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투데이 장석진 기자] “누군가의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싶어서 제가 오늘 사의 표명과 함께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지난 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온 대주주 요건 하향 여부를 묻는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홍남기 부총리가 답변 말미에 사의를 표했음을 밝혀 주위를 놀라게 했다.

결국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사표 반려와 함께 없던 일로 마무리됐지만, 이 헤프닝은 홍 부총리 자신과 여당 모두에게 상처를 남기는 일이 됐다.

올해 주식 시장에서 주가지수가 큰 조정없이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면서 이를 유지해야 한다는 바람은 정부와 개인투자자의 공통 염원이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저금리와 고공행진하는 집값 유탄을 피해 마지막 희망을 건 주식시장이 무너지는 걸 감내할 수 있는 정부와 개인은 없어 보인다.

대주주 요건을 현행 10억에서 3억으로 낮추면 연말 주식 매도세가 심해져 시장이 타격을 받는다는 시나리오와 하향 때마다 실제 얼마나 매도가 나왔는지 분석 보고서가 나왔다. 심지어 마지막 수단으로 지난 10월에는 홍남기 부총리를 사임시키라는 반 협박성(?) 국민 청원까지 등장해 청와대 공식 답변 기준인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끌어내기도 했다.

오죽하면 한 증권사는 고공 행진하는 성장주들의 주가와 현실적 이익 시현과의 괴리를 설명하기 위해 ‘주가꿈비율(PDR, Price ti Dream Ratio)’이라는 개념마저 도입했다. 아직은 아니지만, 향후 10년 뒤 해당 산업 전체 시장 규모에 해당 기업의 예상 시장점유율을 곱해 이것이 현재 기업가치인 시가총액 대비 몇배인지를 측정해, 미래가치를 반영한 현 주가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방법이다.

때마침 삼성그룹 이건희 전 회장의 타계와 함께 11조원에 육박하는 상속세의 과다 여부도 여론의 도마 위에 올라 있다. 이 회장이 남긴 18조원 가량의 주식을 상속 받기 위해 11조원의 상속세를 내는 것이 맞냐는 질문이다. 국가대표 기업의 안정적 승계를 통해 기업 운영의 안정성을 담보해줘야 국가도 좋고 기업도 좋다는 논리가 깔린 동정론의 표출이다.

상기한 일련의 일들을 관통하는 공통 요소가 있다.

첫째, 한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이슈라는 점이다. 주가가 이렇게 고공행진해 대주주 자격을 고민해 보거나 10조가 넘는 상속세를 내본 사람이 아직은 없었다. 법과 제도가 현실을 반영하는데 시간적 간극이 존재한다면 그 타당성과 합리적 조정을 고민해 볼 법도 하다.

둘째, 모두의 이해가 일치한다는 점이다. 대주주 기준을 낮추는 것이 실제 주가 하락과 얼마나 관련있는 일인지를 떠나, 혹여 이를 관철했다가 주가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그 뭇매를 누가 감당할 수 있겠는가! 삼성이 잘되는 게 한국이 잘되는 것이라는 굳은 믿음은 이미 신화(Myth)가 된 상황이다. 안정적인 삼성의 승계를 방해하는 자는 역적으로 몰릴 소지가 크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말이 있다. 윤리적 규범으로 사회구성원들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것을 법이라는 사회적 장치로 통제하자는 뜻이다.

우리는 당면한 문제들을 통제할 법과 원칙을 이미 가지고 있다. 다만 이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옳은지 아닌지는 사안의 긴급성도 고려해야 하지만, 원칙을 무너뜨려야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 후유증은 없는지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증권사들이 내년 전망을 속속 내놓고 있다. 코스피 상단을 2800까지 제시하는 증권사들이 나오며 “백두산(2744m) 고지에 오르자”는 야심찬 구호가 흘러 나온다.

홍남기 부총리는 5일 “2023년도 금융투자 소득에 대한 과세체계는 계획대로 갈 것”이라고 다시 못 박으며 자기 신념 철회의 아쉬움을 토로했다.

만약 내년에 코스피가 백두산에 오르면 대주주 요건을 강화하는 카드를 꺼낼 수 있을까? 영화 올드보이의 주인공 이름은 오대수다. 오늘만 대충 수습한다는 뜻. 우리는 오대수의 삶을 살고 있진 않은지.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