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역대급' 증가…부동산·주식 가격 들썩들썩
이주열 총재, "코로나19 대응 완화기조…'생산적 투자처' 마련돼야"

▲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간투데이 이욱신 기자] '0% 금리' 등의 영향으로 시중에 '역대급'으로 돈(유동성)이 풀리면서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들썩이자 통화당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부동산과 주식 시장 가격안정을 위해 과도한 유동성 증가 속도를 제어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완화기조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견해가 맞서고 있다.

2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5월 광의의 통화량(M2 기준)은 3053조9000억원으로, 지난 4월(3018조6000억원) 사상 처음 3000조원을 넘어선 뒤에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넓은 의미의 통화량 지표 M2에는 현금과 요구불예금, 수시입출금식 예금(이상 M1) 외 MMF(머니마켓펀드)·2년 미만 정기예적금·수익증권·CD(양도성예금증서)·RP(환매조건부채권)·2년 미만 금융채·2년 미만 금전신탁 등 곧바로 현금화할 수 있는 단기 금융상품이 포함된다.

통화량 증가 속도도 예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수준이다. 5월에만 M2는 4월보다 35조4000억원(1.2%) 늘었는데 이는 1986년 월별 증가액 통계가 작성된 이후 최대 규모다. 통계 이전 전체 통화량 수준이 지금과 비교해 매우 낮은 사실을 고려하면 사실상 지난 5월 통화량이 월간 기준으로 가장 많이 불어난 셈이다.

이처럼 풍부한 유동성 중 상당 부분은 부동산과 관련이 있다. 대표적 사례가 부동산 관련 자금인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하는 현상이다. 한국은행 가계신용 통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전체 가계대출(모든 금융기관) 잔액은 1521조6969억원으로 한국 경제 역사상 가장 많았다. 같은 시점의 주택담보대출 잔액(858조1196억원) 역시 최대 기록이다.

특히 올 들어 가계대출과 주택담보대출 증가 속도는 '역대급'으로 더 빨라졌다. 한은 금융시장 동향 자료를 보면 은행권만 따져도 올해 들어 상반기에만 가계 대출이 40조6000억원 불었다. 이미 2019년과 2018년 한해 가계 대출 증가액(동일액 60조8000억원)의 67% 수준에 이르렀다.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역시 올해 1∼6월 32조2000억원이나 급증했다. 같은 기간 늘어난 전체 가계 대출의 79%가 주택담보대출인 셈이다. 올해 6개월간 증가액(32조2000억원)은 일찌감치 2019년 연간 증가액(45조7000억원)의 70%를 넘어섰고 2018년 증가액(37조9000억원)에 육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서 두 해 역시 부동산 투자 열기가 올해 못지않게 뜨거웠던 점, 지금까지 증가 추세 등으로 미뤄 올해 가계 대출이나 주택담보대출 증가폭은 역대 최대 기록을 경신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증시 주변에도 어느 때보다 많은 돈이 몰리고 있다. 한은 '증시주변자금 동향' 통계를 보면 우선 6월 기준 투자자예탁금은 46조1819억원으로 1999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많았다. 1999년 이전 우리나라 증시, 통화량 규모 등을 고려할 때 사실상 역대 최대 기록이다. 같은 시점의 신용융자 잔고도 12조6604억원으로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만큼 주식 투자를 위한 빚이 늘어났다는 뜻으로, 지난 10일에는 마침내 신용융자 잔고가 13조원도 넘어섰다.

이처럼 풍부한 시중 유동성이 부동산과 주식 등으로 빠르게 흘러들어 '자산 가격 거품' 논란까지 일고 있지만 한은은 현재 이 문제를 고려해 통화정책 기조를 바꿀 시점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금은 코로나19에 대응해 통화정책을 완화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부동산 시장 불안에 대해서는 정부가 거시 건전성 정책, 수급 대책 등 다양한 수단으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무엇보다 풍부한 유동성이 자산시장으로 쏠리지 않고 보다 생산적 부문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생산적 투자처'를 만들어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정부에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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