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메이지 유신 이후 '신불분리' 통해 '신도' 독자성 강화
'호국영령' 현창 통해 천황 중심 국가주의 종교 문화 제도화

▲ 1934년 4월 야스쿠니신사 임시대제에 참배한 쇼와(昭和·히로히토)천황과 그 일행의 모습. 천황도 신사에 참배해 희생자를 위로하지만 논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그런 행위와 제사 대상의 정점에는 결국 천황이 있다. 사진=야스쿠니신사임시대제위원회(靖國神社臨時大祭委員會) 편, '야스쿠니신사임시대제기념사진첩(靖國神社臨時大祭記念寫眞帖)'(위키피디아에서 재인용).

[일간투데이 이찬수 보훈교육연구원장] 일본인 대다수는 특정 종교 단체에 속하는 종교생활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스스로 종교와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무종교'라는 말이 익숙하다. 하지만 심층으로 들어가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신도(神道)', 특히 메이지 시대 이래 국가주의적 이념과 뒤섞인 신도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문화화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정 '종교 단체'에 속해있지 않을 뿐 일본인 상당수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종교적' 행동을 할 때가 많다. 이 부분을 이해해야 일본의 심층이 이해되고 꼬인 한일 관계를 풀 수 있는 단초도 마련된다. 지난 호에 간단히 말한 일본의 '정치적 종교' 혹은 '종교적 정치'에 대해 좀 더 풀어보자.

메이지 정부는 서양 문명은 받아들이되 일본적 정신은 지키고 싶어 했다. 이른바 '화혼양재'(和魂洋材)를 모토로 삼았다. 정책적 차원에서는 메이지 천황의 정당성을 확보하면서 종교[信敎]의 자유에 대한 서양적 요구를 수용해내는 데 국가 운영의 목표를 두었다.

이를 위해 민중적 전령 신앙 전통인 신도(神道)를 국민 통합 정책의 근간으로 삼았다. 신도는 일종의 문화이자 습속이기에 국가적 정책의 근간으로 삼는다 해도 불교나 기독교 같은 제도화된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렇게 '종교의 자유'라는 당시의 요구에 부응했다.

그때까지 신도는 독자적인 종교체계가 아니었다. 불교와 거의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습합되어 있었다. 그러자 신도를 일본 문화와 사상의 원형으로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신도에 덧붙여진 불교 등 이른바 '종교'를 강제로 떼어낸 뒤 신도가 일본적 문화·습속·역사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부각시켰다. 불교가 도입된 이래 '습합되어왔던 신도와 불교[神佛習合]'를 '분리시키는 정책[神佛分離]'으로 신도의 독자성을 강화했다.

죽은 이의 혼령이 원령(怨靈·악한 기운)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거나 원령은 잘 모셔서 신적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행위가 민중적 신도의 공양법이었는데 이것을 전쟁으로 희생당한 혼령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제사로 확장시켰다. 그 정점에는 천황이 있었다. 천황은 제사의 최종적 대상이었다.

이렇게 천황을 정점으로 국가의 정신적 통일을 도모하면서 천황은 사실상 신적 영역으로 격상되었다. 그러한 천황을 권력의 정점으로 삼으면서 서양식 정교 분리형 근대 국가를 추구하고자 했다. 신도는 불교나 기독교 같은 하나의 '종교'가 아니라 문화화한 '제사'라고 주장하면서 형식적으로는 정교분리 정책을 추구하고 실상은 신도 중심의 전근대적 정교일치 국가를 구축하게 된 것이다.

이를 위해 요청되었던 개념이 지난번에 본대로 '호국영령'(護國英靈)이다. '나라를 지키다 죽은 꽃다운 영혼들'은 메이지 유신 전후 혼란기에 희생당한 이들에 국가적 이념을 불어넣어 제사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국민의 호국적(護國的) 자세를 고취시키기 위한 전략적 언어였다.

일개 사병이라도 나라를 위해 죽었다고 간주되면 그 영혼을 신적 차원으로 현양시켜 유족의 불만을 달래고 군대에 대한 자긍심을 부추겨 병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했다. 최종 목적은 제사의 범주를 호국영령의 정점에 있는 천황으로까지 확장시켜 결국은 전 국민으로 하여금 메이지 천황을 숭배하도록 하는 데 있었다.

호국영령에 대한 제사는 사자(死者)를 원령(怨靈)이 아니라 국가의 수호신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메이지 정부의 '종교적 정치' 행위였던 것이다. 호국영령에 대한 제사는 혼령 현창 문화와 일본식 원호(援護)제도의 근간이었다.

이러한 메이지 정부의 '종교적 정치'는 성공했다. 오늘까지도 상당수 일본인이 신도에 담긴 국가주의적 의도를 의식하지 못한 채 야스쿠니신사 등 정치화한 신사를 자연스럽게 참배하고 있는 중이다. 자연스럽다는 점에서는 '제사의 문화화' 혹은 '문화화한 정치'라고도 할 수 있다. '무종교'이기는커녕 상당수 일본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치적 종교' 행위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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