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종교적 정치' 성공, 일본 원령신앙에 기인
메이지 정부, 국가 정체성·정당성 확보 위해 '인신 신앙' 정치화
물론 사후 혼령이 신격화되려면 일정한 자격이 있어야 한다. 사후에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릴지 모른다고 간주되는 혼령이라야 진지한 제사의 대상으로 신격화된다. 일본 민속학의 창시자라 할 만한 야나기타 구니오(柳田国男)가 정리한 바 있듯이, 나이가 들어 자연사한 사람보다는 사후에 무언가 한(恨)이 남아 있을 것 같은 사람, 사후에도 분노 같은 감정이 있어서 재앙을 내릴 것만 같은 사람이 영험한 신으로 모셔진다.
고마쓰는 이런 인격적 신령을 '재앙신 계통의 인신(人神)'이라 규정한다. 스가와라 미치자네(菅原道真, 845-903)를 신으로 모시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야기인즉슨 이렇다. 헤이안(平安) 중기 후지와라 도키히라(藤原時平)가 천황의 총애를 받던 탁월한 학자 스가와라 미치자네를 모략하여 유배를 보냈다. 그런데 스가와라가 유배지에서 사망했고 스가와라를 안타까이 여긴 한 민간인이 작은 사당을 지어 스가와라를 신령으로 모셨다. 그즈음 공교롭게도 교토에 각종 천재지변과 역병 등이 발생했다. 후지와라는 천재지변과 역병이 스가와라 미치자네의 원령 때문이라 결론을 내리고 그의 혼령을 모시던 작은 사당을 확대해 기타노텐만궁(北野天満宮)을 조성했다. 스가와라의 혼령을 신으로 모셔 제사를 지냄으로써 비명횡사한 이의 원혼으로부터 재앙을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사후에 학문의 신으로 추앙받게 된 스가와라는 실존인물이 사후 신앙의 대상이 된 첫 사례다. 무엇보다 죽은 이의 영을 위로하는 중요한 이유를 잘 보여준다.
물론 모든 위령 행위가 원령 신앙에 기반해 있는 것은 아니다. 후손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칠 만한 재앙신 계통의 인신 관념만으로 사람의 신격화를 다 설명할 수 없다. 천수를 다하고 죽은 권력자나 위인의 경우 재앙을 내릴 가능성이 없는데도 사후에 신격화된 경우들이 있기 때문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모신 도요쿠니신사(豊神社),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을 모신 도쇼궁(東照宮), 메이지 천황을 모신 메이지신궁(明治神宮), 구스노키 마사시게(楠木正成)를 모신 미나토가와신사(湊川神社),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를 모신 난슈신사(南洲神社)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른바 '현창신(顯彰神) 계통의 인신(人神)' 신앙의 사례들이다.
이때 놓쳐서는 안 될 것은 현창신 계통의 인신을 모시는 신사가 메이지 시대 들어 급증했다는 사실이다. '호국영령'의 개념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조장되면서 강화되었듯이, 메이지 시대에 들어 현창신 계통의 신사를 국가가 적극적으로 창건하면서 민심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메이지 정부는 한편에서는 재앙신 계통의 민중 신앙이 단순히 원령 신앙이 되지 않고 일종의 현창신 계통의 인신 신앙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고도의 정치적 전략을 시도했고 어느 정도 성공하기도 했다.
메이지 정부는 이런 정치 시스템을 '종교'가 아닌 전통적인 '국가의 제사'라고 주장했지만 현창신 계통의 인신 신앙에 기반한 호국영령에 대한 제사는 일본 전역을 사실상 거대한 종교 공동체와 비슷한 구도로 만들어가는 근거로 작용했다. 메이지 정부는 국가적 정체성과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인신(人神) 신앙을 정치화하면서 유지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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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수 보훈교육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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