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린이’ 급증에 용어 정비와 선별적 사용 시급

▲ 세종대왕 동상(제공=연합뉴스)
[일간투데이 장석진 기자] 증권가에서 쓰이는 전문 용어나 직제 등에 불필요하게 영어가 남용돼 투자자들과의 소통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본시장 시스템이 영미권에서 들여온 것이라 일부 외래어로 정착된 표현은 사용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불요불급(不要不急) 한 경우에도 무분별하게 쓰이는 상황이다.

“도대체 어떤 부서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한다는 건지 여러 번 읽어봐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투자자 A씨)

올해 본격적으로 투자 세계에 입문한 ‘주린이’ A씨는 주식시장에 대한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난해한 용어에 장벽을 느낀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특히 각 증권사마다 동일 업무를 하는 사람끼리도 쓰는 용어가 통일돼 있지 않아 이해에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A씨가 이해가 안간다고 말한 모 증권사의 보도자료 일부를 발췌해보면, “전통적 강점인 리테일부문 이외에도 IB, 홀세일 등 비리테일 사업 부문에서도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후략)”는 식이다.

그는 “알고 보니 ‘리테일부문’ 이라는 건 법인이나 기관 고객이 아닌 개인투자자대상으로 자산관리 사업을 하는 조직을 말하고, IB는 소위 ‘Investment Banking’의 약자로 기업금융을 칭하며, ‘홀세일(Wholesale)’은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소매영업에 대칭되는 말로 ‘도매영업’을 칭한다는 것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브로커리지(Brokerage)’라는 말도 어떤 회사에선 위탁영업이라고 쓰는데 용어를 각사별로 다르게 쓰다보니 괜히 투자자들에게 혼선을 준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우리말로 해도 충분히 통용 가능한데 굳이 영어를 쓰려고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투자자 B씨)

투자자 B씨는 한 증권사가 신규로 내놓은 랩어카운트(Wrap Account) 소개 기사를 보여주며 기자에게 해석을 요구했다.

“(중략)ㅇㅇ증권 리서치센터에서 미국주식 투자전략 및 모델포트폴리오를 제공하고, Wrap운용부가 최종적으로 운용을 담당하면서 유기적인 협업과 체계적인 운용 프로세스를 통해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위 문장을 해석하는 데는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하다. 랩이라는 것은 ‘랩어카운트(Wrap Account)’의 약자로, 여러가지 자산을 한꺼번에 싸잡아서 투자할 수 있는 형식의 ‘운용계좌’를 말한다. 이를 상품으로 부르지 않고 ‘서비스’라고 부르는 건 운용역과의 계약을 통해 대신 돈을 굴려주는 ‘용역’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모델포트폴리오란 투자의 대상이 되는 투자 후보군을 말하는 것으로 쉽게말해 ㅇㅇ증권의 주식분석 조직인 리서치센터에서 적합한 주식들을 추천해주면 랩어카운트 운용 부서에서 이를 바탕으로 비중조절을 하며 주식을 사고 팔아 수익을 내주겠다는 뜻이다.

B씨는 “이런 내용을 주식투자 초심자들이 이해하기도 어렵거니와 투자자 유치가 목적이라면 투자자 눈높이에서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설명하는게 증권사 입장에서도 도움이 될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리서치센터 보고서에 나오는 말들은 아예 절반은 버리고 본다”며, “분석이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해서 이미 용어가 익숙한 사람들끼리는 소통에 문제가 없는지 모르겠지만 정체성이 불분명한 문장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와 같은 지적에 대해 한 증권사 전략기획본부장은 “기본적으로 자본시장에 쓰이는 용어들은 영미권의 금융시스템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큰 고민없이 외래어로 정착된 경우가 많다”며, “다만 지적이 나오는 것처럼 우리말로 충분히 적용 가능한 영역도 괜히 영어로 쓰면 그럴싸해 보일 거라는 사대의식도 일부 작용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지난 2015년 협회 자율규제본부에서 투자설명서 용어정비반 TF를 만들어 ‘어려운 금융용어 303개 알기 쉽게 풀이’라는 증권사전을 만들어 업계에 관련 지침을 마련했었다”며, “자본시장에는 새로운 용어가 지속적으로 나오는 만큼 차제에 이런 지적이 나오지 않도록 업계 현황을 점검하고 계도할 부분이 없는지 검토하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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