방지법' 발의 <연합뉴스/하 의원 SNS 캡쳐>

하 의원은 “(이번 정규직 전환이) 대한민국의 공정 기둥을 무너뜨렸습니다. 노력하는 청년 가슴에 대못을 박았습니다”라 말하며 “이 법은 청년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취업 공정성 훼손 막기 위함입니다”라고 입법 취지를 밝혔다.

이어 “인천공항은 자신의 잘못 겸허히 인정하고 로또 정규직 철회해야 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청년들에게 사과해야 합니다”는 발언으로 비정규직의 정규화를 강하게 비판하며 글을 마쳤다.

한편, 2016년까지는 정규직 전환자는 거의 없었으나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비율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25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인 알리오에 따르면 2017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공공기관 363개에서 9만1천303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올해 1분기 동안에는 8천 960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된 것으로 파악됐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가장 많이 전환된 기관은 한국전력공사로, 지난 3년여간 8천237명에 달했다. 그다음으로는 한국도로공사 6천959명, 한국철도공사 6163명 등이다. 이번에 논란이 된 인천국제공사는 4천810명으로 4위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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