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잘못이 없다는 건 모두의 잘못"

▲ 지난 7일 오전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제9회 정보보호의 날 기념 금융회사 최고경영자 초청 세미나'에서 기조연설을 하며 웃고 있는 은성수 금융위원장(사진=연합뉴스)

[일간투데이 장석진 기자] 최근 각종 사모펀드 사태 감독 책임을 둘러싸고 감독당국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더군다나 상위기관인 금융위와 이행기관인 금감원 사이에 책임전가에 따른 불협화음도 거세지고 있다.

10일, 금융투자업계가 사모펀드 관련 잡음으로 내홍을 겪고 있다. 전년 라임자산운용 사태를 시작으로 일회성인줄만 알았던 각종 사모펀드 스캔들이 붉어지며 이제 환매 중단된 피해액만 줄잡아 3조 이상으로 불어나 우려를 키우고 있다.

“호주, 독일, 이태리, 영국, 이젠 홍콩까지 이야기가 나오니 사모펀드 사태가 아주 글로벌합니다.”

10일 기자와 만난 한 사모펀드 가입 피해자가 늘어놓은 환매중단 사모펀드의 투자국가를 들어보니 “글로벌하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님을 실감케 한다.

예상밖의 기업 2분기 실적 호조와 코로나19 수혜주들의 선전으로 분위기가 좋은 주식시장과는 달리 각 증권사는 사모펀드발 환매중단 사태로 말 그대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한 판매사당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사모펀드 환매중단 이슈에 연관돼 있는 실정이다.

자본시장연구원 소속 한 연구원은 “사모펀드 이슈가 딱 한 주체의 잘못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며 ‘모두책임론’을 제시했다.

그는 “시작은 금융위가 2015년 사모펀드 활성화를 위해 운용사 설립을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꾸고, 가입자의 최저가입 금액을 1억원으로 낮춘 것에서 시작했다”며 “판매사들은 전통적인 브로커리지 수입 감소에 공모펀드시장 정체로 수수료 수입이 줄자 새로운 시장 창출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연히 확대된 시장의 불완전판매와 점차 글로벌해지고 복잡해지는 운용자산의 실사가 어려워졌는데 감독당국의 관리감독에는 한계가 있다 보니, 이제는 자산 보관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수탁회사에게 약관대로 운용되는지 관리안하고 뭐했냐며 불똥이 튀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대기업 중심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해 제1금융권과 2금융권으로 나눌 만큼 상업은행(Commercial Bank)의 규모와 역할이 컸던 우리나라 금융시장에서 금리 하락과 함께 예대마진으로만 먹고살기 힘들어졌다.

독립계 증권사 몇 곳을 빼곤 대형 증권사를 자회사로 둔 금융그룹들은 비이자수익 증대라는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 기존의 은행 고객들을 투자의 영역으로 이전시킬 필요가 있었고, 그 역할을 자회사인 증권사와 운용사들이 충실해 이행해왔다. IB가 주요 증권사들의 수익원으로 자리잡는 듯 했던 작년까지는 이런 계획이 원안대로 이행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라임자산운용 사태를 시작으로 최근 옵티머스 사태에 이르기까지 결국엔 투자의 전문성이 부족한 개인들에게 전문 투자 영역에 발을 들이도록 문턱을 낮춘 것 자체가 불행의 시작이었다. 판매사 입장에서는 약관과 투자설명서대로 운용사가 운용할 것이라고 믿을 뿐이지만, 얼마 되지 않는 자본금에 해외MBA 나온 운용역 몇 명이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들이 무슨 자산에 어떻게 투자하는지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정부의 고위공직자 다주택 매각 지시도 제일 먼저 따를 만큼 리스크관리에 철저한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전월 23일 코엑스에서 사모펀드 전수검사를 금감원과 협의중이라는 말을 흘리며 금감원 관계자들의 화에 기름을 부었다.

금감원 입장에서는 사모펀드 활성화 명목으로 판을 키워 놓고 관리감독 부실로 인해 사태가 커졌으니 감독원이 더 뛰어야 한다는 뉘앙스로 받아들여 공개 성토에 나서는 모양세다.

“모두가 책임이 없다면 모두가 책임이 있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다만 지금 구조에선 직접 고객과 대면하고 실질적인 피해구제능력이 있는 판매사가 책임을 지라는 말 같습니다.”

사모펀드 환매 중단에 따라 투자자들과 소송전을 치르고 있는 한 판매사 담당자의 말이다. 불완전 판매 이슈가 제기되는 판매사 직원으로서 미안한 마음이 있지만 모든 책임을 선제적으로 지라는 식의 감독 당국 태도에 섭섭하다는 입장이다.

한 증권사 리스크관리 본부장은 “만약 우리나라 감독 시스템이 확대된 현 기준대로 사모펀드를 운영할 역량이 안된다면 다시 예전의 기준으로 돌아가는 것을 검토해야할 것”이라며 “막연한 욕심에 시장만 키워놨다 투자자 신뢰를 잃어버리면 투자자와 금융시장, 감독당국 모두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