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아베처럼 '반한' 정서 기반…대한 정책, 안 바뀔 듯
일본회의, 자민당 정권에 물적·정신적 동력 제공

▲ 2017년 11월 27일 열린 '일본회의 설립 20주년 기념대회'에 참석한 전국 대표자 2000명이 '자랑스러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헌법 개정을 실현하기로 결의'하고 있다. 사진=일본회의 홈페이지 캡쳐.
[일간투데이 이찬수 보훈교육연구원장] 일본의 우익은 대체로 '반한'(反韓) 혹은 '혐한'(嫌韓) 정서를 지니고 있다. 도쿄의 한인 밀집 지역인 신오쿠보 거리에서는 '조선인은 일본을 떠나라'는, 일본 극우단체의 험악한 목소리가 종종 들려온다. 일본의 우익 정치인도 비슷한 정서를 지닌다. 정무적 감각·외교적 파장 때문에 노골적인 표현을 하지 않을 따름이다.

이와 비슷한 정서를 가지던 일본의 총리가 7년 8개월 만에 바뀌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물러나고 같은 자민당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를 정점으로 하는 새 내각이 들어섰다. 아베도 대단히 우익적인 인물이지만 스가도 그 못지않게 우익적이다. 한국에 대한 반감도 크다. 새 총리가 들어섰어도 대 한국 정책이 별로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물론 반한 감정은 아베나 스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의 우익이 반한 정서를 지니는 것은 일본 역사와 문화의 필연적인 산물이다. 한국에 반일 세력이 많은 것과 동전의 양면 관계라고도 할 수 있다.

'일본은 가해자이고 한국은 피해자'라는 도식은 주로 한국에서만 통할 뿐 일본 보수 정치인에게 한국은 일본의 영향력을 세계로 확장시키는 데 걸림돌과 같다. 이것은 다시 반한 정서를 정당화시키는 근거가 된다.

스가 내각에도 지난호에 본 것과 같은 '제사의 정치학'적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런데 한국은 이에 입각한 군국주의의 피해를 그 어디보다도 많이 받은 나라다 보니 한국인은 군국주의의 그림자만으로도 옛 트라우마를 저절로 떠올린다.

문제는 대다수 일본인이 이웃국가의 상처를 별로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서 발생한다. 특히 일본의 우익에게 군국주의는 메이지 시대 이래 국가화한 제사문화와 그에 따른 군국주의적 팽창이 무의식적으로 체화되어 있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설령 군국주의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일본인 대다수는 의식하지 못한 채 문화화한 종교적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과 연결된다.

일본의 보수는 문화화한 종교적 정서를 근저에서부터 구체화시키고 있는 흐름이다. 특히 정치적 우익은 그 정서를 의식적으로 체화시키고 있는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치적 흐름을 아래로부터 좌우하고 있는 대표적인 세력이 '일본회의'(日本會議)다. 지금까지의 자민당 정권에 물적·정신적 동력을 제공해온 일본 우익 정치의 막후 세력이다.

일본회의는 1960년대 '생장의 집 정치연합' 출신들과 메이지신궁, 도미오카하치만궁 같은 거대 신사의 신관에 기원을 둔다. 이들이 결합해 '일본을 지키는 모임'을 만들었는데 이 모임의 근간이 일본의 신종교인 '생장의 집'(生長の家)이다.

생장의 집은 다니구치 마사하루(谷口雅春, 1893-1985)가 불교철학의 근간인 유식(唯識)사상에 기독교·이슬람 등의 세계관과 심리학까지 결합시켜 형성한 신종교이다. 모든 종교는 결국 하나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으며 한때 신자가 2·300만명에 달하기도 했다. 이 단체의 목적은 헌법을 개정해 천황제를 과거의 수준으로 부활시키고 국방을 강화하며 애국주의와 전통적 가족관에 따른 교육을 촉진하는 것이다. 대단히 일본 중심적인 지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생장의 집 정치연합'이 현행 헌법의 개정과 일본의 핵무장을 요구하는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 등 비슷한 우익단체와 결합하면서 1997년도에 좀 더 큰 조직으로 발전했는데 그것이 일본 최대의 우익단체인 일본회의이다. 일본회의는 외형상으로는 4만여명 회원들의 회비로 움직이지만 일본적 정신의 기원인 이세신궁이나 군국주의의 정신적 근간인 야스쿠니신사 같은 거대 신사들의 자금도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일본회의는 극우적이라 할 수 있을 정치 행보를 보인다. 분단과 전쟁의 경험을 깊이 한 한국 보수 개신교인들이 신앙과 정치적 반공주의를 거의 동일시하다시피 하는 것과 비슷한 구도이다. 전광훈으로 대변되는 극우 기독교인과 그를 후원하는 세력이 주로 보수 종교인(개신교)이듯이 일본회의의 기초에도 종교적 세계관이 놓여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목적에 부합하는 국회의원 후보들 중 당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옛 '제사의 정치학'적 군국주의의 부활을 꿈꾼다.

아베 신조 전 총리나 아소 다로 부총리 등이 그 산하 단체인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의 고문이다. 이 간담회는 일본 회의에 협력하기 위한 국회의원 모임으로서, 2019년 9월에 출범한 아베정권 제4차 내각의 각료 20명 가운데 15명이 이 간담회의 회원이었다. 스가 내각에서는 14명이 간담회 회원이다. 새 총리가 들어서고 나서도 거의 달라진 것이 없다는 뜻이다. 일본의 정치는 상당부분 일본회의의 지원을 받아서 국회의원이 되고 자민당도 돌아가기에 우익 정치가들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다.

일본 현 내각의 기본 정서도 그렇거니와 많은 국회의원들이 일본회의의 지원을 받아 당선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일본은 여전히 '종교적 정치' 시스템이 지배하고 있는 나라이다. 자민당과 연립여당을 구성하고 있는 공명당이 불교계 신종교인 창가학회(創價學會)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졌다는 데서도 비슷한 종교-정치의 역학 관계를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종교적 정치'의 정서는 아베 총리가 현직에 있을 때도 한국이나 중국 등 주변국의 비판과 반대를 무릅쓰고 야스쿠니신사 등을 참배하는 데서 잘 읽을 수 있다. 아베가 어쩔 수 없이 총리직에서 물러나자마자 했던 것도 야스쿠니신사 참배이다.

자민당 중심의 일본 정치권은 침략 전쟁에 대한 가해자 의식이 없이 메이지 시대 이래의 종교화한 군국주의적 정서를 가지고 국내적 통합에 골몰하고 있다는 뜻이다. 가해자 의식은 별로 없이 물리적, 특히 군사적 영향력의 확대를 도모함으로써 옛 영화의 부활을 꿈꾸고 있는 증거인 것이다.

이렇게 오늘의 우익 세력에게는 제사 문화를 통해 통합되어왔던 과거 일본 사회를 정치적 차원에서 더 강력하게 지속해가려는 열망이 있다. 물론 이 때의 종교는 불교와 기독교 같은 제도종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인 다수가 의식하지도 못하게 문화화한 종교적 흐름을 일컫는다. 이러한 '정치적 종교' 혹은 '종교적 정치'의 흐름이 일본 내 보수적 애국주의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의 심층적 정서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한 상황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