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훈 박사(서경대학교 나노융합공학과 학과장)
[일간투데이] 과도한 단순화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는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다른 오류들은 친숙한 듯 친숙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주어진 사실을 바탕으로 논리를 구축할 때 흔하게 보이는 열 한 가지 논리전개의 오류가 있다.

모호한 단어 사용 (Ambiguous or vague words or phrases), 신빙성 낮은 인용(Citing a questionable authority), 상대방의 주장과 비슷하지만 자신의 입맛에 맞는 아전인수격 예를 들어 반격하는 허수아비(Straw man) 오류, 다른 취향이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아지가 좋아? 고양이가 좋아?’같은 양자택일로만 몰아가는 잘못된 딜레마 (False Dilemma, i.e. Either-Or.)다.

또한 비린내가 강한 청어로 사냥개를 다른 곳으로 유인하듯 엉뚱한 주제를 끌어들여 주의를 분산시켜 예봉 피하기 (Red Herring), 한 가지 꼬투리로 나머지 다른 상황도 도매급으로 벌어질 것으로 몰아가는 미끄러운 경사 (Slippery Slope) 오류, 인기에 호소하기(Appeal to Popularity), 완전무결 솔루션 (The Perfect Solution) 오류, 허위이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사실 또는 진술 (False, Incomplete or Misleading Facts or Statements), 흔한 과잉 단순화 (Causal Oversimplification), 성급한 일반화 (Hasty Generalization) 등이다.

인터넷 통신 품질에 불만이 있어 계약을 해지하려 통신사에 전화를 했는데, 통신 품질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은 제시하지 않고 통신 요금을 깎아주겠다고 흥정해서 해지의 예봉을 피하고 계약을 유지시키려 문제를 흐리는 훈제 청어(Red Herring) 오류 같은 것은 애교로 받아 줄만 하다. 최근에는 해지도 매우 편해진 것으로 알고 있다.

특정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에 오류가 있으면 그 시점 이후 파생되는 판단과 대응은 큰 사회적 비용 발생과 정신적 에너지 소비를 유발하기도 한다.

어떤 새로운 해결방법을 제시하였을 때 ‘그거 하나 해결한다고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니니 시도할 생각도 말아라’고 쉽게 묵살하는 기반이 되는 완전무결 솔루션 오류는 특정인을 완벽한 솔루션으로 가정하고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깎아내리는데 사용된다.

며칠 전 울산 남구 아파트 화재현장에서 놀랍도록 훌륭하게 대처한 소방관들과 시민들의 사진 아래 ‘저런 현장에서 저 먼지 하나 안 묻은 깨끗한 옷으로 컵라면 먹고 있는 여자소방관은 뭐냐.’ 고 붙은 댓글을 보았다.
화재는 10월 8일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후 3시에 가까운 시간까지 15시간 40분 동안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화재 현장에 투입되기 전 소방관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장면이라는 기사 설명도 읽지 않고 화재현장에 어울리는 불에 그을린 완벽한 소방관을 상정해 놓고, 그 이미지에 맞지 않으면 서슴없이 비난을 해댄 것이다. ‘완전한 솔루션 오류’다.

화재진압에 기여하지만 모든 소방관이 검게 그을린 옷과 얼굴을 할 필요는 없다. 전쟁에 참여하는 군인이 모두 피를 뒤집어쓰고 눈앞에서 적군을 사살해야 할 필요가 없듯이. 소방관의 여러 역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서 오는 오류다.

이런 오류는 지도자나 공인들이 완벽한 모습을 가져야 한다는 군사부 일체를 미덕으로 삼던 시대의 유물이다. 우리시대의 최고 지도자도, 스승도, 아버지도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국민 모두가 체험하여 알고 있다.

얼마전 장관의 남편이 요트를 구매하기 위하여 출국한 일로 ‘하필 이런 시국에 요트를...’이라는 비난과 장관의 남편이 얼마나 오래전부터 계획한 꿈인지 이해한 주변 분들의 디펜스가 있었다.

화재 시작과 끝까지 깨끗한 옷으로 현장 상황을 취합하여 보고하고 분석하는 직능을 가진 소방관이 ‘왜 화재진압에 기여하지 않았느냐’고 비난받을 수 없듯이 장관이 가진 역할을 이해하면 불법이 아닌 남편의 행동을 비난하는 것은 완벽한 솔루션, 어떤 부분에서도 모범을 보여야 하는 가부장시대의 아버지 같은 장관을 머리속에 두었기에 발생한 오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불법이 아닌 배우자의 어떠한 행위로도 직급 고하를 막론하고 자신의 회사에서 비난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오류가 없는 정상적인 논리가 작동하는 법치국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장관이라고 다를 수 없고, 대통령이라고 다를 수 없다. 단지 고위 공무원이 가진 권한의 폭이 넓고 강하여 여러 분야에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자리에 있지만, 음주운전 가석방이 늘어났다고 해서 사법부 판사의 권한에 속한 가석방을 3권 분립의 입법부 쪽에 계신 분이 행정부 수장의 잘못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완벽한 솔루션 오류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바로 이 오류가 특정인을 비난하는데 쓰일 뿐만 아니라 특정인을 감싸는데도 요긴하게 사용된다는 점이다.

우리가 상정한 특정인의 완벽한 솔루션화가 오류에 기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완벽한 자리가 손상되지 않게 면죄부를 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자녀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가장을 용서하자고 설득하는 다른 가족 구성원들의 논리가 그러하며, 틀림없이 불법적인 꼼수를 동원하여 종교단체의 부와 명예와 권력을 자녀에게 넘긴 종교지도자들을 감싸는 신도들의 태도와 초거대 기업의 수장이 저지른 범죄를 바라보는 사회와 율사들의 생각도 그러하다.

부와 권력의 핵심에 위치한 분들일수록 이런 오류의 혜택을 더 많이 볼 수 있다고 인식되기에 생겨난 속담이 ‘무전유죄 유전무죄 무권유죄 유권무죄’다.

어릴 적 뚱뚱했던 필자는 힘도 아주 세고, 공부도 좀 했고, 노래도 곧 잘 하고, 악기도 잘 다루었지만 ‘뚱뚱’하다는 것은 그 모든 장점을 단번에 날려버릴 핸디캡이었다. 앞서 사자성어 네 단어는 판데믹 시대의 1류 국가라는 전 국민의 자존심을 일거에 깎아내릴 최악의 세계적 수치다.

앞서 언급했듯이 시작은 미약해 보이는 ‘완벽한 솔루션의 오류’였지만 어마어마한 사회적 비용과 국민의 에너지 소모를 부르는 창대참담한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이 오류를 특정인, 특정단체에서 완벽하게 분리해 내야 비로소 올바른 사법적 판단과 정치적 소통이 가능하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우리가 그 동안 가져왔던 ‘완벽한 솔루션의 오류’를 인정해 그 오류를 없앤 눈으로 장관과 대통령과 기업총수와 종교인과 언론, 방송을 평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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